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랄산맥에서는 가끔 의문사가 발생하는데..... 우랄 산맥의 미스테리" 1959년 1월 27일 소련의 우랄 주립기술대학 공학부의 탐험대장 이고르 댜틀러브(Igor Dyatlov)를 포함한 남자 8명 여자 2명으로 구성된 탐사대가 오토르텐 산을 등산하기 위해서 비즈하이 마을에 베이스 캠프를 쳤다 이들은 산탐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으며 뛰어난 스키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 오토르텐 산(Gora Otorten) - 1182m의 높이의 산으로 에카테린부르그 북쪽에 존재 우랄주립기술대학(Ural polytechnical Institute) - 현재 Ural State Technical University 탐사대의 일정은 1월 28일 베이스 캠프인 비즈하이에서 출발하여 소련의 우랄 산맥을 거쳐서 탐사 목표인 오로트렌 산 등반 후 2월 12일 베이스로 복귀였다 당시 등반대장 Dyatlov의 이름을 따 지은 디아틀로브 고갯길 설경 하지만 출발 하루 전날 갑자기 유리 유딘(Yuri Yudin)이 쓰러져 버렸다 그래서 어쩔수없이 유리 유딘을 베이스 캠프에 남겨둔 채 나머지 9명은 탐사 목표인 오트렌 산을 향해 떠났다 탐사대가 베이스 캠프를 떠나고 계속 우랄 산맥에 계속 폭설이 내렸고 너무 걱정된 유리 유딘은 5일 후인 2월 2일 밤 11시경에 탐사대의 안부를 물어보기 위해서 무전기로 연락을 취했고 다행이 탐헝 대장인 이고르와 연락이 닿았다 이고르는 현재 기온 영하 30도로 몹시 추운 날씨지만 대원들은 전원 무사하며 기상 악화로 인해서 경로를 잠시 벗어나 콜랏 샤흘산에 임시 캠프를 차린것 이외에는 특이 사항이 없다고 했다 사고 후 수색대가 텐트 안에 남겨져 있던 필름을 현상했다-2월 2일 하오5시 텐트를 치고있는 등반대원들
유리 유딘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다음날 2월 3일 06:00시경 다시 이고르에게 무전을 했다 하지만 무전기에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유리 유딘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마음에 2월 12일까지 베이스캠프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일정 마지막 날인 12일에도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지 않았다 12일날 유리는 가족들에게 탐사대의 실종 소식을 전했고 가족들의 실종 신고로 인해서 20일에 콜랏 샤흘산으로 구조대가 급파되었다 구조대는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수색을 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악천후와 콜랏 샤흘산의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으로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수색 7일 후인 2월 26일 드디어 구조대가 탐사대가 머문 임시 캠프를 발견했다 하지만 거기엔 탐사 대원들은 보이지 않고 그들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찢어진 텐트와 버려진 옷, 스키 장비와 탐험 도구등만 남아 있었다 찢겨진 텐트
구조대는 버려진 텐트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텐트에서 1.5km 떨어진 숲에서 불을 피운 흔적과 함께 대원 2명의 시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후 그 근처를 더 수색한 결과 텐트로 가는 길목에서 탐험 대장을 포함한 대원 3명의 시신을 더 발견했다 남은 4명의 대원을 더 찾기 위해서 수색을 했지만 한참 동안 찾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5월 4일 숲에서 75미터 떨어진 계곡에서 나머지 4명의 시신을 마저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탐사대를 발견한 이후 구조대는 탐사대의 사망 원인 및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모든 언론들은 그것은 전혀 터무니없고 말이 안된다며 계속 의문을 제기했다
1. 첫번째 의문 처음 발견된 5명의 대원은 기온 영하 30도의 강추위에서도 속옷만 입고 신발도 신지 않은 차림으로 얼어죽어 있었으며 하나 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리고 텐트는 누군가 밖에서 안으로 칩임한 것이 아닌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서 찢어졌다. 2. 두번째 의문 마지막에 발견된 4명의 대원들 자동차와 부딪힌 것 같은 큰 물리적인 충격으로1명은 두개골 골절 2명은 가슴뼈 골절 같은 증상이 있었고 그 중에 유일한 여성인 루드밀라(Lyudmila Dubinina)는 혀가 반듯이 잘려 나간듯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계곡은 경사지고 깊은 곳이 아니고 완만한 곳으로 낙상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는 것,왜 그들은 임시 텐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을까란 의문이었다 3. 세번째 의문 불이 나기 어려운 겨울인것에 반해서 4명이 발견된 계곡의 전나무가 불에탄 흔적이 존재했으며탐사대원의 피부가 오렌지 색으로 착색되어 있었고 옷에서는 높은 방사능 수치가 검출되었다
