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벽의 풋풋한 공기— 난 어릴 때부터 이 새벽을 유달리 좋아했지…….그리고 만물이 부산을 떨기 이전의 고요를 즐기고, 신선한 공기를 폐부에 들이켰지…. 어려서 신문배달을 나갈 때도….도서관에 나갈 때도… 고시공부를 할 때도… 군에서 불침번을 설 때도……. 그러나 오늘 새벽이 마지막….내일이면 황천에서 다른 공기를 쐬겠지. 거기서는 누굴 먼저 만나게 될까? 죽으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던 인물—역수(易水) 강가에서 ‘장사, 한번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시를 남기고 한 자루의 비수를 품은 채 폭군 진시황을 죽이려 떠난 형가! 그가 저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늘 궁금했지. 내일이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처럼, 나도 미완성의 인생으로 이제 떠난다. 돌이켜보면 친구들이 말했듯 나는 늘 바람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였다. 노동투쟁의 현장에서….물고 물리는 얼룩진 정치판에서….. 한 때는 천하를 주름잡겠다는 꿈을 가졌고, 또 천하를 한 손에 쥐어도 봤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소신에 충실했던 것, 그것으로는 형가에 못 미쳤고 꿈은 컸어도 결과가 미미한 것은 내가 늘 우습게 봤던 박정희의 반에도 못 미쳤고…. 또 막판에 이런 오물을 쓰다니…. 아! 박 연차! 그 자는 왜 돈을 낙엽처럼 뿌렸을까? 난 그저 순진하게, 불쌍한 정치인에게 인심이 후한 자선가로만 여겼지….. 아내, 내 아들, 딸,그들은 왜 또 돈을 받았을까? 푸른 집에 오기 전, 늘 돈에 쪼달리던 가장 때문에 돈에 한이 맺힌 탓일까? 그렇더라도… 아니야, 아니, 다 내 탓이야. ‘하늘이시여,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 소이다!’
갑자기 왜 햄리트의 독백 구절이 생각나는 걸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장한 것이냐? 아니면 노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끝장내는 게 장한 것이냐? 어느 쪽이 고귀하냐? 남는 게 잠자는 일 뿐이라면 죽는 것은 잠드는 일. 잠들면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극치리라…………………………………………………………………………. ……………. 이 세상의 채찍과 조롱을, 무도한 절대 권력자의 거동을, 우쭐대는 꼴불견의 치욕을, 질질끄는 재판을, 관리들의 불손을, 선량한 인간들이 불한당들로부터 받고 견디는 많은 수모를, 어찌 참아나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뒷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난 언제나 이 대목까지 밖에 외울 수 없었지. 그게 나의 한계, 아니면 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MB, 나는 당신의 그 찢어진 눈을 처음 볼 때부터 맘에 들지 않았어. 근데 취임식 때 나와 악수할 때만은 무척이나 겸손해 보이더군. 당신은 당선 전에 ‘노무현이가 잘못 박은 대못은 다 도로 뽑겠다’ 했었지. 이보게 MB! 대통령이란 자리는 생각처럼 그렇게 힘있는 자리가 아니라네. 처음 몇달은 기분 좋지. 맞아, 기분 좋아.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으니까…. 그런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생애에서 제일 행복했던건 사법시험 합격 통지를 받을 때였어. 대통령 당선도 그 보단 덜 기쁘더만…. 어쨌든 MB, 난 당신도 용서한다. 나는 가는 마당이니까….. 그리고 가진 자들! 당신들도 용서하지. 가지지 않은 사람 중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많지. 그런데 가진자들은 단 1 %도 나눠 안 주려고 거품을 물고 덤비지. 그래도 난 용서하겠어. 돈도 권력도 결국 순간일 뿐이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땀흘려 벌었다지만 그건 다 하늘이 주신 거야. 하늘이 마음을 바꾸면 해가 문풍지를 지나는 사이에 몽땅 사그러지지. 그걸 내가 인위적으로 어떻게 공평하게 나눠 보려 했지만 안 되더군. 이젠 하늘에 맡겨야지. 이제 심부름 보낸 경호원이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가네. 그 전에 이곳에서 뛰어내려야지. 이 부엉이 바위에서…… 하필 왜 부엉이 바위라 했을까? 하긴 어릴 적 이곳에서 밤에 부엉이 소리를 들은 적이 자주 있었어. 그땐 배가 고파 이 부근에서 저 소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낸 뒤에 자주 잇빨로 파란 속껍질을 훑어 먹었어. 진달래 꽃잎을 따서 우적우적 씹기도 하고…. 배고팠지만 그 때가 그리워. 그때가 어제 같은데….. 저 밑에 사람들이 지나가는군. 난 퇴임 뒤에 저 사람들 처럼 평화롭게 들판을 걷고 밭에서 김 매고, 논두렁에 콩도 심고 살려했는데 내겐 그 마저 허용이 안 되는군….. 뛰어 내리자. 아,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망서려지는 이 마음은 또 무언가….. 렛 잇 비, 렛 잇 비…… 노래말처럼 그냥 돌아가 운명에 맡겨버릴까? 감방 안이 되었든 세상이 나를 밟든 그냥 흘러가는대로 운명에 나를 맡겨버리면 어떨까? 그러나 밀려드는 그 수모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유언은 이미 써 놓고 왔다. 아무도 원망말고, 슬퍼하지도 말라고…. 죽은 뒤 작은 비석 하나만 세우라고… 아니 차라리 비석 대신 작은 구들돌 하나만 놔두라 할걸…. 그리고 하나 추가할 걸 그랬어. 장례식 때는 미사대신 “마이 웨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다네 나는 모든 길을 걸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나의길을 걸었다는거야. 후회? 있긴 했지만 다시보니 별로 얘기할 것도 없군.나는 해야만 했던 일을 한 거고 그 끝을 보았지. 나는 정해진 길을 가기도 했고 샛길로 빠지기도 했지. 보다 중요한 건 나의 길을 걸었다는 거야. ……………… 내가 한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면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었다 말할 수 있을런지. ‘아니, 아니야. 아니지, 나의 길을 간 것이야. 사람이 무엇으로 살고 가져가야할 게 무얼까? 자신의 뜻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지. 비굴한 사람들의 말이 아니고 참된 느낌을 말하는 거야. …………………………………
아, 저기 경호원이 와서 두리번 거리는 군. 이젠 갈 길을 가야겠어. 미안하이, 경호원 친구! 나 때문에 죄없는 그대가 약간의 고통을 겪겠군. 미안하오. 남상국 사장! 내가 «大宇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라고 말한건…. 당신처럼 일류학교, 잘나가는 조직에서 일취월장하는 사람들 틈에 짓눌려 나는 너무나 왕따를 당했고, 그 설움,컴플렉스가 작용하여 그만 경솔히 그 말이 나온건데 그 일로 당신이 투신자살할 줄이야….. 당신의 자존심을 크게 건들였을 것이오. 하기야 나도 지금 자존심에 상처받아 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려 하오. 우리 곧 만날테니 날 용서해 주시오. 날 밀어주었던 노사모 회원들이여! 용서하게. 지친나는 삶이 짓누르는 무게를 못 이겨, 이만 가네! 아디오스!
[나도 한마디]
노타이
내가 이 글을 몇차례 읽을 때마다 지욱이는 글을 아주 잘 쓴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썩히기에는 넘 아깝고, 앞으로 전문적인 글쓰는 직업을 택해봄이 어떨까 싶으이.., 자랑스럽고 훌륭한 동기들.., 그대들이 있어 행복하다네. 모두 건강하세나 !! 남정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