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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울다 가세요 |
| 이름 |
박문송 |
등록일 |
2007-09-02 오전 9:28:00 |
| e-m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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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기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다.
제왕과 재벌도 예외가 아니며 백성과 백수와 거지도 별반 다름이 없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신나게 웃고 떠들고 춤을 춘다거나 노래를 불러도
좋거니와 슬프고 괴로울 때는 그저 목놓아 실컷 울어보거나 아니면
조용히 혼자서 마음을 달래며 소주잔을 기울여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가끔 누가 그 반대의 행동을 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거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응이라고 아무도 그것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은 어찌보면 쉼없이 흘러가는 강물의 표리(表裏)와도 같으며
바람이 불어 출렁이며 반짝이는 물결은 기쁨과도 같고 강바닥에 깊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는 물결은 슬픔과도 같다.
둘은 항상 한 곳에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 순환하며 혼연일체를
이루어 도도한 강 줄기가 되어 흘러가다가 마침내 종착지 바다에 이른다.
그래서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의 감정의 극(極)과 극(極)은 서로
통(通)하는 것이며 피차 서로 상극(相克)이 아니고 상생(相生)인 것 같다.
사람은 필시 기뻐서도 웃지만 슬퍼서도 웃으며 마찬가지로 슬플 때도
울지만 기쁠 때도 운다. 특히 한국의 사업가나 쥐꼬리만한 월급쟁이들의
기막힌 애환을 잠시라도 한번 들여다 보면서 그들과 작은 공감(共感)
이라도 나누어 본다면 지금보다는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한국과도 같은 척박한 풍토에서 천신만고 끝에 사업을 반석 위에 올려
놓았거나 코피 터지는 승진에 성공하여 겨우 로그아웃 신세를 면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대부분 아무 생각도 회한도 없이 그냥 기쁘다고 웃을
것인가? 아니면 이런저런 그야말로 눈물겨웠던 사연이 자꾸 떠오르고
안타깝게 탈락한 동료가 안스러워 오히려 서럽게 울지는 않을 것인가?
또한 반대로 그렇게도 심혈을 쏟고 각고의 노력을 다 기울였건만 자기
사업이 허무하게도 끝내 좌초되었거나 회사에서 결국 밀려나고 말았다면
그들이 과연 슬프다고 울 것인가? 아니면 하도 기가 막혀 웃을 것인가?
만약 마냥 퍼져서 울기만 한다면 그런 사람의 정신력으로는 아마도 사흘도 못 넘기고 그냥 자살로 마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오전 병원에서 내 귀여운 외손녀 궁궁이가 한달여 심한 고열과
기침을 동반한 기관지염과 폐렴증세로 어린 것이 난생 처음으로 힘겨운
병고(病苦)란 걸 겪었다가 이제는 말끔히 완치되었다는 의사의 최종진단
결과를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집 사람이 펑펑 눈물을 흘리자 나도 덩달아
따라서 울고야 말았다. 다들 개선장군처럼 신이나서 집에 돌아와서도
너무도 기분이 좋았던 나머지 불가불 가족파티를 열게 되었는데 처남
가족도 부르고 몇몇 친근하게 지내는 이웃사촌들도 초빙하여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잠시 대구의 부지런한 도명 샘이 보내준 야생 궁궁이꽃 사진을 손님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려고 컴퓨터를 작동했다가 내친김에 경고홈피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거기서 아이고! 또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으니...대구의 박태동이가 그저께 지병으로 별세를 했다니...
이거 원 진짜 별세해야 할 늙은 골통들이 아직도 보란듯이 화려한 한복을
두르고 목에 힘주며 건재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우리 동기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며 노상 힘주어 말하던 젊디 젊은 우리 친구
태동이가 때아닌 별세라니...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하여 이런 경우에 식구들과 손님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내 얼굴에 기쁨과 슬픔이 뒤죽박죽이 된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던지 집사람이 걱정스런 얼굴로 다가와 "무얼 잘 못 드셨수?" 그러길래 여하튼 나 땜에 모쪼록 즐거운 파티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싶어 일단 태동이 생각은 잠시 접고 우선 파티 호스트로서 이왕 시작한 역활은 충실하게 이행하기로 하였다. 그래봤자 그냥 아주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상까지 팍팍 써가며 가끔은 멋적게 웃기도 하였지만 시종 침울하게 한숨을 푹푹 쉬고 하였으니..
아마도 다들 속으로 내가 심술맞게 돼게 무게를 잡는다고 했을 것 같다.
손님들이 다 가고 나서 혼자 다시 컴퓨터를 열어 작년 연말에 강경호가
내게 보내준 편지를 찾아보니 그때 태동이가 대장암에 걸려 수술까지
했으나 이미 암이 간에도 전이가 되어 간은 손도 못대고 그냥 덮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고 태동이의 병세가 의외로 심각하여 다들 걱정들 많이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 나는 이 편지를 분명히 읽어보기는 하였지만
워낙 타고난 건강체질에다 평소 씩씩하고 밝은 성격으로 하루도 운동을
안 하면 좀이 쑤셔 못 견딘다는 태동이가 금새 툭툭 털고 일어날 줄로만
알았지 달리 어떤 상상도 하지 못 했는데...지금 우리 나이에 이런저런
병마로 고초를 겪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어도 현대의학의 발달로
다들 별 희한한 수술까지 다 해가며 잘들 병을 고치드만 우째 태동이는
그 많은 돈은 다 어찌하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는단 말인가?
대구 동산병원의 내과의사들 수술 실력들이 영 젬병들 아이가?
우리 동기들의 자랑스러운 조원현 원장 샘은 어데 놀러가고 없었나?
태동이가 이렇게 허무하게 갈 줄 알았으면 강경호 편지 받고 그때 전화라도 한통 했던가 편지라도 한장 보냈어야 했는데...
참으로 후회가 된다. 내가 대구에 있었을 때 언제라도 전화하면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와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자기 차로 오만군데 다 태워주며 우리 동기의 끈끈한 정과 돈독한 우정을 학실히 보여주었던
착하고 친절하고 아름다웠던 친구 태동이...우리 50회 동기회장을
유일하게 세번이나 역임할 정도로 동기회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헌신적으로 열심히 뛰어다녔고 2003년 24대 회장 때는 경맥제 주관
기수의 기수로서 역대 어느 회장보다 더 많은 훌륭한 업적을 남겼던 고인(故人) 박태동을 우리 동기들은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태동아~잘 가거레이~. 친구 박태동의 명복을 빌며..
과테말라에서
박문송 謹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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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등록일자 |
등록자 |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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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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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2 |
박문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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