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고난 뒤 사후세계가 있다는 사상 즉 몸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어서 그 사람의 살아생전의 행실과 업보(業報)에 따라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믿음은 현재 대부분의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핵심적인 기본교리이다. 각각 약간의 줄거리와 뉘앙스는 다르지만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힌두교, 시크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등 세상에 알려진 거의 모든 종교에서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은 그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고 보편타당한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그럴만한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심은 대로 거둔다" 즉 인과응보(因果應報)에 따른 당연한 귀결로서 각 종교의 신(神)들이 한결같이 정해놓은 이와 같은 준엄한 최종 상벌규정이 인류의 정신세계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었으며 불완전한 인간이 신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억제하여 권선징악 (勸善懲惡)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을 장려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인간 심성에 지나친 공포심과 가혹한 보복심리 및 무자비한 잔인성을 심어준 부정적인 면도 많았던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천국과 지옥에 관한 사상이 설령 방만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한 신의 불가피한 도구로 창안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의롭고 자비로운 신의 속성과는 너무도 상이한 것이며 오히려 극악무도하고 잔인한 마귀의 속성에 아주 가깝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도 그 사람이 어느날 큰 재난을 당했거나 비참한 상태로 고통과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면 누구든지 처음엔 다소 고소할지도 모르나 조금만 지나면 곧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길거리에서 차에 치여 죽은 개들을 보고도 동정심을 갖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감정일진데 하물며 뭇 인간들로부터 숭배를 받는 신이란 존재가 불완전한 인간의 짧은 생애에 지은 죄과를 영원하고도 엄청난 고통의 형벌로써 앙갚음한다는 것은 지극히 불합리한 처사로서 신의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나며 인간의 보편적인 양식에 입각한 일반적인 사회통념상의 정의감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위대한 신이 인간보다도 못한 도덕적, 감성적, 윤리적 표준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은가? 부언하자면, 자식이 온갖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어느 부모가 그 자식을 펄펄 끓는 기름 솥에 집어넣거나 혀를 뽑고 바늘로 온 몸을 찔러대고 뜨거운 유황불로 태워서 숯검덩이를 만들 생각조차 하겠는가? 그것도 단박에 죽이지 않고 영구적인 고통을 당하도록...
한때 유명한 세계적인 신학자이며 부흥전도사로 활약했던 펄시 콜레 (Percy Collet) 박사의 "내가 본 천국"이나 수많은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사후세계를 다녀온 경험담들을 보면 한결같이 등장하는 것으로서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절벽으로 된 구릉(계곡)이 있어서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갈 수는 없지만 천국에서 지옥을 한눈에 관람할 수는 있어서 그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죄인들을 바라볼 때마다 자기가 천국에 있다는 기쁨과 행복감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또 불과 몇 년 전 베스트 셀러였던 조용기 목사가 번역한 한국계 미국인인 토마스 주남 여전도사의 "천국은 확실히 있다" 라는 책에서도 보건대 그녀가 성령의 은사로서 17번 천국, 2번 지옥에 가게 되었다는데 천국에 대한 사실묘사도 맹랑하기 짝이 없고 예수님이 직접 자기에게 면류관을 씌어주면서 너는 내 딸이다.. 너로 하여금 말세의 여선지자로 삼을 것이며 조용기 목사를 시켜서 네가 쓴 책이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도록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으며 너무도 잘 생긴 에수님과 서로 끌어안고 팔짱도 끼고 어깨에 기대기도 했다는 등 지극히 불경스런 연애감정까지 드러내고 교회에서 십일조를 잘 하지 않으면 천국 문에도 못 들어가고 그 주변에 있는 골짜기에서 방황하게 된다고.. 지옥에서는 자기 부모와 친척들이 뜨거운 지옥불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자기 부모들이 비록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단지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등 너무도 황당한 주장들이 많았다. 이런 맹랑한 거짓말들을 진실인양 믿고 아멘~ 아멘~ 하면서 맞장구치고 있는 한국 개신교 각 종파의 신도들은 과연 제 정신이 있는 정상적인 사람들인가? 도대체 세상에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길래 이토록 황폐한 정신세계를 가진 자들을 기독교계의 지도자로 떠받들고 그들의 설교 아닌 교설을 들으려고 교회에 나가서 감사헌금 십일조 등 재물을 갖다바치는지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여기서 필자는 세계 각 종교가 모두 한결같이 이와 비슷한 주장들을 하는 것에 실망한 나머지 나의 신념과 철학은 세상의 어떤 종교와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근래 거의 10여년 간을 무종교, 무교회주의자로 지내 왔었다. 하지만, 얼마전 건강하시던 어머님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다시 한번 인간의 영적인 문제를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고 기독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최근까지 성경을 계속 통독하는 가운데 성경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성경의 이 구절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나름대로 과학적 논증과 추리로서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 보았더니 천국과 지옥의 교리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필자는 물론 신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 정통신학이 정립한 성경해석과 감히 상반되는 주장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라건대 독자들은 다만 여러가지 견해가 충분히 검토되어야 보다 정확한 진리에 도달하지 않겠느냐는 대승적 차원에서 필자의 이 글을 하나의 참고용 자료로서 읽어주었으면 한다.
