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터 대제와 알라스카 1703년, 코펜하겐 뒷골목에서 백수 신세를 한탄하며, 부두가를 오락가락하던 Vitus Yonassen Bering은 귀가 번뜩하는 노점 술군의 소리를 듣는다. "러시아의 피터 황제가 해군을 창설해서 신분,국적,나이를 안 가리고 수병을 뽑는다"고...(피터는 젊은 시절, 왕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영국 조선소로 건너가노무자로 위장취업하여 조선 기술을 훔쳐 배웠다) "애라 백수신세를 면하려면 배나 타자!" 그리하여 그는 보따리를 싸서 러시아로 향했다. (항상 "백수"가 큰 일을 낸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백수를 우습게 보지말라!) 나중에 그가 유명하게 되자 덴마크인들은 베링을 "덴마크가 낳은 위대한 인물"이라 떠들었지만 기실 베링은 그 뒤로 1715년 딱 한번 덴마크를 방문했을 뿐 러시아에서 러시아 처녀와 결혼하고 죽 살았다. 쫄따구 수병에서 계속 승진하여 함장까지 올라간 그는 1724년 피터대제로 부터 특명을 받는다. "대서양, 인도양을 거치지 않고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라! " 피터가 죽기 넉달전에 한 이 말은 노망난 황제의 헛소리가 아니라, 불란서 과학아카데미, 그리고 라이프니츠의 학설을 거듭거듭 살펴본 피터의 계산된 결단이었다. 그리하여 베링은 "코치"라는 30m짜리 소형 배로(우리나라 판옥선만하다), 또 육로로 캄챠카에 이르러, 데리고 간 기술자들로 배를 건조하여 이를 타고 북상하여, 베링해협의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온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데즈네프라는 모피상인이 비공식적으로 데즈네프 곶까지 진출한 적이 있었다.) 피터의 유명을 이어받은 후대 안나女帝도 베링을 다시 탐험대장으로 임명해 1733년 2차 탐험대를 보낸다. 1741년 베링은 알라스카 연안을 4일 동안 항해했다. 이로서 러시아가 우랄산맥부터 알라스카까지 광대한 땅을 그저 줏어 먹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베링의 초상(생전에 남긴 건 없고 나중 발굴된 유골로 소급해 그렸다)
2)고려, 조선의 무력 1223년, 몽고의 군대가 지금의 러시아 서부인 노브고르드 공국, 키에프 공국에 나타나자, 러시아의 여러 성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1226년 바투가 나타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열흘 이상 버틴 성이 없었다. 딱 한군데 만이 40 일을 버텼는데, 그들은 700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것을 기념한다. 이에 비해 고려는 1231년부터 1270년까지 40 년을 버티며 몽고와 싸웠다. 귀주성 같은 곳은 중앙정부가 항복했는데도 끝까지 버티다가 중앙 정부 관리가 나와 항복하라 설득했다. 성주를 명령불복종으로 목베려 하자 같이 나온 몽고 장수가 “우리한텐 적이지만 당신들에겐 충신인데 왜 베느냐?”고 말렸다. 몽고가 약한 군대를 보냈느냐 그게 아니다. 중국 송나라를 친 군사와 같은 수준을 보냈다. 남송은 오히려 북의 金나라가 방패역할을 했었다. 전쟁을 끝낼 때도 땅 조금 떼어주고(철령 이북) 화친한 나라는 당시에 고려 밖에 없었다. 모두가 완전항복 이었다. 당시 몽고의 지배자 쿠빌라이는 고려가 화친하려 하자 “고려는 왕년에 당태종도 항복 못 시킨 나라인데….”하며 반겼다. 문민우위였던 조선시대에도 이름을 자랑하던 청 나라 팔기군이 러시아 병정들에게 형편없이 깨지자 1654 년, 1658 년 두 차례에 걸쳐 원병을 파병하여 러시아군을 박살내 버렸다. 이 대목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효종이 “북벌계획”을 세워 훈련한 군사들을 누루하치에게 버선발로 항복한 애비(인조) 원수 갚으려고 청나라와 대적할게 아니라 북방으로 진출했다면……? 누루하치는 징기스칸에 버금가는 영웅이다. 아비가 그 앞에 무릎꿇은 게 무슨 수치냐? 청나라와 진짜로 붙었으면 깨지는 건 뻔한 일—평지에서의 싸움은 쪽수가 좌우한다. 우리 군사 수가 중원의 쪽수를 당하겠는가? 반면에 시베리아와 같은 극한지역은 양편 다 보급을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국지전이 될 수 밖에 없다. 국지전에서는 쪽수보다 개인기가 더 무력을 좌우한다. 게다가 당시 원주민인 부랴트족(바이칼 부근), 축치족(이쿠치아), 에벵크족(흑룡강 상류) 등은 우리와 DNA가 같은 형제,사촌이다. 그것은 러시아 동진 당시 그들이 청나라에 보호를 요청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우리에게 극히 호의적이다. 우리가 17세기 중엽에 북진정책을 취했으면 아마 우랄 산맥 동쪽은 지금 다 우리 국토에 편입 되었을지도 모른다.
