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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이센 트레킹
이름   김영환 등록일   2012-06-11 오후 9:43:00
e-mail   ywhkim@rhilaw.com
내용
다이센 트레킹 2012.5.17.-5.20

I. 신성한 땅 돗토리현 다이센을 찾아서.

한뫼회는 5월 18일 일본 돗토리현(鳥取縣) 다이센(大山, 1709m)을 올랐다. 작년 중국 산동성 곤유산에 이어 세번째 해외 산행이요. 일본 산행으로는 재작년 큐수(九州) 유휴다카(由布岳)(기점816m, 정상1584m)산행에 이어 두 번째다. 다이센은 몇 년 전 NHK가 실시한 ‘일본 명산 랭킹에서 일본인이 좋아하고 가장 많아 찾는 산 중에서 으뜸은 후지산(富士山 3776m), 2위 야리가다케(槍ケ岳 3180 m)에 이어 3위에 오른 명산이다. 다이센은 봄의 신록,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스키 등 계절별 특징이 뚜렷하여, 한번 오른 뒤 다시 찾고 싶은 산 1위를 차지한 산이라나. 5월18일, 우리는 여름을 앞둔 늦봄에 이산을 찾아 신록에 파묻혔고, 이 산 북벽 기슭에 쌓여 반짝이든 하얀 눈 얼음 만년설도 보게 되는 행운을 가졌다.

1) 산사, 신사를 지나 계곡에 이르다.

버스가 다이센 등산 입구 주차장에 멈추어 섰을 때는 11시 20분경이었다.
사카이 미나토(境港) 항구에 9:30 입항, 10:30 입국 수속을 마치고 관광버스로 약 50분 달려온 것이다. 서울에서 출발한지 만 24시간 후이다. 전날 18:30 동해를 출항한 여객선 DBS크루즈 페리는 동해 바다길 386 km를 14시간 달려온 이후다. (DBS는 동해의 D, 블라디보스톡의B, 사카이미나토의 S의 영어 첫 글자를 딴것이다, DBS 크루즈 페리는 길이 146m, 폭 20m, 톤수 13,000톤이다)

배낭을 챙겨 다이센 자연역사관 옆에서 모인다. 구름이 낀 다이센 산 쪽을 배
경으로 사진 한 커트 찰칵, 곧바로 산행시작이다. 해발 780m 산의 중턱이다.
정상 1709m까지는 표고차가 920m이다. 서울의 청계산이나 관악산의 높이가
618m, 629m이니 아무리 봐주어도 1배 반은 더 올라야 한다. 부인들에게는 힘
든 산행일 수도 있겠다.

선두가 방향을 잡는다. 안내 일정과 달리 출발 코스에 변경이 생겼다.
나츠야마도잔구치(夏山登山路入口, 780m)-산고메(三合目 1,070m)-고고메(五合
目 1,245m)- 교자다니와카레(行者谷分岐點)-로코고메(六合目)-하치고메(八合
目 1,580m)-정상(1,709m)의 코스가 아니다. 이 길은 짧되 가파르기 때문이다.

왼쪽으로 가는 다이센지(大山寺)- 오가미야마 신사(大神山 神社)- 모토다니
(元谷) 오두막 아래 3거리 계곡-교자다니와카레(行者谷分岐點)-로코고메(六合
目)-하치고메(八合目 1,580m)-정상(미센 1,709m)의 코스를 택한다. 기점에서
계곡 길까지는 완만하고, 계곡에서 교자다니 분기점까지는 가파른 길이 짧기
때문이다. 부인처럼 약자를 배려한 코스 선택이었다.

출발은 깔끔한 돌 바닥, 타일 길 동네길이다. 길 양편으로 고만고만한 2,3층
높이의 건물이 줄을 서 있다. 연륜이 깃든 삼나무도 높이 솟아있다.

