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 오월이여~ 지난 오월은 이래저래 아쉽기도 하고 어쩐지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들었다. 초장부터 예감이 좋질 않았으니...막판에 교통사고까지 당하여 내 차가 대파되는 불상사까지 발생하였다. 산지 2년밖에 안된 내 차 문짝에 끼어 내가 함께 찌그러질 뻔했으나 다행히 약간 머리만 띵하고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왔을 뿐 다른 큰 부상은 없었다. 보험회사 직원들이 출동하여 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으나 그렇게 한가한 처지가 못 된다고 사양하고 차나 신속히 잘 고쳐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린이날...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천진난만한 눈동자 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짠한 슬픔과 아득한 세월의 아픔이 느껴졌다. 저 아이들도 무언가.. 앞으로 겪어야 될 고통이 분명 적지 않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버이날에도 자식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렸을 적에 할머니께서 늘 재미있게 꾸며서 얘기하시던 칠성동 굴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처럼...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아이들 간을 빼어 먹는다는 문디처럼...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풀이 팍 죽어 지냈다.
파릇한 신록의 향기는 너무도 풋풋하고 그 색깔은 맑고 밝고 순결하였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설익은 과일 맛처럼 아주 떨떠름하게만 보였다. 아무리 상큼하고 감미로운 바람이 불어도 가난에 찌들고 피곤에 지친 이웃 아낙네들의 웅크린 마음의 창을 조금만이라도 열게 하지는 못한 것 같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달새의 즐겁고 가벼운 노래소리도 날이 갈수록 더욱 무거워진 노쇠한 아버지들의 분주한 발길을 잠시라도 멈추어서게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던 지난 겨울밤보다 더 어둡고 우울했던 나의 마음이여... 하루가 다르게 쑥쑥 성장하는 놀라운 오월의 찬란한 기쁨의 노래를 들을 지어다. 날마다 새로운 모습과 다른 색깔로 나타나는 오월의 발랄한 생기를 볼 지어다. 혼자서 멀리 방랑의 길을 떠났던 초라한 노인에게는 그것이 더욱 서러운 몸짓이 될지라도...장난치는 아이들의 틈에 끼어 어색한 웃음이 더욱 애처로워 보여도... 아직도 가슴이 여물지를 않아서 모두가 칭찬만을 해주기를 바라는 청신한 오월을 멀리서 그저 지긋이 바라만 보았어도 좋았을 것을...삐치기를 잘하는 풋사랑의 연인처럼 다가온 오월에게 차라리 그냥 말없이 웃어만 주었어도 좋았을 텐데... 미숙한 후베닐(juvenil)의 서툰 연주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아둘토(adulto)... 이젠 진정한 관객의 배려와 성숙한 아량을 한폭의 그림처럼 보여주어야겠지...
앗뿔싸! 오월이여~ 오월속에서 내 나이를 세어서 무엇하겠느냐 하시며 참으로 오월을 사랑하셨던 금아(琴兒)선생님께서 끝내 오월의 치맛자락을 잡으시고 향년 97세의 나이로 25일 오후 11시 40분 멀고도 먼 길을 떠나셨다. 그분의 나이 불과 7세에 부친이 돌아가시고 10세에 어머니마저 여의었다고 하니 그분도 어지간히 부모덕이 박복했던가 보다. 거문고(琴)를 즐겨 타시며 아름다운 용모의 예인(藝人)이셨던 어머니가 자꾸 어디로 멀리 달아날 것만 같아 항시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녔다는 아이(兒)...선생님께서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떠나지 않겠다고 세 번이나 고개를 저으며 안심시켜주었던 어느 날 밤의 약속을 떠올릴 때마다 참으로 어머니에 대한 가슴앓이가 깊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나이 17세 때의 동경 유학시절에 당시 초등학교 1학년에 불과했던 하숙집 딸 아사코(朝子)에게 놀랍게도 애틋한 연모의 정을 품은 것도 바로 자기 어머니와 닮은 소녀의 예쁜 눈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후 다시 귀국하신 선생님의 나이 21세 때의 오월에 무슨 영문인지 정확하게 말씀하신 적은 없으나 아마도 아사코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북받쳐서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가서 자살할 마음을 품으셨던 선생님...그곳에 가서는 어느 젊어서 죽은 중국시인의 시 득료애정통고 실료애정통고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라는 귀절을 모래 위에 써 놓고 죽지 않고 돌아왔다고 하셨는데 그때 선생님의 자살충동을 막은 것은 분명 주변 가까이 있는 섬들이 보여주었던 생생한 오월의 신록이었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추측하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하셨고 “오월의 신록을 바라만 보아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고 노상 노래하셨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은 우리의 고향지기이며 백년지우인 도명 류광희 군이 지난 오월에 E-mail로 보내준 금아선생의 수필집 “오월”과 “인연”을 읽어보고 쓴 것이다. 친구는 또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선생님의 “엄마”라는 글과 “어머니(Mama)”라는 노래를 함께 듣자고 보냈는데 우리 동기들도 다같이 감상하여도 좋을 것 같다. 노래가사 번역은 오중관 군의 둘째영애 정윤 양이 수고를 하였는데 용모와 마음씨도 예쁘지만 영어실력도 출중한 것 같다.
과테말라에서 봉영(峰瑩)
제목 : 엄마 지은이: 피천득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나는 엄마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가 아빠의 엄마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이신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 버릴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도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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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유감
2007-06-04
봉영(峰瑩)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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