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아무개(40)씨는 출근을 하면 사무실에 아로마향부터 피운다. 긴장감을 풀어주면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선 숯과 황토를 이용해서 직접 만든 지장수를 마신다. 황토는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서 유해물질을 배출시키기 때문에 그가 애용하는 재료다. 식사는 유기농 야채를 위주로 하며, 옷은 콩을 소재로 해서 만든 것들로 골라 입는다. 명상음악을 구입해 쉬는 시간마다 틀어놓거나, 일주일에 2번 정도는 스파나 반신욕을 즐기는 것도 웰빙(well-being)을 추구하는 그만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김씨와 같은 사람들을 흔히 웰빙족이라고 부른다. 일명 웰빙 바람이 급속하게 번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웰빙이란 본래 행복, 복리 등의 사전적 의미를 지녔지만, 한국에서 웰빙은 육체와 정신이 건강한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하는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웰빙 비즈니스>의 저자인 심형석 플러스클리닉 사장은 “고령화 사회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비만이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다가온 것이 주요한 배경”이라고 말한다.
정작 웰빙 트렌드의 확산을 주도한 건 기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혜경 올가홀푸드 사장은 “이전에는 유기농 제품이 웰빙의 대표 상품이었지만, 지금은 웰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웰빙 식품, 웰빙 가전, 웰빙 의류, 웰빙 아파트에 웰빙 교회까지 그야말로 웰빙 천국이 돼버린 것이다.
관련 산업의 성장세도 도드라진다. 예컨대 현대백화점은 대표적 웰빙매장으로 꼽고 있는 유기농하우스의 매출추이가 지난해 12월부터 5월 현재까지 매월 15%씩 꾸준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기농산물과 친환경 공산품 등이 고루 갖춰진 유기농하우스의 제품가격은 일반 매장에 비해 크게는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극심한 내수침체에도, 값이 더 비싸지만 몸에 좋은 제품쪽으로 소비자의 구매가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경품도 음이온패드, 반신욕 욕실덮개 등 웰빙 제품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인의 안녕 추구하는 웰빙, ‘일빙’ 초래할 수도
그러나 과연 웰빙이 궁극적으로 건강한 삶을 안겨줄 것이냐에 대해선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웰빙이 개인 및 가족 단위의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굳어지면서, 보다 지속가능한 소비 문화가 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다음까페에서 웰빙족들에 대한 자문을 맡고 있는 안승연 고려정형외과 원장은 “웰빙은 자칫 잘못하면 ‘일빙’(ill-being, 나쁜 상태 혹은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육체와 정신의 웰빙뿐 아니라 사회적 웰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웰빙 제품으로 꼽히는 공기청정기는 이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기청정기는 유례없는 황사공포 속에 시장에서 인기를 끈 뒤, 지금은 아예 웰빙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기획실장은 “공기청정기가 각종 세균과 먼지를 잡아서 실내를 청결하게 해준다지만, 정작 창문만 열면 도시 전체는 뿌연 대기오염에 휩싸여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는다. 이들은 또한 자가용의 수를 줄이고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건강에 이롭지 않겠냐는 시각을 내보인다.
산을 깎아서 만든 웰빙 아파트나 웰빙 펜션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오는 주장들이다. 아무리 친환경 소재로 주거공간을 짓는다고 한들, 웰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이 파괴된다면 장기적인 생존 기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환경론자들은 유기농산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생산물로만 유기농 제품을 바라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유기농사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8천억원 정도의 규모인데, 업계에선 2010년까지 3~4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수입되는 물량이 점차 늘고 있다는 점이다. 명형남 서울환경연합 벌레먹은사과팀장은 “유기농의 개념은 원래 건강을 추구하는 것뿐 아니라 생태계를 건강하게 살리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말한다. 수입유기농은 이런 연결고리를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기농 제품이 점차 대량화되면서 가공식품 혹은 즉석식품화되는 것도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건강과 편의의 충돌인 셈이다.
이런 인식들은 지구의 환경위기시계가 심각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환경위기시계는 일본의 아사히그라스재단(The Ashahi Glass Foundation)이 지난 1992년부터 전 세계 90여개국의 정부, 지자체, NGO, 학계, 기업 등을 대상으로 매년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