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묵은 4성급 라마다 호텔 711호실, 늦게 들어가고 일찍 일어나니 TV도 한번 켜지 못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이곳을 떠나 출국 항인 석도진이 있는 적산으로 이동 예정, 산이 붉어 적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적산을 트레킹하고, 그 기슭에 위치한 장보고가 세웠다는 적산법화원을 둘러보면 이번 행사의 일정은 끝난다.
6시 40분 아침 뷔폐 식당을 찾기 전, 바깥 바람도 쏘이고 조금 산책이나 할까 하고 호텔 문을 나서 본다. 바람이 세고 기온이 차다. 호텔 입구 앞 대로의 인도로 나서니 1.5m는 됨직한 하트 모양 무늬로 작은 밤톨 만한 원추 모양의 무엇이 길바닥에 가지런히 깔려 놓여 있다. 그냥 무심코 인도를 걷고 있는데 폭죽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 요란하다. 놀라 돌아보니 뒤이어 신혼부부를 태운 듯한 자가용이 여러 대 호텔로 들어서고, 말끔한 부부가 호텔로비에 나타났다. 탈렌트일 수도 있겠다고 그 광경을 목도한 동기가 말한다. 엉뚱하다고 생각되는 호텔 앞에서의 폭죽행사가 이 곳에서는 평범한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엉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에 기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것이 연태 라마다 호텔을 생각하면 떠오를 나만의 기억거리의 하나다.
2. 2시간 거리를 “많이 걸리는 거리”가 아니라 “조금 걸리는 거리”라 한다고.
뷔폐 식사후 체크아웃을 하고 나면 우리는 버스로 2시간 거리 석도 적산으로 이동한다. 석도까지는 2시간 거리인데 가이드는 중국에서 2시간은 조금 걸린다고 말한다나, 땅이 넓어 그런가, 산동성만 해도 그 면적이 남한의 1.6배이고, 중국 전체는 남한의 99배라고 하니, 면적으로 치면 우리의 면적은 비교가 안 된다. 그래서 600만명인구 연태도 소도시라고 가이드가 말했나. 부산보다도 크고, 우리보다 면적이 17배나 큰 리비아도 인구가 600여만명 정도 같은데.
적산으로 이동하는 2시간, 중국인에게 조금인 시간이라도 우리에게는 긴 시간이다. 그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김용휴 동기가 온돈 주고도 “무릎불쇼”를 못 받은 것에 속에 천불이 난다 하며 웃기고, 이에 질세라 오중관 동기가 그 바톤을 이어 받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긍정적이고 덕담 잘하는 밝은 오중관 동기, 앞으로 가서 마이크를 잡더니, 한시를 읊겠다고 운을 뗀다, 모두들 기대에 차, 이태백의 시라도 나올까 뭘까 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 터에, 느닷없이
“아아아, 잘 있거라, 부산 항구야, 미스 김도 잘 있어요,….. 아아아 또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라는 “잘 있거라 부산항” 한 곡조를 뽑는다, “잘 있거라 연태항구야”로 가사를 변경해 불러 이번 나들이 산동성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선언하며 우리를 느닷없이 웃겼던 것이다.
또 이왕 웃긴 김에 한번 잡으면 3곡은 뽑아야 한다고 하며 한 곡조 더 부른다. 잔뜩 기대했던 기대가 깨어져 버리자 동기들 그만 불러라 고 만류하자, 동기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다 같이 웃자고 하는 말일 뿐이다.
한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배워 들은 것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심조불산 호보연자 수군인용”의 말뜻을 아시는지, 아니면 “대월동화목화이수"라 이 말뜻을 아시는지?
전자를 모르겠으면 김문곤 동기에 물어보고,, 후자를 알고 싶으면 김용휴 동기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 줄 것이다.