채 10분도 못가서 도리이(鳥居)라는 일본의 전통 문이 나타난다. 보통 신사의
입구에 서 발견되는 것이란다. 그 모양이 한자 평평할 견(幵)를 닮았다. 두
개의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 끝을 연결하는 위의 가로대와 아래의 가로대가
평행으로 걸친 것이다. 우리의 산사 입구에서 먼저 만나는 일주문(一柱門)격
일까, 길은 평돌 바닥이다. 길 양 옆 고랑에는 맑은 물이 콸콸 흐른다. 길옆
산비탈에는 백년은 족히 넘었을 곧게 잘 뻗은 아람들이 푸른 삼나무(스즈키,
森木)들이 상쾌한 기운을 내뿜는 듯하다. 큰 나무 밑 둥과 돌에 어둡게 파란
이끼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를 처음 맞는 곳은 절 다이센지(大山寺)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면
서 출구에서 안내지를 가져왔다. 거기의 다이센 하이킹 코스에 의하면 718
년 긴렌쇼닌(金蓮)이 초암(草庵)을 지어 지장보살을 모시며 수행을 위한 근
본 도장을 삼은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865년에 지카쿠 대사에 의하여 천태
종으로 되었으며, 헤이안시대 말기 및 무로마치 시대에는 160개의 승방과
3000명의 신자를 거느린 거대한 사원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라고 소개되어
있어, 한때는 극히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1875년 메이지시대[明治時
代]의 폐불훼석[廃仏毁釈] 정책으로 다이센사의 호(号)가 폐지되어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1903년 다이센사의 호가 부활되었다고 하는 1300년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우리가 스쳤던 분위기가 어두웠던 건물은 한국 절의 대웅전에 상당하는 곳
일까, 한국의 대웅전은 탁 트인 곳에 자리 잡고, 앞마당이 있고, 건물 안팎
을 단청으로 꾸며 화려하다. 초파일(5월28일) 일주일 전인 그 때쯤, 한국
산사 경내와 그 입구에는 연등이 촘촘히 수 놓고 있을 터인데, 일본 이곳에
선 그런 분위기를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일부를 보고 전부를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그것도 피상적으로 스쳐 지났을 뿐이지만, 길옆에 서 있던 돌부
처, 꼬마 돌부처는 빨간 모자와 옷을 걸쳤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 아니
다. 일본의 불교는 신도(神道)와 혼인한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치 순수하지 못하고 일본의 토속 신도에 많이 섞어진 것인가.

길옆에 연명 장수한다는 안내문이 있는 어신수(御神水)라는 곳에 물 맛을 보러 줄을 선다. 바로 위에 유명한 오오가미 야마 진쟈 오쿠노미야 (大神山神社奧宮)가 있다. 규모가 산사보다 크다. 원래는 다이센의 산신인 다이치묘곤겐을 모셨으나 메이지 시대 초기의 신불분리정책에 따라 현재의 제신은 오나무치노미코트(大己貴命)이라고 한다. 이곳은 국가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나, 일행과 사진을 찍자 마자 그냥 지나쳤다.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T자 지붕의 건축양식이었나.

2) 북벽 아래 계곡의 경치

신사를 지나 계곡까지는 완만히 걷는 구간이다, 길섶에는 파랗게 자라고 있는 풀은 우리 땅의 그것과 다름 없고, 고사리가 보여 반가웠다.

1시간 걸음, 정오가 지난 시각에 계곡 도착이다. 그 입구에는 큰 돌이
보였으나 바닥에는 주먹만한 작은 돌멩이가 널려 있다.
선두가 멈추어 후미를 기다린다. 이곳은 주변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오른 쪽으로 올려 보이는 산 정상과 왼쪽으로의 늘어선 뾰족한 봉우리들, 병풍 같은 검은 암벽 아래로 보이는 여러 개의 골짜기가 보이고, 거기에 쌓인 하얀 눈이 반짝이는 게, 마치 골짜기 호수마다 하얀 물이 채워져 있는 듯하다. 봄바람에 눈 녹는다는 말은 이곳만은 피해간 것인가. 이 북벽에는 매년 수천 톤에 달하는 토사와 돌이 붕괴되어 산의 모습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고 하니 이 세상에 무상 아닌 것이 없음을 느낀다.

저 계곡에 쌓인 눈도 있고, 능선과 기슭에 우거진 푸른 숲의 나무도 많은데
도 이 큰 산기슭 냇가의 바닥과 돌은 메말라 있다니,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다가 곧 땅으로 스며들어 물이 귀한 그런 산일까 하고 의문을 품어본다.

때마침 산 정상 주변에 걸쳐있던 하얀 구름 무리와 새파란 하늘은 보기만해도 상쾌하다. 시꺼먼 검은 구름도 한 움큼 섞여 있다. 산중의 날씨가 변화를 부려 언제 소나기로 변하여 잘하면? 시원한 비를 맞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바로 뒤의 큰 나무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저쪽 관목의 맑은 연두색 이파리, 더 멀리 산비탈과 능선에는 진한 녹색의 숲, 과연 신록의 세상이다.

윤병주 동기는 우리들이 모습을 담는데 열심이다. 물론 한뫼회의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윤영순 여사가 나눠주는 스니키즈 아몬드를 바를 옆의 동기와 나누어 먹으며 에너지를 비축한다, 12시 20분, 정오가 지났다. 점심은 좀더 가서 갈림길(하산길과 정상길)로 올라서서 먹기로 한다. 배고프다고 보채는 사람이 없으니 다시 산행이다, 이제부터는 오름 길이다.

3) 교자다니와카레(行者谷分岐點)에서 두편(정상길/하산길)으로 찢어지다

교자다니 분기점은 하산 갈림길이다. 이곳은 표고차 930m의 딱반을 오른 지점을 표시하는 오고메(五合目1,245m)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다.