3. 위대한 지도자는 언제또 다시! 우리나라의 위대한 지도자는 역시 세종대왕일 것이다. 그 창의력! 위민정신! 국토의 확대!
다음은 역대 대통령의 성적표이다. 순 주관적인 평가이니 반대도 많을것이다. 모 싸이트에 올렸더니 역시나 찬반 대동수였다. 점수는 A=5, B=4, C=3, D=2, E=1, F=0 점으로 치고 가중치를 곱했다. 전부 A이면 120 점 만점으로 했고, 이들 점수 합계를 다시 100 점 만점으로 환산했다 항목/가중치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서민생활개선 5, B A B C D B C C (소득,실업감소) 20 25 20 15 10 20 15 15 국가장기계획 4, C A B C D D D D 입안실천 12 20 16 12 8 8 8 8 교육 3, A B D C C C C D 15 12 6 9 9 9 9 6 외교 3, A B B B C B C B 15 12 12 12 9 12 9 12 안보,국방 3, B A B B B B C E 12 15 12 12 12 12 9 3 소통,의사수렴 2, D B D B B B B F 능력 4 8 4 8 8 8 8 0 문화,기술장려 2, C B D D D C D D 6 8 4 4 4 6 4 4 사회질서 2, E B B C B B B D 2 8 8 6 8 8 8 4 총점(120 점 기준) 86 108 82 78 68 83 70 52 총점(100 점 기준) 72 90 68 65 57 69 58 43 해설; 가중치 중 경제를 5로 가장 중시했다. 경제에서 김영삼 전대통령이 D를 맞은 것은 역시 IMF를 막지 못한 때문이다. 교육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D를 맞은 것은 고교평준화를 환원시키지 못한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박 대통령보다 교육점수가 좋은 것은 박 대통령 집권 마지막에 교육정책이 흔들린 때문이다. 외교는 뭐니뭐니 해도 이승만 대통령이 독보적이었고 외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켰다. 이명박 대통령은 안보,국방에서 E를 , 소통,의사수렴 면에서 F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고, 교육 면에서 정체성 상실로 D를 맞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회질서에서 E를 맞은 건, 집권말년 깡패들의 준동을 막지 못했고 부정선거로 얼룩진 때문이다. 총점 면에서 역시 박 정희 전 대통령이 탁월한 성적임은 왈가왈부 할 여지가 없다.
[나도 한마디]
노타이
지욱이글 기다린 보람이있네, 역시 자료화면이나 내용면에서도 많은교훈과 함꼐 수월성이 느껴지네. 다만 좀 더 자주 지욱이의 글을 만날수있으면 좋으련만..,
친구의 마지막 가정 효종의 북벌이 흥미롭네 그려 ! 역대 대통령중 박정희 대통령의 1순위에 동감하네. 21세기 극동의 조그마한 나라 남북이 대치한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 소양은 어느정도 레벨이고 눈높이는 어디이며, 상대적으로 정치인의 수준은 어디인가 싶네. 미래의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하는 걸까
전통과 물태우가 의외로 높게 나왔네. MB가 꼴찌..낙제점..인주가 이 글을 주군한테 보여주면 좋겠는데...지금까지 이 정도로 통찰력 있는 분석을 할만한 인재가 주위에 없었음을 한탄하여 차라리 자기는 백수가 되어 러시아로 떠나고 지욱이더러 자리를 바꾸자 그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