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니엘 9: 24 - 27)
성경 예언에서는 1일을 1년으로 보기 때문에 '70주'는 '햇수로 된 70주' 즉 490년이다. 다니엘의 예언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메시아가 오기까지 햇수로 69주 즉 483년이 걸린다고 한다. 처음의 7주 즉 49년 동안은 그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며 그 다음 62주 즉 434년이 더 경과하면 메시아가 온다는 것이다. 1세기 유대인들은 이 예언을 근거로 메시아의 출현을 예의주시 하였으며 침례요한에 대하여 '혹시 그가 그리스도가 아닌가' 마음 속으로 추리하고 있었다. (누가 3: 15 ) 70주의 마지막 한 주 동안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주의 절반 즉 3년 반 후에 메시아가 끊어지면서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 한다. 여기서 언약이라 함은 율법계약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축복의 약속 즉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으로 그동안 이 축복의 약속이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었다가 이방인인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의 모든 국가, 모든 인류에게도 확대 적용되게 되었다.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것은 모세 율법에 따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희생제물과 예물을 바치던 일을 그만 두게 한다는 것으로서 그것들을 대신하여 메시아가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친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 10: 12 - 14 ) 메시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회개한 죄인들의 범법과 죄가 면제되고 그 형벌도 그치게 되었다. 그들의 죄를 덮음으로써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선언"될 길이 열렸다. 그러한 의는 영원한 것이고 의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상이 주어질 것이다. 다음 구절의 해석은 생략하고 이제부터는 언제 누구에 의해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려졌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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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고레스 왕은 키루스 2세 또는 키루스 대제(Cyrus the Great)로 불리우며 이란인들에게는 건국의 아버지로, 세계 최초의 인권을 선언한 성군으로 여긴다. 그가 통치했던 페르시아는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대부분, 에게해와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이집트를 정복하러 나선 원정길에서 사망하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즉위하여 마침내 그 숙원사업을 완수하게 된다. 점토판으로 된 캄비세스 2세의 비문에서는 그의 통치 제 7년 담무스월 14일에 3시간 20분간 그리고 데벳월 14일에 5시간이나 진행된 월식이 바빌론 전역에서 목격되었다고 한다. 오플처의 식전(蝕典 ; Canon of Eclipse)에 의하면 이 두 건의 월식은 BC 523년 7월 16일과 BC 522년 1월 10일에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BC 523년 니산월에 캄비세스 2세의 재위 제 7년이 시작되었고 그의 재위 원년은 BC 529년, 즉위년은 BC 530년이 된다. 바빌로니아 연대기에 의하면 고레스 왕은 바빌론의 왕으로서만 따져 재위 제 9년에 사망했다고 하므로 그의 사망연도는 BC 530년이고 재위 원년은 BC 538년, 즉위년은 바빌론이 함락된 BC 539년이다. 캄비세스 2세는 성경상에는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영웅들의 지배자'라는 뜻으로 왕의 호칭이었다.)로 나오며 이 왕의 즉위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성전건축을 방해하려는 적들로부터 서면으로 고발을 당하였다. (에스라 4: 6 )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 정복사업에 매달려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 BC 522년 마침내 이집트를 정복하고 귀국하는 도중에 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스메르디스가 8개월간 왕위에 올랐는데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그는 캄비세스 2세의 아우 바르디야 혹은 바르디야로 행세한 마기 제사장 가우마타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가 누구였던간에 스메르디스는 성경상에서는 아닥사스다(아르타크세르크세스; '진정한 대왕'이란 뜻으로 역시 왕의 호칭이었다.)