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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뫼회 제149회 우이령 산행 후기
이름   이원근 등록일   2009-09-04 오후 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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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한뫼회 제149회 북한산 우이령 산행(2009년 7월 19일) 후기

그 전 일요일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너무 많이 와 일주일 연기되어 이루어진 이번 제149회 산행은 41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 시민에게 등산로로 개방된 ‘우이령(소귀고개) 길’(흔히 ‘우이령 고갯길’로 불림)을 우리 한뫼회도 처음으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그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 고갯길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공작원 일당(31명?)이 기습적인 청와대 습격을 시도할 때 바로 이 길을 이동경로로 통과했다고 하여 폐쇄된 이후 41년 동안이나 일반인의 통행이 봉쇄되었다가 올해 7월 10일에서야 비로소 일반인에게 개방된, 남북분단과 이로 인한 남북대결의 불행한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매우 역사적 의의가 깊은 길이었다. 오늘이 7월 19일이니 개방한지 9일 만에 우리 한뫼회가 이 길을 산행하는 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약간 흐려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날씨면 장마철 산행 날씨로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도 날씨란, 특히 여름의 산중날씨란 변화무상하니 우산에 우의에 여분의 옷가지까지 배낭에 챙겨 넣었다(사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출발 날씨에 관계없이 여름 등산에선 필수적이라고 함). 이런 것들을 챙기면서 몇 년 전 한뫼회 어느 산행에선가 중식을 거의 마칠 때쯤 시작된 갑작스러운 큰 비(천둥, 번개를 동반한)를 참석회원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하산길 내내 줄기차게 평생 원 없이(?) 맞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나는 그 날 얼마나 혼쭐이 났던지 바로 그 이튿날 고가(?)의 산행우의를 깍지도 않고 달라는 대로 주고 하나 샀었는데 그 이후 아직까지 이 우의를 제대로 입어볼 기회를 잡지 못해 무척 서운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

집결지인 지하철 3호선 불광역 2번 출구엔 한창 더운 7월의 산행치고는 여느 해에 비해 제법 많은 약 20명 정도의 동기들이 나타나 일단 참석인원은 성공적이었다. 비가 오랜만에 그친 이런 일요일날 집에 틀어박혀 있기에는 너무나 아쉬웠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산행에 참석하면 다시 반가운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고 재미있는 얘기를 마음껏 나눌 수가 있는데... 아마도 다들 이렇게 생각하며 부푼 꿈(?)을 안고 나왔으리라. 단지 오늘따라 여성동지(?)가 한 명도 나오질 않아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모두들 자기의 사랑스런(?) 부인이 혹시 장마철에 험한 비라도 만나면 어쩌나 하고 집에 꼭꼭 숨겨 놓기라고 했나... 우리 주위에는 쏟아져 나온 많은 남녀 등산애호가들이 곳곳에서 삼삼오오 떼를 짓고 있었다.

