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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백석산등 나들이 얘기 후편
이름   김영환 등록일   2014-05-17 오후 9:43:00
e-mail   ywhkim@rhilaw.com
내용
백석산 등 나들이 얘기 후편

한뫼회는 2014. 4. 17- 4.20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 하북성(河北省) 래원현(淶源县)의 백석산(白石山)을 다녀왔다. 그 여행 후기의 후편이라고 할 셋째 날(4월 19일)과 넷째 날(4월 20일)의 행적을 별도로 올릴 것이라고 했던 그 말의 구속에서 이제 벗어나고자 한다.

3. 셋째 날 (2014. 4. 19.(토))

3-1) 원시 만리장성을 둘러보다(셋째 날 오전)

하루를 묵은 이곳은 아침부터 보슬비가 온다. 이곳 땅이름 래원(淶源)이라는 앞뒤 두 글자에는 삼수변(氵) 물이 주렁주렁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수량이 적다나. 비를 기다리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비 오는 것은 축복인데, 그들이 축복하는 비 오는 좋은 때에 우리가 맞추어 오게 된 것이라나. 말도 이쁘게 갖다 붙인다.

일찍 움직인다. 8시 10분, 버스는 아직 도로 포장이 안된 거의 경사 없는 비탈길로 들어서 한 30-40분 달렸을까, 9시가 직전이었을 게다. 야산 고개 길에 멈춘다. 래현 근처 원시산성을 찾아나선 것이다. 원형보전이 가장 잘되어 있다는 곳이다.

앞장선 가이드를 뒤따라, 우산을 들고 이슬비 맞아 축축히 젖은 야산 길을 오른다. 저만치 거리 한 500m-600m의 거리일까, 별로 높지 않은 곳에 돌로 쌓은 성벽 능선이 보인다. 뒤 덥힌 풀과잡목 사이로 길은 희미하게 나 있다. 한 150m 걸음 했을까. 집 사람이 크게 어렵지도 않은 길을 그만 오르겠다고 한다. 왔던 길로 되돌아 기슭으로 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버스에는 김문곤
동기 부부와 정여사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안심이 된다.

온 산에는 앙증맞게 작은 연두색 새순이 돋아난 관목과 이름 모를 풀에는 빗방울이 초롱초롱 매달려 있다. 길섶에서 귀 솜털 같은 솜솜한 털이 난 자주 색을 뛴 꽃이 보인다. 김인선여사가 할미꽃 이라며 반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 한 구절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2/3쯤 올랐을까, 장성의 성벽까지는 멀지 않다. 쉬엄쉬엄 올랐던 길을 내려다 본다. 이 우중에도 빛나는 순백의 색깔이 두 곳에서 눈길을 끈다. 깨끗하기 그지 않는 새하얀 꽃을 피운 기슭 쪽의 키 큰 나무는 산 벚꽃인가, 또 올라오던 길섶에 나있던 관목에 다닥다닥 붙은 흰 꽃은 꼭 튀겨 놓은 좁쌀 같다 하여 부른다는 조팝 나무였던가. 보통 싸리 꽃으로 불리며, 마치 한겨울의 눈꽃을 보는 것 같다 하여 설류화 라는 별칭을 가졌다는 꽃이다.

소생의 계절, 봄 기운을 온 몸에 느끼면서 가까이 성벽으로 다가서는 이 낮은 야산 길을 오르는 기분은 최고로 상쾌하다.

한 20분, 30분 올랐을까, 성벽에 올랐을 때, 우리가 올라왔던 이 쪽 방향이 성벽 안쪽인지 바깥쪽 인지를 두고, 설왕설래, 우리가 올라섰던 성벽의 왼쪽 편의 망루는 왼쪽이 오른쪽 보다 성벽에서 더 튀어 나왔고, 오른쪽 편의 망루는 그러하지 아니했다. 왼쪽이 북쪽이고 오른쪽이 남쪽 임을 알았으나, 어느 것으로도 해답을 얻을 수 없었고, 가이드 조차도 어느 쪽이 성벽 안팎인지 모르기
는 매일반이었다.

