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반도 국립공원은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변산반도가 있어 서해안이 아름답다니. 서울 동기 들은 거의가 초행인 듯 했고 이번 합동야유회 기회를 잘 살렸다. 여느 때보다 많은 동기들 45명(최, 방, 유, 윤, 송, 박, 이, 서, 설, 김여사 등 12명의 부인 포함)의 동기를 가득 실은 서울발 금성관광버스는 만차를 기록, 쉽게 깨뜨려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 날을 건설사 소속으로 러시아 등에 있었다는 김대식 동기, 해외생활을 많이 했을 대사 출신 오상식 동기, 고위 관료 출신 교수 정해방 동기도 동승했다. 세월의 힘에 유철 총무의 노력이 맞아떨어진 것인가. 대구팀도 잘 안보이던 주명진 동기를 포함 34명이 참여했으니 성황이었다.
참석인원에 비해, 대구/서울서 왕복 장시간 9시간/8시간을 써가며 산과 바다를 같이 볼 수 있는 이번 야유회에 온 동기들의 움직임은 이전 보다 덜 활발했던 것 같아 짠하다. 동기/부인들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음인가. 부인 중에는 무릎연골통증으로 당일 걸음 걷기를 접은 분도 있었던 것 같고, 그렇다고 대구 부인 13인 전부가 걸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구 팀 중에서 직소폭포 – 재백이고개 - 관음봉삼거리 – 래소사로 끝까지 걸었던 동기는 전희식, 김문곤, 강태호 동기 빼놓고는 없었던 것 같다. 이 동기들이야 역전의 용사지만 왕년에 잘나가던 대구의 다른 동기들은 왜 안보였을까, 서울 팀의 상황은 좀 나은가. 원체 걷기를 좋아하는 많은 동기들과 세분 최여사, 방여사, 김여사는 끝까지 동행했으나 그래도 보행에서 처음부터 빠진 동기도 적지 않은 듯하다. 버스로 이동 했을 대구 동기의 부인 몇 분은 능가산 래소사에서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이번 길은 평소에 비해 길었던 것도 험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이유로던 많은 동기들이 걷기보다는 버스로 이동하였다면 그것이 당초의 계획대로라거나 신체상의 부득이한 이유라면 몰라도 혹시나 의사전달에 손발이 안 맞았다면 좀더 세밀함이 필요할 듯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걸으면서 햇볕을 쪼이며, 바람을 쏘이며 온 몸으로 자연과 교감하며 담소하며 자연스레 정을 쌓는 것은 당일의 대단원이었던 채석강 횟집에서의 전체의 회식 정담 못지 않은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당일 공식 행사의 클라이맥스이자 대단원은 채석강의 “황금어장횟집”에서 산낙지 등 여러 가지 회와 대게 찜, 개불. 찌개 등으로 시각, 후각, 미각이 즐겁게 배불리 푸짐하게 먹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참석자에겐 두도 두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최 측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긴 해도 그날 두 세시간 변산에서의 걸음이 없었다면 그리하여 직소폭포나 산에서 내려다 본 래소사 정경, 또 그 일주문을 지나쳐 사천왕문, 대웅전 등을 걸어보지 못했더라면 당일 나들이의 의미는 반감했으리라.
이번 기회는 순전히 대구/서울 동기회 (임원진) 준비 덕분이다. 2호선 잠실종합운동장역을 출발, 경부고속도로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차창 밖으로 서해 대교, 푸른 보리밭, 노란 유채꽃 밭, 방조제, 햇살에 반짝이던 은빛 서해 바다를 보기도 하며 달리기 약 4시간 후, 11시 20분 경인가, 버스를 타고 변산초입에 들어서는 변산골짜기는 아직 꽃피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벚꽃들은 서울에서는 다져버리고 잎이 나날이 더 푸르게 바뀌고 있었는데, 변산의 꽃나무는 때를 잊었는지 북쪽 서울에 비해 한참 남쪽임에도 불구, 꽃은 오히려 절정인 느낌 이었다. 산속이라서 계절은 늦게 오는 것이었던가.
먼 길로 시간 소비를 많이 한 탓인지, 아직 갈 길이 많은 탓인지 서울 팀이 변산 국립공원 변산 분소 주차장에서 먼저 와 기다리던 대구 팀과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화장실에 다녀올 틈도 없이 서울 팀이 먼저,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곧장 자연보호헌장탑까지만 가서 멈추란다. 먼 발치에 언뜻 스쳐 지나친 무슨 암자를 바삐 지나며 임시 집결지에 모였을 때는 점심시간이 되었다.
더 직진하여 산을 넘을 것인지, 후진하여 버스로 돌아가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것인지에대해 잠시의 웅성거림이 있는 듯, 각자의 의사에 일임하는 것으로 방침은 정해진 듯, 직진하여 더 가보았자 다수가 앉을 더 좋은 중식 장소가 없으니 거기서 우선 민생고를 해결한 후 움직이기로 하는 결론에 따라, 근처 평지에 자리를 잡고 빙둘러 앉는다. 점심을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달걀과 과일 등 간식만 가지고 왔으나 운 좋게도 옆 자리가 명당이었다. 삶은 달걀 하나 주고 김종호 동기가 풍성히 가져온 통통한 닭다리도 얻어 먹고 또 옆에서 김밥도 얻어 먹으며 저비용 고효율로 상대적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새롭다. 옆자리 이원근 동기가 권하는 호박 고구마는 고맙지만 사양이다. 약간 과장하면 흉년에 배터져 죽을 정도, 하여튼 줄은 잘 서야 되나 보다.
