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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이야기 2
이름   봉영(峰瑩) 등록일   2013-10-28 오후 12:57:00
e-mail   mariscal24@naver.com
내용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누가 3: 1 - 6)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 3: 15 - 17)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 쯤 되시니라 (누가 3: 21 - 23)













성경에 의하면,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 제 15년에 침례 요한이 유대 요단강
각처에서 유대인들에게 죄 사함을 얻게하는 회개의 침례를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티베리우스는 로마의 첫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AD 14년 8월
19일에 죽자 그 뒤를 이어 9월 15일 로마 원로원에 의해 두번째 황제로 추대되어
9월 17일에 즉위식을 가졌다. 그의 재위 원년은 로마의 황제 연대계산법에 따라
AD 14년 9월부터 AD 15년 9월까지이며 따라서 그의 통치 제 15년은 AD 28년
9월부터 AD 29년 9월까지이다.

이 기간 중에 침례 요한이 요단강 각처에서 침례를 베푸는 일을 하였다면 그것은
AD 28년은 해당사항이 없고 AD 29년 봄부터 가을까지 즉 유대력으로 첫째달인
니산월(3 - 4월)부터 일곱째달 에다님월(9 - 10월)까지 6개월간이었을 것이다.
유대지방을 포함하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기후를 고려할 때 비가 오기 시작하는
늦가을 즉 여덟째달 불월부터 이듬해 이른봄 즉 열두째달 아달월까지는 추워서
요단강 각처에서 침례를 베푸는 일은 사실상 중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침례 요한보다 6개월 후에 태어난 예수가 만 30세가 되었을 때 침례 요한에게
나아와서 침례를 받은 시기는 AD 29년 에다님월(9 - 10월)이라고 보아야 한다.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맏아들들은 각자 만 30세에 이르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성별되었고 하나님의 성전봉사를 해야 하는 의무와 특권을 누렸다.
(민수기 4: 1 - 3, 22, 23, 29, 30)
따라서 침례 요한은 AD 29년 봄 니산월(3 - 4월)에, 예수는 가을 에다님월
(9 - 10월)에 만 30세가 되었고 그때부터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예수가 침례를 받은 날은 인류역사상 가장 장엄하고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는데,
하늘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형체로 예수에게 내려왔으며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원문의 정확한 번역은
'내가 너를 승인하였다' 임)"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태 3: 16,17, 마가 1: 9 11, 누가 3: 21, 22)
이것은 바로 그때 예수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기름부음 받은 자 곧 메시아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하나님이 인류에게 직접 확인을 시켜준 사건인 것이다.
그로부터 예수는 반대자들에 의해 처형되기까지 3년 6개월간의 짧은 공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사명을 완수하였고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신학적인 평가를 불문하고 역사적인 실존인물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예수는 AD 29년 가을 에다님월(9 - 10월)로부터 3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BC 2년 가을 에다님월(9 - 10월)에 출생하였다고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의 출생년도와 관련하여 수많은 논란과 억측이 있어 왔고,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의 내용이 전부 진리임을 확신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조차도 성경에 분명히 제시된 예수의 출생년도를
면밀하게 살펴보지도 않고 근거가 부정확한 세속적인 자료들에 의거하여
BC 5 -6년설을 정설로 인정하여 왔음은 심히 유감스런 일이라 할 것이다.
몇가지 학설과 근거자료들을 살펴보면,

(1) BC 7년설 ;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자리에서 합쳐지는 현상이 약 800년 주기로 일어나는데 BC 7년에
그런 현상이 있었고 동방박사가 그 천체현상을 관측하고 왕의 상징인 목성
(Jupiter)이 악마의 상징인 토성(Saturn)을 덮쳤으므로 새로운 위대한 왕의
탄생징조로 보았다고 한다.