계곡에서 여기 분기점까지는 1.1km 정도의 거리다. 그 500m 정도 올랐을까,
계속 이어지는 계단 길을 오르며 집사람은 영 맥을 못 춘다. 가슴이 터질 듯 하다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괜찮은 작품하나 건지려는 듯 주변을
살피며 뒤에서 서행하던 구자호 부부도 앞서갔고, 꼴찌로 오던 이진권 동기도 우리를 추월했다. 어떻게든 모여서 다 같이 점심을 먹는 곳까지는 가야 한다. 더 이상 오르지 아니하고 중도 하산하는 분을 만나 집사람이 동행할 수 있게 되면 최선이다. 나는 꼴찌라도 정상으로 향한 동기들을 뒤따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다행이다. 1시 20분경이었을까, 겨우 분기점/갈림길에 올라서니 동기들이 보인다. 반갑기 그지 없다. 5합목에 연결된 길섶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다. 때마침 어린 일본 남녀 학생들이 소풍을 왔는지 산을 오르고 있다, 올라오는 터에 길은 꽉 찼다. 동기들 곁에는 앉을 만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알아보니 윤영순 여사와 이국향 여사는 여기서 하산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집사람과 같이 동행할 일행이 생겨 안도하며, 동행부탁을 부탁을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된다,

후딱 도시락을 까먹는다. 이미 일부 동기는 정상을 행해 이미 출발했고, 늦게 점심을 먹으며 처져있는 나를 기다려준 임병호 동기와 서둘러 6합목을 향해 출발이다.

길은 어린 학생들로 가득하다. 흰색 모자에 남색 옷을 입은 중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올라오는 모습이 마치 남극의 팽귄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학생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보며, 인사성 밝게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건넨다. 나도 곤니찌와로 맞받으며, 한걸음씩 위로 오른다. 영어 몇 마디로 몇 학년이며, 몇 명이나 왔느냐고 물어보니 중학교 2학년이며 250명이 왔다고 한다. 학생들의 츄리닝에는‘小田原’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4) 미센 정상(1709m)에 오르다.

딴 방법은 없다. 오직 한걸음 한걸음씩 오른다. 6합목이 나타났고, 7합목,
8합목을 지나쳐 드디어 정상 접근이다.

등산 코스 안내서에는 6고메(合目) 근처에 오르면 너도 밤나무 숲은 끝나고,
마가목, 산버들, 꽝꽝나무 등의 키 작은 관목이 나타나고, 오를수록 키가
낮아지며 정상이 가까운 8고메(合目)에서는 주목의 순림으로, 산 정상 부근
에서는 구개초등의 식생지로 변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서 올라간 중학생들이 정상 근처에 줄지어 쉬고 있다. 주목 군락이 있는
곳에서는 주목 높이에 맞추어 나무 데크 길을 만들어 놓았다. 정상이 저만
큼 보이는데 발걸음은 무겁다. 정상에 도착하면 가져온 포도를 먹자며 힘내
라고 임병호 동기가 격려한다. 힘들게 오른 만큼 그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정상석을 앞에 두고 증명사진을 찍는다. 임병호, 김문곤, 구자호, 이원근, 김용휴, 김진희, 김종곤, 윤남숙, 김영환, 윤병주가 사진에 나타나 있다.

윤남숙여사는 윤병주, 김문곤 동기와 함께 마지막으로 정상을 올랐다. 산행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부군 김종곤 동기가 다른 일로 산행을 오지 못해도 혼자 한뫼회 산행에 동참할 정도로 열정을 가졌으나 한동안 뜸했다. 외손녀 돌봐야 할 특별 사정이 있었다나, 이번에는 용케 기회를 살렸다. 그리고 부인들을 대표하여 이곳 정상에 오른 것이다.

임병호가 락앤락에 담아온 청포도를 꺼집어 낸다. 작은 송이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 산상에서 뜻밖의 청포도라니, 달콤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정상에서 정상주로 쏴한 소주 딱 한잔이 간절하지만, 짧은 내 생각을 어찌하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포도주 대신에 포도다.

박달수와 전희식 동기는 먼저 정상을 밟고 앞서 내려간 모양이다. 김진희
등반대장은 계속 남아서 우리 다수 일행의 앞서서 내려가지만 훌쩍 혼자 내
려가지 않고 뒤에 따라오는 후진과 거리를 유지하며 나름 신경을 쓰고 배려
함이 읽혀졌다,

우리는 왜 산에 오는가? 왜 여기 정상에 올라와 있는가? 높이 올라 갈수록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도 그 한 이유인가. 멀리 바다도 보인다. 일본의 서해이니 한국에서 보면 동해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주목 군락을 가로 질러 내려간다. 하산하는 학생들을 피하여
정상 근처 오두막 아래 길을 택한다. 주목 군락 속에 눈이 쌓인 하얀 눈
얼음지대가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미끄럼을 타보며, 윤병주
동기가 찍어주는 사진의 모델이 된다.