성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린 곳에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 마련했다는 전보다 작은 한뫼회 플래카드를 앞 세우고, 모두들 불끈 주먹을 움켜쥐고 한뫼회를 외쳤을 것이다. 우리가 사진으로 많이 접하던 그것은 북경 근처의 만리장성일까, 성벽 위로 수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오르고 내리던 모습이 찍혀있던 그런 만리장성과는 달리 이곳은 정감이 갔다. 원래 축조된 그대로, 부서진 곳은 부서진 채 그대로라서, 아니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손때가 덜 타서 그럴까. 또 한국의 북한산 성벽과는 차이가 뭘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중에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뜻과 관련하여 “하룻밤 밖에 안 잤는데 죽을 때까지 만리장성을 쌓는구나!“ 라는 내용의 재미있는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다시 버스로 돌아왔을 때는 10시경이었을 것이다. 갖다 오기까지 한 시간 정도 머무른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오르는 산행이라면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을 것이다. 한뫼회는 이제 유람을 하는 한유회로 개명하자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것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3-2) 청서릉 중 광서제 숭릉 지하궁전에 들러다(셋째 날 오후)

11시 30분 경 원시 만리 장성 성벽을 둘러본 후 찾았던 곳은 하북성(河北省) 보정시(保定市) 역현(易县)에 있는 청서릉의 4개의 황릉 중 광서제 숭릉이었다..

청나라(1616-1911)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로서, 12명의 황제가 있었지만, 황제의 능은 11개다.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부의(傅儀)는 그것은 완성되지 않아 황릉이 없다나.

나머지 11명의 황제의 능은 하북의 준화(遵化)의 (i) 청동릉에 순치제(順治帝)의 효릉(孝陵), 강희제(康熙帝)의 경릉(景陵), 건륭제(乾隆帝)의 유릉(裕陵) 등 5개, 역현(易县)의 (ii) 청서릉에 옹정제(雍正帝)의 태릉(泰陵), 가경제(嘉慶帝)의 창릉(昌陵), 도광(道光)의 모릉(慕陵) 및 광서(光绪)의 숭릉(崇陵) 4개, 그리고 (iii) 청의 북경이전의 수도 심양(瀋陽)에 태조 누르하찌와 태종 홍다이지의 2개능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가 들른 곳은, 1915년에 완공된 광서제(光緖帝) 숭릉(崇陵)인데, 광서제는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부의(傅儀) 바로 앞의 황제로, 큰 어머니이자 이모이자 동치제의 어머니였던 서태후의 섭정을 위한 꼭두각시로 선정, 4살에 황위에 올라 평생을 서태후에 섭정에 시달렸던 불운의 황제였다. 그 광서제의 숭릉 묘, 지하궁전을 둘러본 것이다. 이 청서릉의 네 황릉 중에서, 제일 크고
중앙에 있다는 옹정제의 태릉이라지만 우리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살아 생전의 자신의 권력과 부귀영화가 사후에도 지속되기를 기원하며, 금은보화와 함께 묻힌 황릉은 순치제 능을 빼고는 모두 도굴 당하였는데, 무덤을 만든 자의 염원과는 달리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불교를 숭상하였다는 순치제는 자기의 무덤에는 아무런 보석을 넣지 말라고 했다던 데, 형성된 모든 것은 꿈,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 같다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의 금강경의 한 구절 내용처럼 금은 보화와 함께 묻힌 황릉도 도굴되고 말면 다 꿈이요,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나 있었을까, 그리하여 무덤에 아무것도 넣지 않게 하여 자신의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을 막았을까,

광서제의 묘 숭릉지궁은 일찍이 도굴되는데, 그 흔적으로 4중의 석문은 열려 있고 광서제의 관곽은 돌과 도끼로 만든 큰 구멍이 나있었다. 지궁 내에 있던 장물품도 없어져 비어 있었으나 다행히도 도적은 광서제 관곽 밑의 우물 금정(金井)에 있던 진귀한 문물은 발견치 못했다 한다.