이런 저런 유쾌한 담소를 나누다 모두가 집결되자 약 10시 경 출발해 얼마간 걸어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한동안 긴 줄을 서 기다리다 겨우 버스(34번)를 타니 금방 만원이 되었다. 우리 대부분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내내 서서 갈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한 번씩 설 때마다 계속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 틈에 마구(?) 시달리며 약 4-50분 정도 타고 가니 등산 시작점인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의 ‘석굴암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내려 인원을 점검하고 비로소 본 산행을 시작하니 벌써 시간은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일반 포장도로가 한동안 이어졌다. 왼쪽 옆으로 군인아파트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우이령 길 ‘탐방지원센터’가 나타났다. 우린 그 맞은편에 높이 그려져 있는 북한산 국립공원 안내도를 잠시 확인하고 길을 재촉했다. 40여 년간 잘 보존되어서 그런지 우이령 길은 매우 깨끗하게 보였고 상당히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군부대 초소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포장도로가 고운 흙길로 바뀌면서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띄었다. 맨발로 걸어도 괜찮을 정도로 이 길은 그만큼 그동안 깨끗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 한뫼회 산행에서는 회원 중 아무도 맨발로는 걸은 적이 없었는데 저 사람들이 혹시나 저러다 발바닥이라도 다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좀 흐르자 흙길은 올라가는 사람들 못지않게 벌써 반대편 우이동 쪽에서 출발해 내려오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거의 몸이 서로 마주 부딪칠 정도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의 왼쪽으로는 주로 계곡, 오른쪽으로는 주로 무성한 숲(처음에는 깨끗한 산개울물도 한동안 이어졌음)이 계속 이어지면서 이로 인해 산행 내내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와 느낌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날씨는 이미 완전히 개여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어느 지점에선가 우이고개(우이령) 2.5km →, 우이동 4.0km →라고 쓰인 이정표도 나타났다. 조금 더 오르니 길 왼쪽으로 ‘유격’이란 큰 글자가 새겨진 삼각형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 유격훈련장이 나타났다(우이령 길 왼쪽의 많은 땅이 군부대 주둔지역이라고 함). 이 유격장에서 왼편으로 가면 교현리 석굴암이 나온다고 하나 우리 일행의 행로에서는 제외되어 있었다. 조금 더 지나니 길 왼쪽으로 저 멀리 도봉산 오봉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나고 거기엔 오봉의 모습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다시 길을 계속 올라갔다. 그동안 두어 차례 몇몇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해온(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 부인들이 정성껏 준비하여 보낸) 과일 등 간식거리를 나누어 먹으며 쉬기도 하고 농담도 즐겨 가면서... 드디어 우이령, 즉 소귀고개에 도착, 그런데 여기가 우이령 길의 정점인 것 같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경사가 워낙 완만해서 그런지 통 고개다운 고개로는 보이지 않았다. 넓은 공터에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어디메쯤에서 (우이령을 지나선지 그 앞에선지 하여간, 아마도 지나서인 것 같기도 하고...) 길 양쪽에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는 소위 작전도로가 나타났다. 친구들은 장애물과 그 밑의 설명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상당한 관심을 가지는 듯 했다. 이렇게도 평화로운 이 길이 남북대결의 현장이라는 눈에 보이는 유일한 증거는 바로 이 대전차 장애물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여기를 지나 우이동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해 얼마 후부터는 블록길로 바뀌면서 아쉽게도 곱고 쿠션감 있는 흙길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참을 내려가니 드디어, 앞서 간 몇몇 회원들이 오늘 산행의 뒤풀이장소로 엄선해(?) 정해놓은 산속 식당 ‘진성’이 길 오른쪽으로 나타났다. 시간은 약 1시쯤이나 되었을까. 오늘은 각자 중식을 준비해 올 필요가 없고 바로 점심 겸 뒤풀이를 한다는 취지의 사전 공지가 있었던 터라 회원 모두가 속으로 꽤나 이 곳 도착을 고대했으리라. 이 음식점은 길 옆 산의 숲과 계곡물을 함께 끼고 있는 상당히 넓은 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 우리가 잡은 자리는 바로 옆 계곡물 소리가 꽤나 요란스럽고 숲 그늘이 확실한, 가장 시원한 명당자리였다. 친구들은 맥주, 소주, 더덕막걸리 등의 술과 함께 해물파전, 도루묵 등의 안주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권하며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구호를 요란하게 외치며 금세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곧 이어 이번 산행에선 뒤풀이로 보신(?)을 한다는 회장단의 공지상의 약속(?)대로 먹음직스러운 닭백숙이 가스판 위에 놓여졌다.

이런 와중에 먼저 신경철 회장이 일어나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지금껏 한뫼회 100회 산행 회원들에게 만들어 준 축하 금뱃지는 앞으로도 계속 그 전통을 이어가겠다(이원근 회원에 대해서도), 다음 8월 산행은 한뫼회 제150회 기념 등반으로서 22일(토)-23일(일)의 1박 2일 코스로 청송 주왕산을 거쳐 영덕 고래불의, 동해 바다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백효흠 동기의 펜션에서 1박하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8월 29일(토)에 있을 구상교 회원의 아들 결혼식에 동부인하여 많이 참석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이어 전임 회장 김영환 동기가 일어나 회장단이 우이령 고갯길이란 새로운 좋은 산행로를 발굴해 준데 대해 고맙다(이 산행로는 김갑용 회원이 회장단에 건의하였다고 함), 회장단이 자신을 포함한 여러 회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100회 산행 축하 금뱃지의 전통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결정을 내려주어 그 융통성 있는 열린 자세에 대해 감사한다, 회장단이 제150회 산행 기념으로 1박 2일 코스의 훌륭한 계획을 구상하며 회원들을 위해 수고해 주는 데 대해 감사하다는 취지의 발언이 이어졌다. 또 김용휴 동기가 일어나 회원들의 지속적인 산행참여를 위한 인센티브의 하나로 100회 산행 회원만 축하할 것이 아니라 대구의 백발회처럼 50회 산행 회원도 뱃지든 어떤 형식으로든 축하하자, 그리고 자신이 회장단에 몇 번이나 건의했던 남한산성 산행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데 조만간에 꼭 한번 가자(그 때는 자신이 등반대장이 되겠다는 다짐이 있었음)는 건의를 용휴 특유의 윗트로 모두를 웃겨가며 이어갔다.