내려가는 길은 여유롭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시인 고은 의 짧은 시가 생각난다. 8합목 정도였을까, 나무에 막 움터 피어 있는 모습이 버들강아지를 닮았다. 이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그 때는 자신이 없었으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때 보았던 그 움튼 나무는 산버들의 그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기들과 내려오며 우스개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흥부가 놀부 집에 찾아가서 형수에게 뺨을 4대나 맞고 돌아왔는데, 그 이유를 아시는지요? 저흥분데요 버전은 빼지지 않는 고정메뉴다. 지난날 학창시절, 한 주먹 하던 동기들간의 계파, 알력 등 숨은 비화도 일부 들추어 진다. 어쩌면 아픔일 수도 있고, 치기였을 그 때를 스스럼 없이 되돌아보는 나이인가. 우리가 그만치 인간적으로 성숙했다는 반증 아닐까, 그랬군, 그런 일이 있었군, 공감하며 같이 산길을 내려오던 그 때는 분명 귀중한 교감의 시간들이었다.

교와다니 분기점에서 하산한 세 부인은 6고메 이하에 분포되어 있다는 너도
밤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봄 꽃이 많이 핀 것을 보고, 마치 꽃 정원을 거닐
었던 느낌을 받았나 보다. 하산 등산 입구에서 다같이 따뜻한 물에 족욕도
하며 나름대로 재미 있었다니 다행다행이다. 일행 전부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6시가 다 되었다. 다들 수고 했다.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II. 호텔 저녁과 아침의 풍경
1) 큐카무라 히루젠(休暇村茲山高原) 호텔로 이동하다.

18:00 직전, 출발했던 등산로 입구로 회귀한다. 숙소 호텔로 가서 샤워를 하고 꽤 괜찮다는 저녁 뷔페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동쪽으로 한 50분 달려 해발 500m고원지대에 있는 큐카무라 히루젠 고겐 호텔이 나타난다. 되돌아 보니 멀리 떠나왔던 다이센이 보였다. 7시가 되었다. 호텔 식사는 8시까지라나 뭐라나, 배정된 방에 가방을 옮기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할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식사가 급하다. 가방은 호텔 로비에 함께 임시로 맡겨 둔채 식당으로 발걸음이다.

저녁은 해물,나물,두부요리 등등 깔끔하고 푸짐하다. 몇 번 도니 배가 부르다. 김용휴 총무가 시원한 맥주 몇 병을 주문한다. 소주파도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맥주에 간을 맞춘 소맥의 맛도 보게 된다. 이원근 회장의 건배가 보태진다. 주야장청 한뫼회 발전뿐이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큰소리를 낼 수 없다. 김종곤 재경동기회 회장은 이곳 호텔 음식이 상당히 맘에 든 듯, 서울의 일류호텔에 못지 않다면서 2년 후에 부인 윤남숙여사의 회갑연으로 가족이 여기 와서 해도 좋겠다며 후한 점수를 준다.

서둘러 배를 채우고, 각자 배낭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술값 계산을 깜박했다며 총무가 갑자기 되돌아 선다. 276호실 화장실에는 샤워 시설이 없다, 온천 온탕은 4층에 있다. 산행으로 흘린 땀 씻어야 하지 않나. 배 꺼질 때까지 기다려 9시경 목욕탕에 올라간다. 이회장과 김총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급히 샤워를 하고 방으로 내려온다. 안주 봉지를 들고 있는 김문곤 동기를 만난다. 술 생각이 있으면 1층 로비에 오란다. 생각나면 가겠다고 대답, 잠시 후 방문을 열어보니, 김 총무가 1층으로 가며 내려올 때는 컵 두 개를 들고 오란다. 잠시 후 집사람이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오는 것을 보고, 궁금하여 1층으로 내려 갔더니 벤딩머신 앞의 의자에 김종곤 동기, 김문곤 동기, 김용휴 동기가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다. 일찍이 쓴 맛을 보아 보약이 되었다는 대중 출신 동기들 얘기, 쓴맛을 경험치 않아 강해지지 못했다는 일부 경중 출신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 등등 중.고교시절의 얘기, 우리들 자신과 가족의 얘기, 마작만 빼 놓고 잡기는 다 해보았다는 얘기 등등. 11시경 각자 부인과 룸메이트가 있는 각자의 다다미 방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루가 끝났다.

다음 다음날 아침 배를 타고 돌아오는 아침에 배에서 식사를 하다 보니,
회장을 비롯한 동기들의 의문은 다다미 호텔 방에서 떨어져 있던 두 개의 다다미가 가까이 이동했는지 하는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하면 회장단이 이번 일본 나들이로 부부에게 합방할 기회를 주었는데 합궁을 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내 대답 왈, 부인이 곁에 없는 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옆에 부인이 있어 운우지정을 나눌 이런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이게 바로 부인을 무시해도 크게 무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니, 그 대답이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 이런 질문만 하지 마시고 앞으로는 다른 사람도 회장님께 이런 질문할 기회를 주도록 해야 공평한 일이 아니겠소.