12시를 넘어서 일행이 점심을 먹은 곳은 황족의 제를 지내는 능원 뒤에 위치한 청서릉행궁이라는 곳인데, 원래는 휴식을 취하거나 숙박하는 장소였는데, 청서릉이 외부에 공개된 이후 고급 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나. 점심을 먹은 원탁 테이블은 대형이어서 22인 일행 전부가 빙 둘러 앉아 한꺼번에 식사를 처음으로 한 곳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여기에 나온 산해진미도 수라상에 올랐던
요리였던가. 유석종 동기의 시조를 보면 황제 들던 산해 진미라나.

유석종 동기가 그때의 감흥이 아직도 아련하여 동기회 홈피 글 마당에 한 줄 글월 올렸다는 세수의 시조 중 여기 청서릉에 관련된 한 수를 인용해 본다. 같이 동석한 동기들 마음도 이하 동문이었을 것이다.

“청서릉 오찬”

용문양 꿈틀대는 거대한 회전원탁
황제 들던 산해진미 연달아서 올라오네
오호라 벗님 네들 왕후장상 따로 없소

3-3) 직예총독부(直隸總督部)

청서릉행궁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로 이동, 3시 반쯤 찾은 곳은 하북성 보정시의 직예총독부라는 곳이다 첫날 도로 사정운운하며 방문치 못하여 미루었던 곳, 이곳 직예(直隸)총독부는 현재 중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나라 성급 관청이란다.

여기 건물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둘러보다 생각난 것은 중국의 성급 관청이라 하니, 우리로 치면 도청 건물 쯤일까, 이씨 조선으로 치면 경상 감영 정도가 될까, 중국의 성 하나가 한국보다 더 크고 사람이 많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상상해 보았던 곳이다. 한 건물 안에 청풍숙정(淸風肅政) 이 적힌 현판을 보고, 한때 인기 있었던 중국 드라마 포청천이 활동하던 그런 건물이 떠올려졌던 곳이기도 하다. 맞거나 말거나다.

역사를 배우면서 알게 된 청 말기의 중요 인물, 이홍장, 원세개가 여기 보정의 직예총독부의 총독으로 재임하면서 수도북경의 수도권 지역의 군사 행정을 책임졌다 하는 곳이다.

조선과는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외교권한도 가졌던 북양대신 이홍장이 원세개를 조선으로 파견하여 군대를 주둔시켰다. 일개 외교관에 불과하던 원세개는 조선의 정치. 군사. 외교를 장악하여 공전의 내정간섭을 하였던 인물이다.

여기 보정은 임오군란 후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어 3년간 연금당했던 곳이라고 하니, 또 조선의 운명에 중대하게 영향을 미친 인물 들이 이곳 직예총독부의 출신이라고 하니, 조선의 역사와 얽히고 설킨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다음 일정지로 움직인다. 직예총독부를 막 벗어나며 출발하는 버스의 차창 밖의 가로수로 밑둥치가 제법 굵은 회화나무들이 보였다. 지금은 대구테크노폴리스 개발로 없어져 버린 내가 자란 마을, 시골 유가에서 큰 회화나무를 보며, 그 그늘에서 자랐던 기억이 불현 듯 떠올랐다.

3-4) 삼의궁(三义(義)宫)

다음 방문지는 보정의 탁현 누상촌에 있는 삼의궁이었다. 이곳은 동네로 버스가 접어들기까지는 삼의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복숭아밭에 모여 하늘과 땅에 형제가 되었음을 알리는 제사를 지낸 곳, 한날 한시에 죽기를 맹세한 도원결의 장소다.

“고하건 데, 여기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비록 성이 다르나 큰 의(義)와 두터운 정(情)으로 맺어 이제 형제가 되었습니다,….. . 비록 같은 날에 태어나진 못했으나 죽기만은 같은 날이기를 바라오니 황천후토(皇天后土)여, 이 뜻을 굽어 살피소서…..,.

