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에서 3월말 사이, 바람은 매우 차나 햇빛은 밝고 따스하기 그지없는 寒風陽光의 季節에는 나는 간혹 陽地를 찾아 쪼그리고 앉아 얼굴 가득 해바라기를 하면서 어릴 적 南都 釜山 옛집의 동백꽃을 생각한다. 붉은 꽃잎,노란 꽃술,두툼하고 단단한 초록 잎사귀 ,붕붕거리는 노랑색 꿀벌 그리고 밝은 태양..... 간혹 나무 밑을 허리를 숙여 들어가면 간간히 발끝에 보이는 옛 여인들이 머리에 바르는 기름용으로 사용하였다던 까맣고 윤기 나는 동백 열매...... 50여년의 긴 세월을 멈추게 만드는 생각 속의 광경이고 보물 같은 추억이면서 아마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의 첫 시작이기도 한 그 꽃이다.
동백꽃이란 문자 그대로 겨울에 피는 꽃이니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뛰고 오묘한 느낌이 드는데 일단 부산을 떠나 북쪽으로 이사를 하게 된 후에는 다시 볼 수가 없어서 매년 겨울만 되면 내 마음 속에서만 그렇게 그렇게 아련하게 그리움으로만 피게 되었다.그러다가 10여년 뒤 우연히 이 동백꽃을 대면한 것은 중학교 2년 봄 수학 여행시에 들른 통영(충무)의 충렬사 계단 양 옆 화단이었는데 이 때의 동백꽃은 계절 탓인지 어쩐지 꽃 색깔도 잎 색깔도 트릿하기 짝이 없어 나의 마음만 씁쓸하게 되고 말았다.
이후 세월이 유수처럼 흐르고 흘러 아마 1995년 2월이라고 생각되는 데, 내가 다리를 다쳐 요양하던 중에 한 친우가 나를 위로하려고 “전북 고창 선운사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하여 기분 좋게 같이 따라 나섰다.이 때 선운사 동백이 유명하다는 말을 익히 들은 바가 있어서 “아! 이번에는 드디어 진짜 동백꽂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내심으로 무척 좋아하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여 동백꽃을 찾으니 웬걸!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아 “겨울에 동백 꽃이 피지 않으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변고인고….? 하고 얼떨떨해 하였는데 마침 절 입구에 서정주의 詩碑가 하나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보여서 이것을 다 읽고 난 뒤에야 비로서 ‘나처럼 동백꽃을 보러 왔다가 헛수고를 하고 애꿎은 술만 먹고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禪雲寺洞口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오히려)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1998년부터 업무상 묘하게 “CAMELLIA” 라는 부산~후꾸오까(福岡) 간의 페리를 자주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 배 이름을 번역하고 보면 바로 “동백호” 이었던 것이었다. 이 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韓日간을 매일 운항하는 배 이름으로서 이것보다 더 좋은 이름은 달리 찾을 수가 없겠다 싶어 이 배의 이름을 명명한 사람의 혜안에 무릎을 치게 되었고 언젠가는 이 동백호를 타고 현해탄을 한번 건너 보리라 하고 생각하였다,
사실 이 동백은 원산지가 일본 그리고 한국의 남해안이어서 한일간의 쉽지 않은 공통분모 중의 하나이고 또 이것이 17세기 도꾸가와 막부 시절 일본에 있던 선교사들에 의하여 유럽으로 전파되고 극기야는 19세기 중반에 일대 붐을 일으키면서 불후의 명작 소설 “椿姬”(La Dame aux Camélias:동백꽃을 든 여자)와 오페라 “LA TRAVIATA”(방황하는 여자)를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다.즉 동양의 꽂 하나가 세계적 창작 문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옛 어릴 적 부산 집의 동백꽂과 똑 같은 느낌의 동백을 찾으려고 겨울 철만 되면 상당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원래 서울에서 남쪽으로 1,000 리나 떨어진 남해안에 집중되어 피는 꽃이다 보니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일단 가깝기도 하지만 동백이 아닌 춘백(春柏)으로 유명한 충남 서천의 마량(4월초),전북 고창의 선운사(4월초)에 한번 가보았고 동백으로 유명한 여수 오동도(2월 말)에도 어렵사리 한번 가보았다. 그리고 작년 12월 말 우연히 들렀던 진도군 조도면에서 개화한 자생 동백꽂 숲을 보고 정말 “동백 꽃이 한 겨울에 눈 속에서 핀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도 하였다.
그러나 이 동백이란 진홍색 꽃은 자세히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아름답지만 무언가 그 붉은 꽃잎에 작고 검은 상처가 하나 둘 돋보여서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고 성숙하고 정열적인 요염한 자태의 미인이지만 어딘가 조그마한 그늘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측은한 느낌도 들고 더더구나 통째로 땅 위에 처참하게 떨어져있는 모습을 보면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죽고 죽이는 삶에 대한 슬픔이 감도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이런 느낌이 동서양 공히 작용하여 “椿姬”에서의 여자 주인공 “비올레타”가 “사회적으로 하자 있는 신분” 으로 묘사되고 결국은 비극(悲劇)으로 끝을 맺게되
[나도 한마디]
박문송
감동적인 글과 동백꽃 사진들을 귀하게 잘 보았습니다. 나도 어린 시절 우리집 앞마당에 피었던 해바라기와 맨드라미 꽃도 나름대로 참 귀하고 예뻣다는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