이날의 산행은 전임 재경동기회장을 지낸 박달수 동기가 감사하게도 동기들을 이끌며 수고해 주었다. 시간을 맞추느라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곧 걷기 시작, 행인의 편의를 위한 듯 길게 설치해 놓은 나무 바닥 길, 걷기에 힘들지 않았던 편안한 계곡 산길, 크지 않은 규모지만 의젓하고 단아했던 직소폭포가 반겨주었고, 폭포수가 보이는 근처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걸음 계속, 재백이고개라는 이름의 삼거리에 올랐다. 거기서 래소사까지는 부부의 형편에 따라 잠시 헤어지는 부부도 생겼다. 어떤 동기는 오르막길 암릉길을 택하여 시간 반이 더 소요되는 직진하는 더 먼 길을 선택하였고, 다른 동기는 약간이라도 수월한 길을 택하여 우측으로 직진 하산 후 우회하여 내소사로 향했다.
다수가 올랐던 오르막 길엔 암릉도 있어 관음봉 삼거리까지 조금은 숨찼던 점도 있었으나 오르막길 도중 잠시 숨을 고르며 뒤돌아 내려다보며 쉬어가는 가는 맛은 냉수 못지 않게 후련하다. 관음봉 삼거리에서 래소사 (來蘇寺)까지는 힘이 들지 않은 내리막길, 경사가 좀 있었다. 산기슭 평지에 뒷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반듯한 규모로 자리잡아 친근하게 느껴졌던 래소사의 정경, 천년을 버티며 이 절의 연륜을 보여주며 장엄하게 서있는 넉넉했던 느티나무, 단청이 없었던 대웅전의 나무 색깔 그대로의 연꽃무늬문살은 한층 정겹게 다가왔고, 쪽 바가지로 마실 물을 받으려고 순서를 기다리던 쑥돌 샘물대, 전나무 숲길 바닥에 떨어져 수북이 쌓여있던 황소 털 같았던 작은 누런 침엽수. 동기들은 제각기 이번 야유회에 대한 추억을 나름대로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변산의 낙조대에서 일품이라는 저녁 노을은 보는 기회를 갖지 못했어도 이번 초행의 기억으로 이제 변산반도 국립공원 하면 바로 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2004년 10월 고향 초등학교 동기들과 고창의 선운사를 지나친 적이 있으나 그땐 변산까지는 기회가 닿지 못해 안타까워 했는데,
당일의 하이라이트는 채석강 횟집이다. 만권의 책을 쌓아 올려 놓았던 것 같은 절벽 채석강의 바닷가를 둘러보고, 그 작은 규모에 실망하면서도, 로렐라이 언덕이나 세느강도 별 것 아니더라는 비교설명도 귓전에 스친다. 한 켠에 자리잡은 횟집에는 대식구가 양쪽 방을 차지했고, 4인에 한상씩 차린 회와 음식을 먹기에 모두들 바쁘다, 지방 방송이 발호하는 터에 중앙방송이 설자리를 잃은 것인가. 임진택 재경동기회 회장은 “일마들아 말들어라”라고 정스럽게 일갈했으나 아침 버스 안 인사말에서 모처럼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는 한마디 메시지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유철 총무는 회식 자리에서 술 등이 모자람이 없는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동기들이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동기회를 책임지는 회장단 덕분이었다. 감사한다.
당일 김대환 동기회 회장은 개인적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동기회 홈페이지에 올린 회장의 진솔한 말을 들어보자. “먼저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동기회장이라는 직함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기생들이 가장 많이 참석하는 합동 야유회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변명으로도 용납이 되지 않겠지만 어린 시절 6년을 한 교정에서 같이 뛰놀던 우정으로 한번 용서하여 주십시오….”. 얼마나 진솔한가. 이런 말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몇 해전 대구 동기들과 산행 중 웃으며 얘기하던 중에 일본 말 “나와바리”라는 용어를 들어 배운 적이 있다. 조폭의 “세력권” 정도의 뜻일까. 누가 우리의 안방에 들어와 주인 노릇하겠다고 나서면 우린 가만히 있겠는가. 왠 난데없는 “나와바리” 타령인가. 그것이 지역이든 인격이든 남을 비하하지 말자. 남을 존중해 주지 않는 한 우리라고 그냥 타인으로부터 존중 받을 수 없다는 게 평범한 진리 아닐까. 남을 비하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을 낮추는 것이되고 결국 50회 동기의 자존에 상처를 입히는 일에 다름 아니다.
얻어 먹는 거지 근성이 체질화 된 것인가, 대구에서 가져왔다는 떡 한 조각, 술 한잔 얻어 먹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이번 야유회 다 즐거웠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욕도 SBRM 한박자 보다는 NGM SB JD 3박자가 정도 되어야 유모어가 된다는 것도 들어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