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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봉-문수봉을 올라 대남문 구기동으로
이름   김영환 등록일   2007-03-19 오전 1:55:00
e-mail   ywhkim@rhilaw.com
내용
비봉-문수봉을 올라 대남문에서 구기동으로

지난 주 3월 11일 한뫼회는 그 제121회 산행으로 북한산 비봉을 올라 문수봉을 거쳐 대남문, 구기동으로 내려왔다.

36년 만에 가장 추웠다는 경칩(3월 6일)의 꽃샘추위의 끝이라 3월 11일 아침에도 차가운 기운이 볼에 느껴졌다. 생각보다 누그러진 추위였으나 봄 속의 겨울 날씨였다. 강추위에도 이 만큼 인원은 당일의 비봉 경유 산행이 10년 전 첫 산행 길을 초발심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올라본다는 의미를 동기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집을 나와 전철 종로3가역에서 환승하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내려 0212 버스로 갈아타고 집합지 구기파출소로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말간 하늘은 전날의 바람이 불며 쓸어가 버린 뒤 끝이라 그런지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속이 다 시원했다. 아침 9시 45분경 구기 파출소를 지난 양지바른 담벼락 앞에는 16명이 모였다.

출발 직후 큰길가 왼쪽에 늘어선 양옥집 동네 비탈진 골목길로 접어든다. 향로봉이 보이는 곳으로 오를 동안 바람은 산허리에 막혀 잠잠했다. 간혹 바위 길, 바위를 오르다가 바람 길을 만나면 세찬 바람에 등산모자가 날리지 않도록 목까지 푹 눌러 써야 했다. 겨울바람인가. 봄바람인가, 북풍인가 아니면 마파람인가, 바람은 분명 차가운 북풍이었다, 입춘 우수 경칩 다 지났어도 춘래 불사춘이었다. 비봉을 향하는 능선에 올라서니 몸을 가누기 힘들듯 바람이 불었고, 길표 1,000원짜리 장갑을 꼈어도 손끝이 시려왔다.

진흥왕 순수비를 세워둔 비봉의 비석(구 표시석, 현 모조품)을 보러 한번쯤 올라 보았겠지만 일행은 미끄럽고 바람 불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은 그 꼭대기에 오르려 하지 않는다. 그 날 유석종 동기와 김종배 동기만이 비봉을 올라 비석을 만져보고 오느라고 뒤쳐졌다. 처음 오른 김종배 동기는 세차게 부는 바람에 몸을 가누고자 비석을 꼭 안았다고 했다. 내려 올 때는 발밑 아래로 보이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오를 때 보다 더 힘들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대표로 비봉을 오른 셈이다.

당일의 산행의 클라이맥스는 비봉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길에 사모바위, 승가봉을 지나 문수봉으로 오른 암릉길이었다. 문수봉은 처음이었다. 위험한 길이라서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등반대장은 대남문을 가는 데는 왼쪽 길보다는 문수봉을 향하는 오른쪽 길에 얼마 전 쇠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우리 일행의 바위길 오름에 문제가 없다며 앞장을 섰고, 일행은 용기를 내어 그 뒤를 따랐다. 온 몸으로 강풍을 맞서야 했고, 더 높아 갈수록 더 세찬 바람은 곳곳에 세워진 쇠 난간을 더욱 꼭 잡으면서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디디게 하였다. 가끔씩 긴장을 늦추며 잠시 쉬어가는 곳에는 푸르름을 뽐내는 소나무들이 바위와 하늘과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긴장하며 바위 길 바람과 한참동안 싸운 끝에 일행은 무사히 문수봉에 접근할 수 있었다. 둘러보니 방향을 달리하며 저만치쯤 백운대 인수봉이 보이고 가까이 옆에 보현봉이 자리잡은 이곳은 범상한 곳이 아니다.