도원결의의 그 유비가 당대의 지략 제일인 제갈량의 도움을 받아, 뒤늦게 촉한을 세워 위 나라의 조조, 오 나라의 손건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여 위. 오, 촉 3국이 경쟁하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 삼국지는 소년시절부터 읽어왔던 역사 소설이다.

삼의궁, 의로써 맺은 삼형제, 유비 현덕, 관우 운장, 장비 익덕 3인에게 그 의(義)는 어떤 개념일까,

인의(仁義)의 대명사로 귀 크고 팔이 긴 유비라면, 또 충의(忠義)의 대명사로 봉의 눈에 단정하고 긴 수염의 미염공 관우라면, 치켜 떤 고리눈에 쭉쭉 뻗은 턱수염의 장비는 용의(勇義)의 대명사로 비교하여 말할 수도 있을까,

우리가 삼국지에서 알고 있는, 누상촌은 유비가 자란 고향이고, 유비의 집 앞에는 크다란 뽕나무가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버스가 동네로 들어서며 보였던 학교에서 누상촌이라는 단어를 보았고, 삼의궁 내를 둘러보면서 보았던 뽕나무도 상징적으로 심어 논 것일 것이다.

전각의 중앙에는 유비가, 오른쪽에 관운장이, 왼쪽에 장비가 있었고, 군사인 제갈량과 방통, 오호장군 황충 등의 인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별도로 관성전(關聖殿)이라고 관우를 모신 전각이 따로 있었다. 중국인들은 관우를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이다. 또한 관우는 부의 상징이라고 하니 성인의 반열에 오른 관우가 부의 상징이라니 이해가 잘 안 된다. 도원결의 후 한번도 의를 저버린 적이 않아, 중국인 들은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니 그것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중국과의 문화 차이 일터. 알게 되면 언젠가 이해되겠지.

전임회장과 현재 회장 및 총무가 향불을 피워놓고 도원결의 맺은 그 자리에 섰다. 기념 촬영이 빠질 수 없다. 산행대장을 찾다가 여기 저기 사진 찍느라고 바쁜지 눈앞에 보이지 않자, 대타로 이원근 전임회장과 함께 3인이 복숭아밭 정자 앞 향로불 옆에 선 것이다. 3인의 도원결의 흉내 사진은 두고두고 웃을 수 이야기 거리가 됨직하다. 아마도 직전 회장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한뫼회를 열심히 이끌고 나가겠다는 무언의 다짐을 했을지도. 전체 회원이 보는 앞에서.

3-5) 랑팡에서 발마사지, 저녁식사, 천진에서 호텔 투숙

3-5-1) 천진으로 되돌아가는 길

삼의궁 구경을 마쳤을 때는 5시 반을 넘겼을 것이다. 천진으로 돌아가는 길은 중국시간으로 잠시라지만 2시간 넘게 가는 길이었다. 도로변과 들판에서 계속 보였던 것은 미루나무와 밀밭인가,

들판 밀밭에는 군데군데 “쇼”자처럼 생긴 구축물이 보였는데, 가뭄에 대비한 관정(管井)을 설치한 곳이라 했던가.

3-5-2) 랑팡에서의 발마사지

발 마사지를 하러 차가 멈춘 곳은 북경과 천진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랑팡(廊坊)이라는 도시다. 회장단은 잠시 고심하는 듯 했으나 늦더라도 예정대로 가기로 결정, 마지막 식사는 9시가 넘은 시각이라도 여기 근처에서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발 마사지는 중국에 올 때마다 연중행사로 한 것이라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또 아니했다면 서운했을 수도 있는 것이 우리들의 또 다른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리 마사지 방에는 박창기, 박재찬, 최정태, 김성기 다섯 명이었고, 온전 중국통인 박재찬과 반 중국통인 최정태는 마사지 걸인 어린 소녀 (15세정도?)들과 얘기하며, 그녀들이 동향인 운남 출신 소녀들로서, 도시로 직장을 구해 온 것으로 파악하는 듯, 이런 시시콜콜한 것이 우리 나들이를 오래 기억나게 만드는 것 들이다.

