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엔 주장은 많은데 ‘사실적 관계’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고 한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흔히 지식인이라거나 국민을 대변한다고 자타칭 하는 자들이 자기의 의견을 내놓고 다수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사실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시원한 것처럼 말하고 얼핏하면 국민의 뜻이라고 위선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소위 지식인이라 칭하는 천 여명의 선비들이 임금을 들었다 놓았다 하였지만 그것은 자신의 이해 타산에 따라 내세우는 의견일 뿐 국민 전체의 뜻이라고 볼 수 없는 선례가 있음을 학습했음에도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상기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보통 내면의 진실이나 양심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생활이란 여럿이 어울려 상호 작용하는 것입니다. 주관적 양심에 따라 평가하고 평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양심선언, 시국선언 등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주관적 잣대로는 여럿이 공동성을 추구하는 사회전체적인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fact)의 잣대가 중요하지만 그 사실이란 자체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입니다. 광우병의 경우 그것을 고발하고 폐해를 부각한 것은 과학적 사실에 입각된 것입니다. 그러나 1%의 사실을 마치 99%인양 강조하고 과대포장 한다면 그것은 왜곡입니다. 보통 서민은 이성적 판단이난 정보/지식이 부족하다면 그 1% 왜곡을 99%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1%가 사실이라도 사실이라할 수 없지 않습니까.

- 적진에 고립된 병사 600명을 이끄는 지휘관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전원이 몰살당한다. 어떡하든 퇴로를 찾아 후퇴해야 한다. 퇴로 A를 택하면 부하 200명을 살릴 수 있다. 퇴로 B를 택하면 부하 600명 전원을 살릴 수 있는 확률이 3분의 1이지만 아무도 구할 수 없게 될 확률이 3분의 2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이것은 행동경제학자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인간의 선택과 판단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고안한 실험을 약간 변형한 질문이다.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의 72%는 A를 선택했고, 28%가 B를 택했다.

여기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같은 상황에서 퇴로 A를 택하면 부하 400명이 죽는 반면, 퇴로 B를 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분의 1이고 600명이 모두 죽을 확률이 3분의 2다. 이번에는 A를 택한 피실험자가 22%에 불과한 반면 B를 선택한 비율이 78%에 달했다.

논리적으로만 따지면 어느 경우나 A와 B는 결과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질문의 표현 방식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은 결과가 똑같더라도 ‘400명이 죽는’ 것보다 ‘200명을 살리는’ 대안을 일관되게 선호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에서 과학적 합리성과는 상관없이 살리는 쪽을 우선한다는 얘기다. 어떡하든 많은 사람을 살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에선 유능한 사람을 먼저 살려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남는다. 당사자가 선선히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누가 살지를 두고 종업원들 간에 처절한 생존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다 같이 죽자’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 중앙일보 김종수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