문수봉 지척에 있는 대남문(구기동방향) 좌측의 문수봉과 우측의 보현봉은 부처(석가모니 또는 비로자나)님의 좌우에 모시기도 하는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 보현보살을 명명한 봉우리로서, 불교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지혜와 행원이라는 부처님의 두 가지 커다란 덕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날 우리는 대남문에서 곧바로 구기동을 향해 문수봉과 보현봉의 중간에 있는 계곡 길로 하산하였다. 산에는 불교와 관계된 봉우리가 많은데, 지난달 2월 시산제 때 찾았던 북한산성 입구에는 좌우로 원효봉과 의상봉이 있었고, 그 중간 쯤 대서문이 있었다, 봉우리의 이름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은 이씨조선 이전의 국교가 불교였고, 전국 곳곳의 명산대찰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을 것이리라.

점심타령은 사모바위 지나 11시 40분경부터 나왔다. 등반대장이 제일 욕을 먹는 것도 점심시간과 장소물색이다. 조금만 늦어도 배고프다고 법석을 떨고, 시간이 지났지만 괜찮은 장소까지는 한참 더 가야 한다면 참지를 못하는 성미들이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인 모양이다. 서두르면 악수를 둘까, 대남문 부근 산성쪽 조금 아래 자리를 찾았으나 괜찮은 곳은 이미 선점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몫은 없었다. 부득불 음지지만 비스듬히 경사진 곳에 자리를 펼 수밖에 없었다. C, K 및 Y 동기가 가져온 보드카와 서편제 및 팥빵이 다소 인기를
끌었을 뿐, 막걸리는 일부만 개봉된 채 나중 구기동 할머니두부집 뒷풀이에 가서야 처분되었다.

출발 시에 얘기됐던 대남문 - 보국문 - 청수장 하산 계획을 접었다. 다수의 의견을 좇아 곧장 구기동으로 하산하기로 방향을 재조정했기 때문이다. 오늘 문수봉

---이하 복원 2011. 2. 15.---

을 거쳐 오면서 빡세게 동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언젠가는 모르지만 이곳을 거쳐 북한산 주능선을 타고 용암문을 거쳐 도선사 아니면 백운대 방향으로 가는 시간이 소요되는 먼 길을 걸어보는 기회가 한번 오기를 기대해보면서.

보현봉과 문수봉 사이의 구기동으로 향하는 길에는 햇살이 내리쬐는 양지가 있었고, 점심장소에 알맞은 포근한 자리가 보였다. 아차, 시간에 쫓겨 정한 장소에서의 안락하지 못한 탓으로 중식의 즐거움은 그만치 줄어들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자족해야 했다.

당일 산행 및 뒤풀이 모습은 김용휴 동기가 사진 방에 올려놓았다. 동기의 말로는 초보수준이라고 겸손을 보였지만 영겁의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 그날 121회 산행의 한 순간을 붙잡아 우리로 하여금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한 동기에게 감사의 말을 남긴다. 동기의 말마따나 그날 “매서운 칼바람에 맞서 문수봉의 가파른 암벽을 다 함께 오른 용기와 쾌거를 상기하면서”를 반복하면서 그날 동기들 모두 수고했다. 김용휴 동기는 산행 중 사진을 찍느라 수고했고, 산행 후에는 당구 한판을 벌이며 고수를 존경하지 않는 하수 동기들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도전에 응전하느라 꽤나 신경을 썼을 것이다. 동기들에 의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워낙 고수(한큐에 20-30개를 거뜬히, 그리고 자기 것 다치고 나면 남의 길도 막아 놓는다나)인 동기에게 백전백패가 뻔하기 때문에 고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심리전의 하나라나 뭐라나, 아무튼 동기들이여 즐겁게 노소서.

4월 한뫼회 산행은 동기회 주관 합동 야유회로 대체함을 알렸다. 날짜는 둘째 주가 아닌 셋째 주
인 4월 15일, 장소는 전북 대둔산과 충남 계룡산이 유력한 모양으로 대구/서울 동기회가 상의하
여 결정할 모양이다.

한뫼회 회원님들, 4월15일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두소서.
춘사월 호시절 합동 야유회애 참석할 수 있도록,


2007. 1. 18. 동기 김영환

2007. 3. 11. 북한산 비봉 - 대남문 신행 참석자: 16명

구상교, 김영환, 김용휴, 김종배, 남순대, 박달수, 신경철, 유석종,
유철, 이강호, 이원근, 이찬욱, 장도석, 차용수, 추연수, 황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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