2) 5월 19일 아침 호텔 주변을 산책하다

츄코구 지방 중부에 자리잡은 호텔이 있는 이곳은 표고 500m의 고원지대다.
눈을 떠니 5시 조금 지났다. 4층 대목욕탕으로 면도를 하고 와도 5시 30
분이 넘지 않았다. 아침 식사시간 7시 15분까지는 시간이 남는다. 때는 계
절의 여왕 5월, 이 아침을 방 안에서 보낼 수는 없다. 연두 빛 푸른 신록이
가득한 이곳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없다. 바로 호텔 주변을 걷기로
하고 집사람과 주변을 걷는다. 서관 왼쪽으로 다이센 산이 저 멀리 보인다.
주위의 삼나무가 풋풋하게 잘 뻗었다. 차도 주변 풀이 이슬에 젖어 있다.
쑥과 클로버가 반갑네. 다니는 차는 거의 없다. 오른 쩍으로 눈을 돌리면
우주관람차(wonderful ferris wheel)가 보인다, 이곳이 리조트 지대임을 알
게 한다. 박달수와 신경철 동기도 호텔 주위를 돌고 있다. 이름 모를 꽃들
이 인사를 한다. 핸드폰으로 몇 개 담아본다. 작약 종류일까. 무척 예쁘다.
어느덧 아침식사 시간이 다가오고 너도 나도 식당 건물로 얼굴을 내보인다.

산책을 하였으니 입맛이 더 있다. 좋은 곳에서 좋은 식사다. 동기들과의
걸음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곳이 내게 다가 왔겠는가. 선연에 감사한다.

8시 40분까지 체크아웃이다. 방 키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기다리던 버스로
짐을 옮긴다. 다들 일찌감치 버스에 짐을 실었다. 다 왔는데 회장이 늦다고
수근 대고 있다.


III. 산행 다음날 돗토리 명소를 찾아 나서다

1) 진푸카쿠(人風閣)를 둘러본다.

8:30 버스는 호텔에서 멀리 동쪽 돗토리시로 달린다.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곳이 지대가 높은 곳임을 알게 된다. 일본은 깨끗한 나라다. 1987년 도쿄 아까사까 도꾸호텔 주변을 아침에 걸어본 적이 있다. 4반세기전 당시 보도 블록이 마치 타일처럼 정교했고, 정말로 깨끗한 거리에 놀랐던 기억을 떠올린다.

한 2시간 달려 돗토리시 진푸카쿠(人風閣)에 도착한다. 규소잔(久松山)산,
돗토리성 유적지 근처에 있는 것이다. 인풍각 근처 산에 밤나무 꽃이 많
이 피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푸른 산의 곳곳에 두리뭉실하게
하얗게 핀 모습이 수국이 탐스럽게 핀 것 같은 것은 밤꽃이었다.

인풍각 주변에서 성을 둘러싸고 깊이 판 해자를 구경할 수 있었다. 당일의
첫 방문지 진푸카쿠에 도착이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안을 구경한다.
돗토리시 안내서를 보면, 진푸카쿠는 돗토리의 영주였던 이케다(池田)의 별장으로, 메이지(明治) 40년(1907년)에 완성되었던 백아의 목조기와 2층 건물이다. 당시의 황태자 전하(후에 다이쇼(大正)천황)가 산인(山陰)지방 행차시 숙소로 사용되어 유명하다고 하며, 메이지(明治)시대, 다이쇼(大正)시대의 분위기가 인상적인 르네상스 건축물이다. 1910년에 완공한 르네상스 건물이었던 열주식(列柱式) 르네상스식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이 순간 연상되었으나 진푸카쿠에는 열주(줄지어 늘어선 기둥)가 없는 것만 빼면 그 외관은 닮은 느낌이었다.

현관에서 1층 입구까지 자갈이 깔려 있고, 자갈 밟는 소리로 외부인의 접근을 알게 했다는 등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슬리퍼를 신고 1층 내부를 둘러보기 위하여 등산화를 벗고, 또 신고하면서 시간이 걸렸던 일, 앞 사람을 따라 건물 뒤편으로 가서 잔디밭 일본식 정원에 서서 금붕어가 뛰놀던 연못과 찬란한 햇빛에 반짝이던 정원 숲을 배경으로 동기들이 같이 서서 사진을 찍었기에 기억이 남는 곳이다.