필자가 보건대 인간의 사후세계에 관한 모든 종교적 사상은 고대 바벨론의 거짓 종교의 근간을 이루었던 영혼불멸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구조인 인간 최초의 고대 바벨론 국가의 통치자였던 니므롯과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 그리고 아들 담무스가 그들의 인간 통치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그들은 보통 인간과는 다른 불멸의 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뒤에도 그들의 영혼은 죽지 않고 다음 후계자의 몸으로 환생한다는 사상을 백성들로 하여금 믿게 하였는데 이 사상은 당시 갑작스런 언어혼란으로 야기된 바벨탑의 건축중단으로 세계 각처로 흩어졌던 민족들이 그들의 생활양식과 더불어 모든 바벨론적 종교사상과 풍습을 함께 가지고 갔기 때문에 온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따라서 하늘의 신인 니므롯과 태양신 담무스 그리고 달과 별의 신 세미라미스는 모두 동격의 신으로서 함께 숭배를 받게 한 것이 바로 삼위일체신 숭배의 기원이 되었으며 그것이 영혼불멸설과 환생교리 등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어 세상의 모든 종교의 핵심사상이 되었다.
나중에 이러한 거짓교리와 사상들은 이집트, 앗시리아, 신바벨론, 페르샤를 거쳐서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뛰어난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의하여 더욱 고차원적인 형이상학적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당대의 통치자들과 성직계급, 신학자들 및 지식인들에게는 불변의 진리로서 인식되게 되었다. 이것이 당시 헬레니즘 문화권의 지배를 받고있던 유대인 성직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어서 그리스의 종교를 모방했던 고대 로마의 다신교는 물론 페르샤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한 미트라교를 신봉하던 로마제국의 무적의 태양신 숭배도 결국 바벨론적 거짓종교를 계승한 것에 불과하였다.
그 다음 기독교를 탄압하였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화 하는 과정에서도 순수한 종교적 교리문제가 아닌 대부분 정치적 목적에서 수많은 바벨론적 거짓종교의 사상과 풍습이 기독교와 혼합하는 일이 있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 교리와 천국과 지옥의 영혼불멸사상은 마치 성경에서도 동일하게 표방되는 만고의 진리인양 기독교의 핵심적인 기본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변조가 자행되었고 그리스어 칠십인역의 사본을 로마어 불가타역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오류가 있었으며 가톨릭교회는 일반 신도들은 아예 성경을 못 보게 하였다. 성경을 올바르게 번역하고 해석하려고 노력하다가 화형에 처해진 사람들이 영국에만도 존 위클리프, 윌리엄 틴데일, 토마스 크래머, 존 로저, 존 후퍼, 로렌즈 사운더즈, 윌리엄 헌터 등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그후 로마교황권의 전횡과 비성경적인 숭배방식에 반대하여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으며 개신교측이 주장했던 성경중심의 교회에서도 각 나라마다 모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해석을 하는 과정에서 가톨릭교회의 오랜 신학적 견지를 상당부분 답습하게 되었는데 특히 삼위일체 교리와 영혼불멸사상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었던 기본교리로서 확고하게 인식되어져 왔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도 약간의 수정만을 가했을 뿐 대부분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개신교 박해에 못지않게 개신교 측에서도 근대 신흥국가 권력의 힘을 빌어 가톨릭신도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 신, 구교간의 30년 전쟁 등 오랜 반목과 종교분쟁의 참혹한 폐해로 드러난 양상을 보면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모두들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들 교회세력의 확장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직제도도 성경에 명시된 1세기 당시의 믿음의 형제들로 구성된 교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신, 구교를 막론하고 직업적인 성직계급이 된 신부(神父)와 목사(牧師)라는 명칭도 성경에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8 - 9절 참조)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현재 가톨릭교회는 물론 수많은 개신교 각 종파의 교회에서 사용하는 많은 성경 번역본들이 일부 번역자체가 잘못된 경우도 있고 번역시 사용된 단어가 상당히 부적절한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독자들은 반드시 여러 성경들을 함께 참조하고 서로 대조하여 일부 단어와 문장에 구애되지 않고 전,후 문맥의 진정한 의미를 잘 살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되는 해석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는데 각별한 주의가 필요 하다고 본다. 어떻게 하든지 진리의 빛이 드러나지 않도록 온갖 방해와 음폐공작을 자행했던 사탄 마귀의 책동을 감안하면 그래도 이만큼이나 성경이 잘 보존되고 온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필자가 그동안 여러 성경번역본들과 주해서를 함께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성결구절들을 통하여 영혼 불멸설에 따른 천국과 지옥의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독자들도 여기 게시된 성경구절들을 자세히 읽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신 성경의 진리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1. 