로 지칭되었으며 이 왕의 통치 중에 예루살렘의 적들에 의하여 두번 째로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고소장이 접수되었고 마침내 건축공사 금지령이 내려졌다. (에스라 4: 7 -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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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같은 해 BC 522년 말경 고레스 왕의 사위였던 다리우스 히스타스피스가 스메르디스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는데 스메르디스를 왕위 찬탈자로 규정하고 자기가 캄비세스 2세의 정통 후계자임을 주장하였다. 이가 곧 다리우스 1세, 다리우스 대왕(Darius the Great)으로 불리운 인물이다. 그의 통치 제 2년, 즉 BC 520년에 예루살렘의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는 성전건축을 재개하도록 유대인들을 독려하였고 이에 따라 성전공사가 어느정도 다시 진척되었다. 그러자 유프라테스 강 서쪽지역의 총독 닷드내와 인근지역의 관리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다리우스 1세에게 그 공사가 합법적인지 서면질의를 하게 되었는데 다리우스 1세는 지난날 성전공사 금지령을 내렸던 스메르디스를 반역자로 처단한 바도 있고 엑바타나에 있는 왕실문서 보관소에서 키루스가 성전건축을 허가한 문서를 찾아냈으므로 당연히 그 금지령을 해제함과 동시에 금후 다시 성전건축을 방해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도록 명하였다. 그리하여 다리우스 1세 재위 제 6년 아달월 3일, 즉 BC 515년 3월 6일에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었다. 다리우스 1세는 키루스보다 더 크게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BC 490년에 그리스를 침공하였다가 마라톤에서 패배한 후 그의 재위 제 36년을 끝으로 BC 486년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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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르 크세스 1세는 성경상에는 아하수에로 왕으로 나오며 유대인 모르드개의 사촌 여동생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고 BC 480년에 그리스를 두 번째로 침공하여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하고 (영화 300에 나옴) 아테네를 황폐화시켰으나 살라미스 해전의 패전에 이어 이듬해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도 완패하게 되자 바빌론으로 물러갔다가 말년에 부하였던 아르타바누스에게 암살당한 인물이다. 이 왕의 즉위년을 세속역사에서는 BC 486년, 재위 원년을 BC 485년으로 보고 있으나 각각 BC 496년 및 BC 495년으로 봐야할 유력한 증거들이 많이 있다. 그가 부왕인 다리우스 1세와 BC 496년부터 BC 486년까지 10년간 공동통치를 하였다는 증거로는 첫째,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가 21년간 통치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드리아 역대기에서는 그가 11년간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의 단독통치기간만을 기록한 것으로 공동통치기간이 빠진 것이다. 둘째, 바빌로니아 유적지에서 발굴된 수많은 설형문자 점토판의 해석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 1세는 BC 498년에 착공하여 BC 496년에 완공된 자신의 궁전에서 (다리우스 1세의 궁전 중심부에 있었음) 황태자가 아닌 왕으로서 즉위하였고 궁전의 문과 벽면의 부조에 다리우스 1세와 머리위치, 복장 및 왕권에 관한 모든 상징물을 동일하게 묘사한 것은 그의 신분이 이미 왕이었음을 나타낸다. 셋째,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다리우스 1세는 왕권을 달라는 아들의 청원을 정당하게 보고 그를 왕으로 공표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 아들이 그런 청원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왕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넷째, 그리스 로마 연대기에 의하면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물리친 그리스의 정치가이며 전쟁영웅인 테미스토클레스가 BC 470년 경에 반역자로 몰려 페르시아로 망명을 했는데 그때 크세르크세스는 이미 죽고 젊은 그의 아들 아르타 크세르크세스(아닥사스다)가 그를 알현했다고 한다. 정확한 기록으로 명성이 높은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로마의 역사가 유스티누스도 이에 관해 증언하였으며 현대의 역사가 M. 드 쿠토르는 그의 저서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는 BC 475년에 죽었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따라서 크세르크세스는 BC 496년에 즉위하여 BC 475년까지 통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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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왕은 크세르크세스 1세를 암살한 아르타바누스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몇개월 뒤에 그를 때려죽인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아르타 크세르크세스이다. 