2) 돗토리 사구언덕을 둘러본 후 점심 해물도시락을 먹다

11:20 경 인풍각 구경을 마친후 일본 최대의 모래언덕으로 유명한 돗토리사
구 방문이다. 10만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것인데, 바다 바람에 따라 한시도
멈추지 않고 모습이 변한다 하여 살아있는 모래 언덕이라고 한다. 2인씩 리
프트를 타고 만발한 아카시아 흰 꽃을 내려다 보며 해안선으로 내려와, 모
래밭을 걷는다. 등산화를 신고 있으니 장화로 갈아 신지 아니해도 전혀 불
편이 없다. 200미터 정도 서서히 내려가는 곳이 끝나면 다시 오름 길이다.
50미터 높이인데 경사가 45도는 될 듯 싶다. 모래 언덕으로 올라서니
다시 언덕너머 가파르게 모래가 끝나는 곳은 해변 가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
다. 이곳은 일본의 서해이니 한국의 동해건너 바다이다. 기념사진을 찍는다.
언제 다시 오겠나. 부인들은 모래밭은 좋아했다. 맨발로 거닐며 옛날 어머
니 들이 찾았을 그 시절의 모래찜질 강가 모래사장을 상기했을지도 모른다.

돗토리 사구센타 4층 도시락 점심
정오가 막지나서 돗토리 사구센타에서 점심을 먹다. 4층 해물 도시락은 조개, 버섯을 넣은 해물찜통밥, 소바, 새우와 연어, 가리비 찜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담은 것으로 일본 식의 요리는 담백했고, 참신했다. 새로운 조합의 먹거리 경험이었다.

3) 바람의 언덕 (한일우호교류공원)

톳토리사구 센터에서 해물 도시락 점심을 먹은 후 해변을 달려오던 버스는
해변가 휴게소 비슷한 곳에 세운다. 2시경인가. 이곳은 한일우호교류공원이
라는 ‘바람의 언덕’이라는 곳이다,

1819년 조선 순조 때 한국배가 폭풍우에 난파되어 이곳 아까사까 앞바다에
표류한 승무원을 구조하여 무사히 귀국시킨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만
든 공원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팔각정의 우호대, 돌풍차, 흔들바위,
한일 우호자료관을 둘러본 것인데, 이중 특히 인상에 남은 것은 배 돛을 형
상화하여 돌기둥에 바람개비 돌 날개가 2톤의 되는 돌풍차가 동력 없이 회
전한다는 것인데, 바람이 없어 잠잠하게 붙어 있던 바람개비가 설마 돌아갈
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것인데, 이곳을 떠나기 전에 실제로 도는 것을 보았
다, 백문이 불여 일견이다. 잠시나마 의심을 했던 것에 미안해졌다. 마찬가
지로 여기 적힌 내용도 실제 발 걸음 해보지 않은 한 실감을 느끼지는 못하
리라.

설악산 흔들바위가 생각나는 듯 총무와 회장등이 흔들어 본다, 호기심은 있는 모양 그냥 두지 않고 흔들어 본다. 쉽게 흔들린다.

4) 과자의 수성 고토부키성

고토부키성은 명산 오오야마(大山, 오오야마, 다이센)를 배경으로 했고, 요나고(米子)성을 본떠 축성한 성이다. 3:30 입구에 들어서니 방문객들이 대나무통으로 흘러내리는 생수를 마시려고 줄을 서 있었다. 목도 마르던 차에 국자에 가득 받아 물을 마셔본다. 과자를 테마로 한 여기는 일본 화과자와 양과자의 시식은 물론 제조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매장에는 방문객들이 갖가지 명품 과자와 떡을 부담 없이 시식할 수 있도록 판매원들이 도와 주고 있었다. 대형 마트의 시식코너에서 맛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거짓말 보태어 한 두바퀴 돌면서 염치없이 주워먹으면 충분한 요기가 될 듯하였다. 몇 분이 선물용으로 명품 과자나 떡을 구입하는 것이 보였다. 아니겠지만 여기 방문객만을 상대로 해서는 수지가 맞지는 아니할 수도 있겠다. 선전용이라면 모르되, 그러나 알지 못할 일이다.

5) 하나카이로(花回 廊)를 둘러보다.

이는 다이센산 기슭에 세워진 총 50ha(15만평)의 일본 최대의 flower park, 일년 내내 계절에 상관없이 꽃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꽃의 언덕, 안개정원, 유럽정원, 플라워돔 등 14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다들 입장하자 마자, 최인호 동기, 신사도를 발휘하여 네 부인을 꽃 열차에 태우고 한 바퀴 둘러보러 따로 떠났고, 우리는 중앙으로 접근하며 발길 닿는 대로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기억에 남는 것은 중앙에 세워진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원형 돔에서는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을 떠올리게 하는 남국 식물 야자수와 화려한 꽃을 보았고, 돔을 중심으로 나와있는 4개의 방사형 길이 각각 온실로 연결되어 있다. 빙 둘러보는 도중에 갖은 종류의 백합이 보였고, 소년시절 산에서 많이 보아 친숙한 주황색의 참 나리가 반가웠고, 빨간 꽃 세르비아가 가득한 정원은 유럽정원이었던가, 어릴 때 꿀 따먹던 기억이 새로웠다. 외롭게 선 키 큰 삼나무가 있고 또 그 옆에 저 멀리 삿갓모양의 다이센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기에 얼른 뛰어가 같이 선다.