창세기 1장 27 - 28절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흙으로 지어진 육신의 몸을 가진 인간으로 하여금 땅을 아름다운 낙원으로 가꾸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땅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하신 것이지 하늘에서 천사들과 같은 영(靈)의 몸으로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일들이 반역자인 사탄 마귀의 방해로 일시적인 지연이 있게 되었지만 결코 중단될 수는 없다.
2. 창세기 2장 2 - 7절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 living soul ; 산 영혼 )이 된지라
따라서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지만 그 사람의 사망으로 생명력을 잃게 되면 영혼도 죽게 된다. 다만 그 생명력은 하나님이 거두어 가신 것이므로 언제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산 영혼이 될 수가 있다. 그것이 곧 부활인데 그 부활의 시기는 예수가 재림하는 마지막 때이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죽음의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
3. 창세기 2장 16 - 17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부부였던 아담과 이브에게 범죄(하나님의 말씀을 거역 하는 것)하면 죽으리라고 하셨지만 사탄 마귀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영혼불멸설은 사탄마귀의 거짓말임이 분명한데 아담과 이브가 범죄를 저지른 후에 실제로 죽었지만 사탄마귀의 주장대로 몸만 죽고 영혼은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닌다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마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4. 창세기 3장 1 - 6절 ;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인간이 사탄의 말대로 과연 하나님과 같이 되어 스스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는지는 어느 정도 긴 세월에 걸친 실험적 증명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그것이 사탄 마귀의 거짓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인간의 선악에 대한 잣대로서 인간 스스로 생각해낸 모든 철학과 사상 및 이념 그리고 모든 사회제도, 국가제도, 정부형태로는 이 세상이 결코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에 바람직한 곳이 되게 하지 못하였다. 인간의 지배자는 인간에게 큰 해만 끼쳤을 뿐 인간은 절대자인 하나님의 지도가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5. 창세기 3장 17 - 19절 ;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흙으로 돌아간다 함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죽음이란 더는 생명력이 없는 상태이므로 무언가가 (즉, 영혼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죽음은 살아있음의 반대이고 촛불이 꺼지면 그 불빛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6. 에스겔 18장 4절 ;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성경에서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인간의 영혼은 죽는다고 했는데 그 영혼이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억지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7. 야고보서 1장 15절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모든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었던 아담의 자손으로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그 완전성을 상실하여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유전법칙에 의하여 그 부모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물려받아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음에 이르렀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죄를 한번도 짓지 않고 살 수 없음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였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마련으로서 인간의 씨가 아닌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가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므로 예수의 대속희생의 가치로 말미암아 인간은 완전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예수를 두 번째 아담이라고 하며 장차 완전성을 회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신 분으로 묘사한다.그 분의 뒤를 이어 마지막 때에 있게될 제자들의 부활을 생명의 부활, 첫 번째 부활이라고 한다.