이런 많은 의문이 존재하는데 구조대가 발표한 탐사대의 사망 원인은 바로 기상 악화로 인한 조난 사망 이었다고 했다. 발표 이후에도 언론이 계속 의문을 제기했는데 그 이후 소련 정부는 조난 사고에 대해 공식 발표했으며 그 조사 관련 문건을 공개 금지 문서로지정 후 콜랏 샤흘산을 봉쇄하고 3년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버렸다 언론도 뚜렷한 소련 정부의 강압적인 태도로 인해서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으며사람들도 시간이 지나감으로 인해서 기억속에서 점차 잊혀져갔다. 그러던 8년 후인 1967년 탐사대 사건을 바탕으로 저널리스트인 유리 야로보이의 소설인"Of the highest rank of complexity"를 펴내면서 다시 논란이 되기 시작했고 많은 주장이 생겨났다. 1. 첫번째 주장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마크 모르포드가 사건 당시 탐험대는 독초 때문에 환각 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함. 그 증거로 캠프 주변엔 많은 독초가 존재했으며 그 독초들의 독이 눈으로 스며들었고 그것을 알지 못한 대원들이 그 눈을 취사용으로 사용하면서 모두 환각에 빠져 텐트밖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해다는 것. 하지만 당시 극심한 추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불을 피운 흔적이 존재했으며 나중에 발견된 대원들이 추위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먼저 죽은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독초로 인해 환각상태라면 그런 이성적인 행동은 하지 못한다는 반론으로 주장은 무시당함 2. 두번째 주장 탐사대의 사망 원인이 그 당시 콜랏 샤흘산의 토착민인 만시 원주민의 공격때문이라고 주 - 만시인 (mansi) 옛이름 보굴인 - 한티만시 자지구에 거죽하는 민족으로 일부는 튜멘주와 러시아밖에 거주하며 만시어를 사용 하지만 텐트 주변은 만시 원주인의 공격은 커녕 접근한 흔적조차 발견되자 않았으며 당시 검시관인 보리스 보즈라즈데니의 문서 기록에 따르면 교통사고의 충돌만큼 큰 물리적인 충격적을 받은걸로 기록되는데 만시 원주민의 공격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무시되었다. 3. 세번째 주장 미국의 과학 분석가인 브라이언 더닝은 탐사대는 사망 원인은 눈사태라고 주장. 그 증거로 눈사태를 피하기 위해서 텐트를 안에서 찢고 도주한 것이라고 함. 하지만 그 주장도 터무니없으니 산탐색의 전문가들 답게 텐트가 있던 지형은 완만한 지형으로 눈사태의 위험도 없었으며 눈사태가 발생했다면 그 위급한 상황에 불을 피웠는지 설명조차 할 수 없슴. 그리고 실제 사고 당시에도 눈사태는 발생하지 않았기에 주장은 무시됨 4. 네번째 주장 그렇게 사람들에게 궁금증과 많은 논란을 계속 주는 중에2008년 2월 12일에 탐사대의 유일한 생존자 즉 베이스 캠프에 남았던 유리 유딘씨가 기자 회견을 열고 새로운 사실을 주장, 그건 탐사대의 죽음은 바로 군사 무기 때문이라는 것.그 증거로 유리 유딘은 당시 수사를 맡았던 수사관의 기록 문서에 따르면 1959년 2월 2일 Kholat Syakhl 산에서 소련 정부가 비밀리에 몇가지 군사 무기를 실험한 기록을 알게 되었으며 그 증거로 탐사대원의 피부가 오렌지 색으로 착색된 점과 그리고 의복에서 발견된 방사능 흔적 및 전나무가 불에 탄 흔적이라고 함. 유리 유딘은 이것을 증거로 러시아 정부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묵살. 그로 부터 7일 뒤인 2월 19일 사건 49주기 특집 기사에 노인이 된 유리 유딘은 말하기를 "내가 신에게 질문을 할 기회가 단 한번이라도 주어진다면...""그날 밤에 도대체 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5. 유력한 5번째 학설 1967년에 소설을 쓴 유리 야로보이는 1980 년에 죽었다. 1990년에 구소련이 해체되고서 Anatoly Guschin이란 기자가 경찰의 허가를 얻어 당시 수사기록 원본을 조사해 책을 출판했다. 그러나 원 수사기록 중 몇 페이지는 찢어졌다고 말했다.책 제목은 “국가안보의 대가로 희생된 아홉 생명”이었다. 그리고 “초자연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데 사고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Lev Ivanov 란 경찰이 30년간의 침묵을 깨고 논문을 발표했는데 자기는 당시 사고가 도저히 합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며 “UFO”의 짓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사고 당시 50 km 남쪽 지점을 등반하던 다른 팀이 그날 밤 북쪽 Kholat Syakhl 방향에서 거대한 오렌지 원반을 보았다는 얘기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 물체를 봤다는 사람들은 1959년 2~3월 사이 그 지방에서 여럿이 나왔다. 내 생각; 나는 러시아에서 하이킹 팀을 이끌고 14년간 500 회 이상 러시아 산야를 돌아다녔고 본의 아니게 여러 번(30~40번) 로켓트 포대 등 여러 민감한 군사시설 안을 무단침범했다. 그 시설들은 우리나라 DMZ처럼 철책이 물샐틈 없이 쳐진 게 아니고 엉성한 철조망으로 군데군데 구멍이 있고, 또는 험한 지형을 이용해 경계선을 삼았고 우리는 그런 험한 지형만 찾아다니니 자연히 시설내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때 식당 같은데 가둬 놓고 신분증을 조사 기록하고 내보내며 특히 나같은 외국인에게는 SPY 아니냐고 꼬치꼬치 묻지만 잔인무도하게 패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특히 자국인인 바에야..... 그러면 이 우랄의 경우는 정말 UFO 의 짓이 아닐까? 혹은 히말라야에만 산다는 雪人이 우랄에도 사는가? 아님 곰의 짓이었나? 그럼 오렌지 색과 방사능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