저녁회식 집은 두부요리로 유명한지, 식당 한쪽 벽면에 수십 가지 두부 요리 사진이 전시되어 있던 것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는 보진재초(寶進財招)(보물이 들어오고 재물을 불러모음)의 4개의 한자를 한 글자로 형상화시켜 대형 도자기에 적어서 식당 입구에 잘 보이게 해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즐겁게 요리와 술을 들며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회식을 마쳤을 때는 11시가
넘었다. 천진의 홀리데인 익스프레스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 했을 때는 12시 바로 직전이었다.

늦은 시각의 발 마사지, 늦은 저녁 회식은 하루에 원시 만리장성, 청서릉의 광세제 능, 직예총독부 관아, 삼의궁 전각을 둘러보는 강행군 탓이다. 첫날 일정 직예총독부 관람을 셋째 날 일정에 끼워넣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다행이었다.,


4. 넷째 날 (2014. 4. 20. (일) 귀국하는 날

4-1) 아침 시장에서 뜻밖에 깨와 콩을 사게 되다. (넷째 날 아침)

아침 산책길 시장에 들렀다가 땅콩과 검은깨를 사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노점상에서 과일/채소를 파는 주변을 둘러본 후다. 깨끗했던 호텔 방에서 내려다 보였던 호텔 앞길 건너 옆 도로에서다.

왼쪽에 시장 건물이 보였고, 입구에는 생선 비린 내가 났지만 구경 차 조금만 들어갔을 때다. 채 10m도 못 가서 맞은편 왼쪽으로 오고 있는 유석종 부부를 만난 것이다. 김인선 여사가 검은깨를 샀다며, 가이드의 소개로 구입하는 것보다 배 이상은 싸다며 조금만 사보라고 애정을 갖고 조언했고, 동기가 통역하고, 중국 돈도 대신 내주는 도움을 받아 검은 깨와 땅콩을 60위안치 샀다.
단돈 만원으로 기분은 몇 배나 좋다. 이런 것이 여행의 참 쏠쏠한 재미일 것이다. 뜻밖의 행운이다.

현지 콩과 깨 등 농산물은 가이드가 소개하는 시간이 따로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버스는 전일 천진으로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신청을 받은 시간이 있었던 모양, 그러나 임 총무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집에 가면 집사람에게 혼나겠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다. 이런 사정을 미리 알았더라면 석종이와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를 알렸을 것이다.

4-2) 고문화거리 방문 (넷째 날 오전 8:20 -9:00시 경 )

간단하게 뷔폐 아침을 먹고 8시경 바로 출발, 길옆에 자주 꽃을 피운 적오동나무도 보이는 거리도 지났다. 20분도 못 가서, 천진 시내 중국 관광상품을 파는 거리, 고문화 거리에 도착, 관광에 나섰다. 일정을 다 소화했기 때문에 다들 마음이 가뿐하다.

청대의 상가건물을 재현해 놓은 상가이다. 중국의 전통을 보여주는 서화, 골동품, 옥각제품, 서예도구 등 다양한 상품을 팔고 있는 가게들은 길 양 옆으로 줄을 서 있다. 저마다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천진관광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어 외국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필수코스라 한다.

9시까지 다시 모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중앙 광장에서 한쪽이 길이가 300m 쯤 되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호기심으로 중국 고문화거리 양쪽에 늘어선 상점을 기웃거리며 길 끝까지 나갔더니, 저만치 200m 거리에 “성당” 건물이 보였다. 구상교 동기가 그곳에 다녀온 다며 급히 뛰어간다.
언제나 조용한, 그 동안 천주교 신자 티를 전혀 내지 안았던 것 같은데, 결단력 있게 일행을 벗어나 뛰어간다. 독실한 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의 또 다른 모습이다.