8. 로마서 6장 23절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생(영원히 사는 것)의 반대는 사망 즉 영원히 죽는 것이다. 단 사망하게 되면 모두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중의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부활(다시 생명을 얻음)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오늘날 신, 구교를 막론하고 영혼불멸과 부활이 모두 다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 둘은 서로 상충될 뿐 결코 부합되지 않는다. 부활은 마지막 때에 예수가 재림할 때 일어나는데 그동안 천국이나 지옥에서 살아있던 영혼들을 데려와서 다시 육체와 결합시킨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9. 히브리서 9장 27절 ;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영혼불멸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 성경구절을 곡해하여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서 저승으로 가서 천국행인지 지옥행인지 최종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지만 이 심판은 그런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심판이며 또한 처음부터 '생명의 부활'을 받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심판의 부활'로 일으킴을 받는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삶(하나님의 왕국의 통치를 받는 지상낙원에서의 삶..)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릴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심판으로서 이 심판의 결과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 성경에서 부활은 예수가 재림할 때 있게 되므로 그 전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심판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깊은 죽음의 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죽은 사람들의 상태에 대한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보면 그 점이 더욱 확실하다.
10. 전도서 9장 5절 ;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되었다 함은 하나님의 부정적인 평가로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며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의식의 상태에 있게 된다.
11. 전도서 9장 10절 ;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여기서 음부는 히브리어로 스올(Sheol)이며 그리스어로는 하데스(Hades)로서 인간이 죽어서 묻히는 일반적인 무덤인데 성경에서는 똑같은 단어를 임의대로 한쪽에서는 음부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지옥(Hell)으로 번역한 곳이 많다. 성경에서 흔히 지옥으로 번역된 또 다른 단어는 게헨나(Gehenna)인데 그곳은 '힌놈의 골짜기'라는 곳으로 예루살렘 성외곽에 있던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원래는 배교한 유대왕들이 황소 형상의 몰록(Moloch) 우상을 숭배하던 곳으로 아이들을 희생제물로 바쳤으며 요시야 왕에 의해 페지된 후에도 그곳은 죽은 범죄자들과 동물의 시체를 태웠는데 늘 한쪽에서는 소각작업이 진행되었고 다른 쪽에서는 시체가 썩어서 구데기가 끊임없이 득실대던 곳이라 구데기도 죽지않는 곳으로 불리웠다. 그래서 그곳은 유대인들에게 저주받은 곳으로서 화염과 유황으로 불타는 불못으로 불리우며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최종적인 결과로서 영원한 멸망의 상징적인 장소로 인식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을 결코 죄를 지은 인간의 영혼들이 사후세계인 영계에서 영원한 고초를 받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지는 지옥(Hell)으로 번역해서는 아니 된다. 성경의 원어대로 게헨나는 그대로 게헨나로 표기하는 것이 백번 지당하다. 성경에서는 단어 일점 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성경번역 과정에서 엉뚱한 의미를 가진 단어로 번역하는 것도 큰 잘못이다. 성경의 순수한 말씀의 의미를 거짓종교의 사상과 인간의 철학적 개념으로 훼손하는 것도 참람한 죄를 범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성경 원어가 여호와이면 여호와로 번역해야 하는데 주(LORD)로 번역하고 "하나님과 예수"를 "하나님 즉 예수"로, 예수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을 "창조의 근본"으로, "예수는 하나님의 형체시나.. 종의 형체를 가져.."를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종의 형체를 가져.."로 원어에서 똑같은 단어를 서로 다른 단어로 번역하거나 원어에 없는 단어를 첨가하는 등.. 번역의 부당함을 일일이 다 열거하자면 여기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암튼 오늘은 여기서 이 정도로 끝을 맺고 이어지는 12항부터는 다음의 "하나님의 왕국"이란 제하로서 다시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봉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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