힌트를 조금 주면 전자는 곤유산 산행을 하면서 유머 사자성어 ‘자연보호’ 이야기 중에 연상되어 나온 문제의 하나이고, 후자의 월은 월요일을, 화는 화요일을, 수는 수요일을 나타낸다. 잘 머리를 굴러보시라. 이것도 다같이 웃자고 하는 것이다.
3. 적산(372m) 트레킹
2시간 달려 10시경에 적산법화원에 도착했다, 이는 적산 트레킹 진입을 위해 법화원 안으로 들어온 것이고, 적산법화원 구경은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차분히 둘러볼 시간을 가질 모양이었다, 여기서 적산은 372m의 낮은 산으로 그 돌 색갈이 붉다고 적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산에 적산법화원이 있기에 더 유명해진 것이다, 정상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데는 2시간 걸음이면 충분하였다, 몇 분만 제외하고 다들 올라간다. 바위 계단 길에 약간 경사가 있었던 곳도 있지만 곤유산 산행과는 달리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르고 내려왔다. 적산의 정상을 밟고 내려와 법화원의 거리를 걷는 중에 만수석(萬壽石)을 만져보라고 권하길래 장난 삼아 만져본 것이라든지 장수문, 행복문, 부귀문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행복 없는 부귀나 행복 없는 장수가 무슨 의미기 있겠나 싶어 중간 문이고 제일 큰 문이었던 행복문으로 지나왔던 기억이 난다,
4. 적산 법화원 관음상 분수 쇼 한마당
4월 10일 2시 30분 정각, 적산 법화원 관음전 앞 높이 25m 관음상을 둘러싼 분수대 광장, 그 제각기 분수 시설의 작동이 시작되면 크고 작은 물보라가 낮아졌다 높아졌다 춤을 추며 파노라마를 일으키며 이동하며 생기고 사라지고, 살랑이는 봄바람 같다가, 휘몰아치는 여름 폭풍 같은 물줄기도 뿜어대고, 신비한 물안개 피웠다가 금세 없어진다.
분수 쇼가 열기를 더해가면 관음불상도 360도 서서히 회전하고, 대좌(臺座) 상단에서 문이 열리며 4명의 동자가 천천히 걸어 나와다가 멈추어서고, 대좌(臺座) 하단인 기단에 새겨진 사천왕상의 입에서 유황불이 뿜어져 나온다, 물과 불의 대비, 대좌 위에 좌정한 인자한 관음상과 대좌 하단부인 기단에 세겨진 험악한 표정의 사천왕의 대비, 눈에 보이는 광경과 귀에 들리는 불교 음악과 “옴마니 반메 훔”의 진언이 울려 퍼지면 순간 엄숙함에 숨죽인다.
특히 사방의 용의 입과 다른 분수대로부터 굵은 물줄기를 25m 높이의 관음상과 그 광배위로 쏘아 올리고 그 물줄기가 관음상을 뒤덮으며, 폭포수처럼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시원하고 웅장하다. 쇼 연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적어도 한번은 볼만한 광경이었다.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은 산동성 영성(榮成) 석도진(石島鎭) 적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823년에 신라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에 머물던 시절에 거액을 들여 세운 불교사찰로, 이는 당시 적산 인근에 위치한 신라방, 신라촌에 살던 동포들의 단합을 도모하고, 이국땅에서 신앙의 힘으로 의지력을 북돋우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 법화원은 그 창립 초기에 천태종의 소의경전인 법화경을 읽었다 하여 명칭이 유래되었다 한다.
1988년 중국정부는 한중 양국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적산법화원의 복원공사를 하여 1990. 5월에 개관했다고 한다, 법화원에는 장보고 기념관, 8m 높이의 장보고 동상과 생애를 알 수 있는 전시실이 있었다, 바삐 지나가는 통에 설명이 바로 안 들어 온다. 주요 건물로는 석가모니 상이 있는 대웅보전, 관음전 및 삼불전이 있는데, 우리 일행이 시간을 기다려 구경했던 분수쇼는 관음전 앞의 관음상에 관련된 것이다. 적산트레킹을 마친 후, 중식을 해물 샤브샤브 뷔페를 즐긴 후 오후 법화원에서 제일 먼저 본 것이 그것이다,
5, 계획 일정을 다 소화하고 같은 배를 타고 다시 인천으로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되돌아가는 길도 왔던 길의 역순이고, 되돌아 가는 배도 타고 왔던 바로 그 배였다, 배정된 방도 올 때의 그 방으로 정해졌다. 301호의 욕실의 화장지 두루말이는 1/3만 남은 채 그대로였다.