우리 한뫼회 회원들은 회장단, 평회원을 가릴 것 없이 이렇게 다들 말도 잘 하고 건의도 재치 있게 하고 제각기 의견도 다양하게 제시하고 그러면서도 늘 사이좋게 정이 넘치고, 이 얼마나 민주적이고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인가. 김용휴, 남순대를 비롯 입담 좋고 재기가 넘치는 친구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러한 재사들의 구수한 입담에 허허허 하고 같이 호탕하게 따라 웃기만 해도 정신건강에 얼마나 좋은데... 웃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여간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한뫼회가 50회 동기면 누구든 참여하자고 늘 가슴을 활짝 열고 동참을 고대하고 있는데 이를 외면(?)하는 동기가 있다면 같은 동기로서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렇게 바로 옆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런 저런 이바구(?)를 즐겁게 나누다 약 3시를 넘기면서 뒤풀이를 끝내고 다시 원래의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드디어 우이동 큰 차도가 나타났다. 여기서 요새 한창 인기 절정인 운동(?)(당구)을 좋아해 한 게임 하고 파하려는 그룹과 혼자 집에 남아 남편을 그리워하고 있을 아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파(내 해석이 맞긴 맞나?) 바로 집으로 가려는 그룹으로 나누어지면서 지하철(4호선 수유역)로 향하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모두들 다음 8월 달의 재회를 기약하며 그리고 이번 산행을 위해 여러 가지로 애쓰고 수고해 준 신경철 회장과 구자호 총무의 회장단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경철아, 자호야, 정말 수고 많았데이!) 북한산 우이령 길의 대자연과 함께 한 제149회 산행을 마무리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한뫼회 친구들아, 이번에 북한산 우이령 길에 서린 정기를 가슴 속에 듬뿍 들이마셨는가? 그랬다면 이 정기를 꼬옥 간직한 채 다음 달의 한뫼회 제150회 기념 산행에 사정이 허락하는 한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하자, 그래서 더욱 많이 웃고 더욱 더 우정을 돈독히 가꿔 보자꾸나. 어, 야들아, 어떤노? 다음 달에 많이 갈끼제? 그 땐 영부인을 이번처럼 숨겨두지 말고 같이 손목 꼭 잡고 나올끼제?

P.S. 신경철 회장이 위에서 언급한, 한뫼회 100회 산행 기념품의 금뱃지로의 환원 결정에 대해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신 회장이 이번 산행 며칠 전 저에게, 금뱃지로 환원하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저의 경우에도 소급 적용된다고 알려주기에, 저는 환원 결정은 좋지만 저의 경우 지난 달 100회 산행에서 참석회원 모두에게 한 장씩 골고루 나누어지는 의미 있는 산행 스카프를 선물 받은 것으로 크게 만족하고 있고 또 이미 회원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으니 저는 제외하고 다음 100회 산행 회원부터 그 결정을 적용할 것을 여러번 간곡히 청하였으나, 신 회장은 뒤늦게나마 금뱃지의 전통을 빠짐없이 이어가야 한다는 회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그렇게 소급 적용하기로 하였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도 그리고 이번 산행의 뒤풀이 때에도 저의 원래의 생각 자체는 변함이 없음을 밝히면서도 회장단의 결정을 회원으로서 따르는 것이 또한 마땅하니 회장단의 소급 결정을 따르겠다는 취지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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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뫼회 제149회 우이령 산행 후기 2009-09-04 이원근 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