총무 임병호 동기가 팔뚝만한 꽈배기를 샀다. 동기들에게 그 맛을 보게 하려고. 손가락 두 개 굵기에 한 뼘 정도의 작은 꽈배기만 알고 있는 나에게 두 뼘 길이에 팔뚝만한 굵기의 것은 내 눈에는 이색적이다. 옆에 이런 것 어디에 사용하는지 물어보니, 옆에서 중국에서는 제수용품으로 쓴다나. 그리고 여럿이 갈라먹는 모양, 이것이 기름에 튀겨서 만든 밀가루 과자, 소위 마화(麻花)라
는 과자인가. 중국에서는 향도 키만한 것이 있다니 우리와 단위가 다르다. 광활한 중국 볼거리도 많겠지만 이것도 상상불허다.


4-3) 남시식품가 (넷째 날 오전 9:00-9:30경 )

고문화거리 바로 근처였을까, 중국 고대 궁전 건축 양식을 채택하여 지어졌으며, 천진의 명소 중 하나가 되었다나. 여기서는 여러 가지 식품을 팔고 있다. 지나가며 시식으로 맛볼 수도 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누군가 나누어 준 반 쪽짜리 구불리포자(狗不理飽子)를 먹어 본 것이다. 보통 먹었던 만두와 별 다른 느낌 없이 그냥 먹어본 것이지만 그날 그 가게 앞에서 동기들 옆에서 오물오물 씹어 보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구불리 포자에 대한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구불리 포자를 먹지 않으면 천진에 올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진을 대표한다는 것이라고, 가이드가 첫날 천진을 소개하면서 들먹였기에 귀에 익었던 것이다. 가이드는 그 구불리로 불리게 된 배경을 재미있게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도 옆 사람과 구불리 만두는 발음이 비슷한 경상도 사투리, 등을 구부려, 머리 수구려 하는 말들이 연상이 되어, 꾸부리, 쑤구리 하면서 중얼중얼거렸던 생각이 난다.

4-4) 천진 공항으로 이동/마무리 발언((9 :30 - 10:30)/ 늦게 출국, 인천 2시간 연착

이제 공항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고문화거리/음식거리에서 꽈베기/만두 맛도 보았다. 둘러 보는 모든 일정을 마쳤다. 탑승시간 2시간 전 도착을 기준으로 천진 공항으로 향한다. 10:30분쯤 일 것이다. 공항에 도착했나.

공항에 도착하여 다같이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은 후다. 연태의 박재찬 동기부부와는 먼저 헤어지고, 출국 수속 마치고 탑승했을 때, 정시에 이륙하는 줄 알았으나, 한참 뒤 방송에는 군사훈련으로 이륙허가가 늦어지고 있다고 하더니, 비행기에서 기다림은 계속 이어지고, 2시간을 기다린 후에 허가가 났고, 인천에는 2시간 지체된 5시에 도착하였고, 이렇게 우리의 3박 4일간의
여행은 끝난 것이다.

4-4-1) 가이드의 한마디, 이것도 인연,

이렇게 만난 것도 대단한 인연이다. 중국 속설에 한번 만남은 400년의 인연이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인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생각나게 하는 말이다. 가이드를 하면서 만나 계속 만남이 이어졌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얘기했다.

우리도 첫 대면을 지각으로 만났고, 첫 일정이 비틀어 지는 바람에 약간 저어했던 감정이 봄 눈 녹듯 사라졌고, 3박 4일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성심을 다해 도와준 가이드가 매력적인 사람임을 느꼈고 수고했다는 말을 진심으로 내뱉을 수 있었다.

4-4-2) 박재찬 동기의 보시, 임병호 총무의 단 한마디 짧은 말

박재찬 동기 부부는 이번 여행길 4일내내 자기 제과점에서 만든 간식용 빵, 갈증 해수소용 생수, 매끼 필수반찬인 김치를 선사했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태항산 후기에서 이러한 동기의 음식 기부 사실에 대하여 이것이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될 것이라고, 소설가 이병주의 화법을 인용하여 그 행위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동기는 올해도 변함없었고, 4년전 우리가 곤유산을 찾아 갔을 때도 산동 연태에서 우리들을 찾아와 저녁 식사를 맛있게 업그레이드 시켜 우리를 대접하였다. 그날 저녁 동기의 아파트를 방문했던 3인의 친구들을 통하여 빵을 한 보따리 보내주어 익일 버스 안에서 받아 먹었던 적도 있다. 그러니 이번이 세 번째다. 우리 회원들간에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어서 설명이 따로 필요 없
는 사실이다.