동기들과 걷는 걸음은 푸근하다. 가면서 식물의 이름을 하나씩 얻어 걸린다면 행운이다. 지붕 달린 전망 복도를 지나면서, 계곡길이 내려다 보이는 다리를 지나치며, 저기 아래 하얗게 핀 꽃은 산딸나무이며, 좌측에 보이는 나무는 산목련이라고 박달수 동기가 말한다. 장미정원이었을까, 찔레꽃을 닮은 곳에서 장미다. 해당화다 라는 얘기가 나왔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몰라도 결국 해당화도 장미과에 속하는 것이네.

하얀 서양란 꽃으로 단장한 곳이 있다. 뒤에 서면 마치 웨딩 드레서를 입고 서있는 듯하다. 좌우로 한 쌍이다. 두 사람씩 올라서 사진을 찍는다. 신랑 신부가 식장에 서 있는 듯하다. 몇몇 동기가 이러한 곳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는데, 형광등인 듯 나는 보기만하고 같이 즐기지 못한다. 뭐야 너는?

6) 만화거리, 일명 요괴도로 방문

사카이 미나토(境港)항에서 5분거리에 미즈키시게루로드(水木しげるロード)를 5:30 방문하였다. 일본의 유명만화가 돗토리현 출신 유명만화가 미즈키시게루(水木しげる)의 대표작 게게게의 기타로(ゲゲゲの鬼太郎)에 등장하는 요괴들의 브론즈 상(동상) 120여개가 사카이미나토 역에서 혼마치로 이어지는 기념품 상점이 약 800m의 길에 일면 귀엽고 일면 익살스러운 캐릭터를 동상으로 장식했는데, 이 거리를 관광명소로 만들었는가 보다. 한 쪽 눈이 눈팅이 밤팅이 되어있고, 혀가 빠진 듯 길게 늘어져 있던 청동상이 기억에 남아 있다.

7) 면세점 들러서

가이드는 버스로 꽃 공원에서 이쪽으로 오는 도중 일본에서 살만 한 것을 짜증날 정도로 주절대면서 한참 약을 많이 팔았다. 건강식품과 바이오 팔찌 등 경험해보니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무엇이든 과하여 좋을 것 없다. 면세점에 연결고리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쓸데없이 의심하여 죄를 짓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6:10 이곳은 두 번째 걸음이다. 먼저 왔을 때는 삼성생명 직원 등 다른 일행이 꽉 차있어 들어가지도 못한 채 다시 오기로 미루었던 것이다. 조그만 면세점이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바로 나왔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여 필요한 만큼 구입했을지도 모른다. 6시가 넘었다. 한국으로 타고 갈 사카이미나토항 국제여객터미날로 이동한다. 전체 일행 중에서 우리가 꼴찌다.

8) 승선, 식사와 술, 노래로 마지막 밤을 배위에서

6;30 면세점을 가장 늦게 들러다 보니 출국 수속 내지 승선도 늦어 졌고, 선상 저녁 식사도 자연 순연이다. 갈 때도 올 때와 같이 방을 배정받았다.

꼴지 승선, 꼴지로 8시 넘어 식사를 마쳤다. 9시 넘어서 2층 나이트클럽 앞의 선상 갑판 위에서 모일 것을 지시 받다. 이번 여행의 뒤풀이 술 한잔 이랄까, 이곳에는 바다와 터져 있는 공간이라 세게 부는 찬바람에 몸이 떨린다, 처음 앉았던 후미 왼쪽에서 각자 의자를 들고 좌하단에서 우상단으로 이동이다. 일부 바람이 차단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추웠다는 기억과 바로 옆 사람의 노래도 선명히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배의 소음이 심했다는 기억뿐이다. 회장은 이번 여행 무사히 잘 마치고 귀국 길에 오른 것에 감사하고, 계속하여 한뫼회를 발전을 축원하는 멋진 건배사를 제의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배에서 주문한 맥주와 전희식 동기가 구입한 양주로 간을 맞추며, 서로 잔을 부딪치며 여담을 즐기고, 끝에는 각자의 애창곡을 부르기로 하고, 돌아가며 한 곡조 뽑는 노래 한바탕이 벌어진 것이었다. 노래방 시설 없이도 노래 가사는 걱정이 없다. 애창회 동기 회원이 가져온 발췌된 가사 복사본과 윤남숙 여사가 가져온 명곡 가요 책이 그곳에서 긴요하게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18번 최희준의 노래‘하숙생’을 뜻밖에도 김종곤 동기회 회장이 하숙생’1절을 부르자 나도 책을 보고 2절을 불러 겨우 위기를 모면한 기억이 난다. ‘노란사쓰입은 사나이’ “그때 그 사람’, “만약에”등의 노래가 부인들이 열창 했었다. 윤병주 동기가 올린 사진 방에는 그 때 그 분위기를 능히 짐작할 수 있고, 서대교 동기가 순발력을 보이며 멋지게 뜻풀이한 내용은 한뫼회 게시판에서 보았다.