성경상에는 아닥사스다 왕으로 나오며 롱기마누스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아닥사스다 왕은 세속역사에서는 BC 465년부터 BC 424년까지 41년간 통치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BC 475년부터 51년간 통치하였음이 분명하다. 아닥사스다 왕의 즉위년이 BC 475년임은 이미 설명하였고 그가 51년 동안 왕으로 통치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확실한 증거자료가 나왔기 때문이다. 펜실베니아 대학교 바빌로니아 탐사대가 발굴한 한 설형문자 서판에서 (아닥사스다 왕 다음의 일련의 정변에서 승리한) 다리우스 2세의 즉위년에,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51년 열두 째 달 20일에 이 문서가 작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확정일자로서 그만큼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참고로 아닥사스다 왕을 계승한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2세는 단지 2개월 만에 죽었고 그의 형제인 소그디아누스가 뒤를 이었으나 그도 7개월만에 다리우스 2세에게 살해되었다. 다리우스 2세는 그후 19년간 통치하였는데 역사가들은 그의 즉위년이 BC 424년이라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따라서 아닥사스다 왕의 재위 제 51년이 BC 424년이라면 그의 즉위년은 BC 475년이 되어야 하고 재위 원년은 BC 474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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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독교계에서는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7년에 내려졌던 에스라의 예루살렘 귀환을 명령한 조서를 다니엘 9장 24 - 27절에서 예언한 메시아의 출현과 관련한 '해로된 69주' 즉 483년의 기산점이 되는 명령인 '예루살렘을 중건 하라는 영'으로 보았는데 이는 아닥사스다 왕의 즉위년을 BC 465년, 재위 원년을 BC 464년, 재위 제 7년을 BC 458년이라고 보는 세속역사에 따랐기 때문이며 성경자체의 내용에 따른 연대를 우선적으로 면밀하게 살펴보고 세속역사의 실체적 진실발견을 기다려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BC 458년부터 483년이 지나면 AD 26년이 되고 이 해가 그동안 예수가 요한에게 침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정확한 연대로 받아들여져 왔으나 (따라서 예수의 탄생도 BC 5 - 6년이라고 믿었다.) 이것이 잘못되었음은 이미 성경 이야기 2 -에서 지적한 바가 있다.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7년은 올바른 연대로는 BC 468년이 되어야 하고 다니엘의 예언과 부합하는 영은 그의 재위 제 20년, BC 455년에 내려졌다.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20년에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혜미아에게 예루살렘의 성문과 성벽을 중건하도록 조서를 내렸는데 이것이 다니엘의 예언에 나오는 거리(Street)와 해자(Wall)가 이룰 것, 즉 성문(당시 성문 앞 거리에서 재판을 하였으므로)과 성벽의 중건이라는 목적과 부합하는 명령이었음이 분명하다. 사실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7년에 에스라에게 내려졌던 조서는, 첫째, 유대 예루살렘의 정형을 살필 것 둘째, 금 은 예물 및 성전에 쓸 기명, 밀, 포도주, 기름, 소금들을 가져갈 것 셋째,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의 세금을 면제할 것 넷째, 율법과 왕명을 준행토록 재판관과 행정관을 뽑아 백성을 재판하고 가르칠 것..등을 명령한 것으로 주로 성전봉사 및 법질서와 민정을 살피고 백성을 재판하고 교육하라는 것으로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전건축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했던 BC 538년의 고레스 왕의 칙령과 마찬가지로 이 명령 또한 다니엘의 예언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다니엘 9장 24 - 27절의 에언은 아닥사스다 왕 재위 제 20년이며 올바른 연대로는 BC 455년에 느혜미아에게 내려졌던 조서에 적용된다. BC 455년부터 483년이 지난 AD 29년 가을에 예수가 메시아가 되었다. 또한 유대인에게 정해진 기한 70주 즉 490년은 BC 455년부터 적용하면 AD 36년에 마치게 되는데 이 해에 처음으로 이방인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하나님의 은총과 성령을 받게 되었다. 69주 다음의 마지막 한 주 즉 7년의 중간인 AD 33년 봄 니산월 14일 유월절에 예수는 3년 6개월의 공적활동을 마치고 반대자들에 의해 처형되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의 자신의 몸, 완전하고도 죄없는 생명을 희생함으로써 인류의 첫 조상이며 역시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되었던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음과 함께 갖가지 불완전한 병적인 성향의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나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원래대로 회복하셨으며 예수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이 세워놓은 표준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