(2) BC 5 - 6년설 ; 헤롯대왕의 사망을 BC 4년으로 보고 헤롯대왕이 죽기 전
2살 아래의 남자아이들을 살해하였다고 하여 그로부터 1 - 2년 전에 예수가
탄생했다고 본다.
1세기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헤롯대왕은 "월식이
있고나서 오래지 않아, 그해 유월절 축제가 시작되기 얼마 전에 죽었다"고
기록했는데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당시 유대지방의 월식현상이 BC 4년
3월 12일에 있었고 그해 유월절은 4월 11일이었으므로 헤롯대왕의 죽음은
BC 4년 3월 ~ 4월 사이였음이 틀림없고 따라서 예수의 출생은 그보다
1 - 2년 전인 BC 5 - 6년이라고 한다.
또한 원래 AD(Anno Domini : 주님의 해)와 BC(Before Christ)의 구분은 6세기
신학자 디오니시우스가 부활절의 날짜를 계산하면서 예수의 출생시기를
AD 1년으로 정한 것으로 비롯되었는데 BC 1년과 AD 1년 간극이 0년이란
사실과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재위기간을 계산할 때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4년을 빼먹는 바람에 도합 5년의 오차가 발생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은 BC 5년 - 6년 사이로 보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3) BC 3- 4년설 ; 요세푸스의 또다른 기록에 의하면 헤롯대왕이 로마에서
갈릴리 분봉왕으로 지명(BC 40년)된지 37년 후에, 그리고 예루살렘을
점령(BC 37년)한지 34년 후에 죽었다고 했는데 요세푸스는 로마 황제나
집정관의 연대방식이 아닌 다윗가계 즉 유대왕들의 통치기간은 즉위년
방식을 따랐을 것이므로 헤롯대왕의 통치원년은 BC 40년이 아니고 이듬해
BC 39년 첫째달 니산월(3 - 4월)부터 열두째달이 되는 아달월(2 - 3월) 즉
BC 38년까지이고 그로부터 37년 후에 BC 2년 니산월에서 BC 1년 아달월
사이에 헤롯대왕이 사망하였으므로 예수는 그보다 1 - 2년 전 BC 3 -4년
사이에 출생했다고 보는 설이다. 그러나 BC 4년 3월 12일에 있었던 걸로
확인된 월식현상과 조화되지 않아 이 학설은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4) BC 2년설 ; 권위있는 역사학자들과 백과사전에서는 지금까지 예수의
출생시기를 BC 1년? - 6년? , BC 2년? - 5년? 등으로 물음표 ?를 끼워넣어
정확한 년대는 미상인 것으로 표기하였으나 근래 확실하게 BC 2년경으로
표시하고 있음은 역사자료에 따른 사실관계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첫째, 2세기 그리스 로마의 역사가 아피아노스가 헤롯대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해가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BC 63년으로부터 27년이
지난 BC 36년이며 그가 갈릴리의 왕이 된 것은 그보다 3년 전이었으므로
BC 39년이라고 했다. 위의 (3)의 학설에서 소개한 유대왕의 연대방식에
따르면 헤롯대왕의 사망시기는 BC 1년 - AD 1년 사이가 되는데 그때
유대지방에 월식현상이 있었는지의 여부가 문제해결의 관건이 되었다.
둘째, 천문학자들의 면밀한 조사에 의해서 그 명확한 답이 제시되었는데,
요세푸스가 말하는 월식은 BC 4년 3월 12일의 불과 36%짜리 부분월식이
아니라 BC 1년 1월 9일의 개기월식으로 밝혀졌다. BC 4년의 부분월식은
날이 밝은 아침 7시 경에 있었으므로 일반인들이 거의 인식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여 BC 1년의 것은 심야에 무려 1시간 41분 동안이나 진행되어
유대지방의 모든 사람들이 인상깊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자이자 역사가인 W. E. 필머도 '신학연구지'에서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헤롯대왕이 스밧월(1 - 2월) 2일에 사망했다고 하므로 BC 1년 1월
9일의 개기월식은 요세푸스의 기록과도 정확하게 부합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헤롯대왕의 사망년도는 BC 1년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예수의
출생년도는 BC 2년경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였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자체의 기록을 근거로 예수가 BC 2년 가을인
에다님월(9 - 10월)에 출생하였음을 논술하였는데 최근에 천문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백과사전에서도 예수의 출생연도를
대체로 BC 2년으로 명시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동안 BC 539년 메대, 페르시아 연합군에 의한 바빌론의 멸망에 관한
성경의 기록과 세속역사가 알려주는 내용들이 세부점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앞으로 BC 539년(이 연도를
절대연대라고 부름)부터 BC 2년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들에 관한
성경상의 연대와 세속역사연대와의 간극이 좁혀지거나 일치되는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 예견된다. 그 중 몇가지를 예로 들자면,
BC 2년 예수의 출생이 확실하면 이와 연계된 메시아의 출현( AD 29년 ;
종전에는 AD 26년), 메시아의 끊어짐( AD 33년 ; 종전에는 AD 30년),
유대인에게 지정된 기한의 종료( AD 36년 이방인 고넬료의 개종 ;
종전에는 AD 33년 스테판의 순교) 등의 연대가 바뀌어져야 하며 특히,
메시아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 중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69주 및 70주의 기산점이 되는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 느헤미아의 귀환 ;
종전에는 아닥사스다 왕 제 7년 에스라의 귀환)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므로 일부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을 세속역사에 맞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무리한 성경해석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시정조치를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속역사가 최근 새롭게 드러나는 과학적 자료들과 고고학적
발굴 및 고증을 통해 마침내 성경진리에 정확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봉영










[나도 한마디]
김건우  나도 그리스도교인(처주교)이지만,예수 그리스도를 순수히 학자적 입장에서만 40년 연구한,"털리"의 의견도 들어볼만 하네,=예수그리스도는,혁명가,예언자, 기적을 행하는 자로서는 실패했지만 지혜의 교사로서는 평균 이상이었고 그 누구 보다 매력적인 설교자였다 2013-11-22 오후 5:55:00 x

김건우  예수님 출생 연도 착오 때문에 실제 예수님은 36세에 ㅗㄹ아가신 것으로 보고 있고, 제자들도 12명이 아니라 14명 이상 이라고 함 2013-11-22 오후 5:45:00 x

김건우  세례자 요한은=1.인기높고 깊은 감동을 준 인물,2.개인저그로 철저하게 고통으로 점철된 인물. 3.명예를 탐하거나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외침, 4.예수 그리스도를 충실히 증거하고 그 리스도 뒤로 완전히사라져 버린 큰 인물 2013-11-22 오후 5:17:00 x

신태형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세상을 떠날 텐데, 모두 천국을 믿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3-11-02 오후 2:35:0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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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야기 2 2013-10-28 봉영(峰瑩) 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