노래가 끝나고 선실 1103호로 왔다. 4인 1실인 김문곤, 구자호, 전희식, 김영환이 한방 룸메이트다. 두 동기는 그림 공부하러 갔는지 모르겠다. 전희식 동기와 둘이서 TV를 보며, 이상태, 이홍욱 동기와 경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경대 의대 후배들과 어울렸던 옛날 얘기를 하고 있었다. 10:50 김용휴 총무가 이층 술 집 Zest으로 가잔다. 한잔 더 하자며, 이진권 동기와 임병호 동기가 술 한잔을 하고 있다. 학창시절, 대학시절 얘기, 잘나가던 시절, 집안이 어려웠던 시절의 애기도 서로 들추어 낸다. 12:20 영업이 끝나서야 일어섰다. 1시가 되어서야 취침을 했을 것이다.

IV. 구경 잘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산행지 다이센과 돗토리 나들이 장소는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말을 남깁니다. 박달수 동기가 추천했다는 다이센산은 동기에 따라서는 우리 나이에 약간 과하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이 정도는 좋다는 의견입니다, 더구나 중도에서 하산할 수 있는 길이 분기점이 있었기에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분에게도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일본은 지난해 3.11 후쿠시마(福島) 쓰나미 원전 방사선 누출사고가 있었던 곳이라, 회장단은 처음부터 회원의 안전에 혹시나 문제가 있을까를 고심했고, 추후 제기된 동일한 의문에 대하여 일본의 동해안 후쿠시마와 서해안 돗토리는 거리상 위치상 방사성 문제는 걱정할 것이 못 된다고 다시 확인을 거치면서 의견을 다시 모우면서 수고를 하였고, 또 이렇게 이번 여행을 다들 즐겁게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이원근회장, 김용휴총무, 김진희 산행대장, 다들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같이 걸음 했던 아래 동기들 모두 고맙습니다.

박달수 동기, 좋은 트레킹 장소를 추천하고, 오고 가는 버스안에서 열심히 우스개 소개에 열중하여 보기 좋았습니다. 압권은 “아버지, 아까 이웃집 아저씨가 와서 기름 만땅 채웠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

김종곤 동기, 재경 동기회 회장이면서 그간 부부같이 한뫼회에 열심히 참석하며 한뫼회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신경철 동기, 이진권 동기, 두 분은 매번 해외 여행 때 양주를 기부하시는것 같군요. 이진권 동기는 산행 다음날 버스 안에서 돌리는 것 한 두잔 먹은 것 같은데,

김종곤 동기도 양주를 냈다면서요. 모두 술을 기부한 분들은 많은 것 같은데, 어찌 다이센 정상에서는 한 방울도 구경을 못했는지 의문이 드네요. 만일의 사고 방지를 위해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게 회장단의 엄명이 있었던가요.

전희식 동기도 대구서 멀리서와 한데 어울려 주어서 많이 고맙고, 양주 잘 먹었소.

임병호 동기 정상에서 그 귀한 청포도를 맛보게 해주어 고마웠소.

구자호 동기와 윤영순 여사 부부, 멀리 대구에서 온 김문곤 동기와 이국향여사 부부 고맙소. 그리하여 집사람과 동행해주어 고맙소.

최인호 동기,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카이로에서 부인들을 꼬마기차 태워주고,
서울 오는 날 점심을 정일품 “이천 쌀 밥집”에서 멋지게 쏜 것 아주 맛있게 잘 먹었소. 두고두고 기억하겠소.

윤병주 동기, 우리들 산행의 모습을 담느라고 무척 애를 쓰셨다오. 잘 보고 있소이다. 하나 하나를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네요.

동기들 모두들 건강하세요.

오늘은 북한산 6월의 북한산 산행이 있는 날이군요.
산에서 또 봅시다.

너무 길게 써서 나도 짜증나는 군요.
요약이 필요한데, 시간이 없네,
지금 자야 하니, 미안하오.
영양가 없이 길게만 나열했어.
우리들 한 때의 추억이려니 하고 양해 바라오.

2012. 6. 10.
동기 김영환

20102, 5, 17-20 돗토리 다이센 산행 참석자 (18명)

구자호/윤영순,김영환/송희숙, 김용휴, 김종곤/윤남숙, 김진희, 박달수,
신경철, 윤병주, 이원근, 이진권, 임병호, 최인호, 김문곤/이국향,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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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센 트레킹 2012-06-11 김영환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