이번 여행을 위하여 김용휴 회장과 머리를 맞대고 준비를 했고, 여행 살림살이를 도맡았던 임병호 총무는 살림살이에 열중해서 일까, 별로 나서는 것을 못 보았다. 그런데 단 한번 회원들이 알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는데, 여행을 마치고 출국 공항으로 오는 버스 안이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너무나 명백하여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라 했던, 박재찬 동기가 우리에게 베푼 사실에 대하여, 아직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분이 있다며,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을 자기 혼자서만 모른다면 괜히 옆 사람에게 오해 받을 수 있다며 (아마도 왜 이래, 이 친구 어디 갔다 왔어, 벌써 깜박하는 거야 하는 등의 의심을 받는 등 -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해석일수도 있다), 지적하고, 우리에게 베푼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는 안되며,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짧으나마 강한 인상의 한마디를 남겼다.

이원근 전임 회장은 임 총무의 한 마디가 웅변이라며 날로 성장하는 임 총무라고 추켜세웠던가. 따끔한 바른말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지당한 말이다, 무심한 자에 대한 따끔한 일갈과 베푼 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었다.

4-4-3) 벌써 내년 여행 구상에 들어간 김용휴 회장

버스가 공항에 근접하면서 이번 여행이 대미에 접어들고, 그 끝자락이 보이자 한 말씀, 이번 나들이에 참석해 준 여러분 모두, 특히 이곳 중국에서, 대구, 창원에서 동행한 분께 특히 더 감사하고, 이렇듯 즐거웠던 3박 4일의 여정이 끝나가는 것을 보니, 벌써 내년의 해외 여(산)행이 기다려 진다며,

우리들 보다 여러 발 앞서나가는 회장을 보게 된다. 벌써 내년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회장이다. 그때 얼핏 언급된 지역이 예를 들어 동남아의 ‘코타키나발루’ 이었던가, 어디로 가던 동기들이 가는 곳이면 장소가 문제이겠나 마는 앞으로는 일본이나 중국을 벗어나는 것도 생각해보자는 의미일 것이다.

5. 끝내는 말

김용휴 회장, 임병호 총무, 그대들의 결단/열정과 준비가 없었다면 이번 여행의 즐거움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작에서부터 끝마무리까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김진희 등반대장도 이번 여행 사진을 찍느라고 무척 수고 많이 했습니다. 다들 무척 고마워 할 것입니다.

훌륭한 사진 선별하여 홈피에 올리느라 수고한 회장과 함께 다시 한번 감사를 보냅니다.

그래서 한뫼회 나들이가 아름다운 모임임을 인정하고 내년에는 같이 갑시다 라고 벌써 신청해온 박일환 동기의 격려에 또 다른 힘도 얻었을 것입니다.

회장단을 포함한 같이 움직인 동기들과 회장님 말씀처럼 꽃보다 예쁜 영부인 여러분이 함께 해주어 더 행복했습니다. 구/교/곤/향/기/희/환/숙/휴/희/찬/순/기/철/종/선/봉/근/호/식/옥/태 그대 모두들의 정다운 이름을 일일이 불러봅니다.

한뫼회가 있어 이렇게 만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뫼회 만만세를 부릅니다.

나는 한뫼회 회원들이 좋습니다.

건강하시길,


2014. 5. 17.

50회 동기 김영환

2014. 4. 17- 4.20

중국 백석산/공중초원 나들이 참석자 명단
참석자: 22명 (동기 16명 + 부인 6명)

강창구, 구상교, 김문곤/이국향, 김성기/정선희, 김영환/송희숙, 김용휴,
김진희, 박재찬/남분순, 박창기, 신경철, 유석종/김인선, 이상봉, 이원근,
임병호, 전희식/김영옥, 최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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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백석산등 나들이 얘기 후편 2014-05-17 김영환 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