4인실 301호는 구/신/유/김 4인의 동기에게 배정되었고, 그 4인 동기의 부인들은 302호실로 윤/최/김/송 네 부인에게 배정되었다. 대구서 온 김문곤 부부는 301호의 옆방 특별히 2인실이다, 나머지는 동기도 각 4인실에 배정받았다. 계단 입구의 309호실은 6인실이나 코디네이터 배승호 동기에게 배정된 독방이었으나 동기들이 와서 놀 수 있는 열린 동네 방이다. 고스톱 한판도 여기서 벌어진다, 중국갈 때는 이대용 동기가 승자였고, 잠덜자며 딴 돈으로 인천으로 돌아오는 이날 저녁 배위 카피 숍에서 동기들에게 커피 한잔씩 쏘았다.
배승호 동기가 술 한턱 내었다. 연태 고량주와 청도 캔맥주를 박스로 샀는지 술이 넉넉하였다, 이제 동기들은 첫날밤 폭탄주와 다음날 호텔에서 밤늦게까지 한담하며 술을 들었으니 시들해질 만도 한데, 그래도 술은 이어지고, 식당에서 노래방 기기 작동시도불구 끝내 실패, 식당에서의 술 파티는 10시를 끝으로 309호실로 장소 이동, 화투 판과 술판으로 나누어 지고, 한쪽은 화투삼매경에 빠지고. 다른 한쪽은 연태 고량주를 마시면서 어제 밤의 우리들의 이야기 연장선이었다.
밤12시 경에도 콘테이너 싣는 소리가 난다, 출항을 할 시간이 3시간이나 지났으나 배는 아직 부두 에 있다, 늦게 출발해도 속력을 내어 달리면 도착 시간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아니었다. 인천 도착은 9시30분보다 2시간이나 늦은 11시 30분에 입국 수속이다. 집사람이 바나나 두개가 검역에 걸려 조금 늦게 나오니 갈길 늦어 바쁜 동기들, 이미 가고 없고, 회장과 몇 분만 남아 있어 회장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여객 터미날을 빠져 나오며, 이번 나들이는 막을 내렸다. 이번 나들이는 또 하나의 충전이 될 것이다. 감사한다. 감사한다.
6. 이원근 교수 구하기 수송작전
이원근 총무는 오후 수업이 있는데, 그 수업시간에 제 시간에 못 가면 무단 휴강이 되어 낭패를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김용휴 동기가 운전하며 시간 맞추기에 신경을 썼나 보다.
들리는 말로는 분당 지역 모임 회원수가 많이 늘었다는데 김용휴 동기의 봉사정신이 흡인력을 발휘한 것인가. 앞으로 기대가 크다.
7. 후기를 마치며
한마디 배운 것 써먹어 보려고요. 구회장님을 구형, 이총무님를 이형으로 한번 불러봅니다.
구형 수고했소, “구따아거 쉰쿠울러” 이형 수고했소 “이따아거 쉰쿠울러”
곤유산 나들이를 기획하고 집행한 구자호 회장과 이원근 총무에게 감사하단 말 올립니다.
그리고 코디네이터로 수고한 배승호 동기도.
그리고 연태의 박재찬 동기도 고맙고요.
같이 동행한 동기들도 모두 다 고맙네요. , 건강하게 삽시다. 같이 놀 친구가 필요하겠지요, 나에겐 네가, 너에겐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