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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林悌, 1549-1587) 본관 나주. 자는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 겸재(謙齋).
대곡(大谷) 성운(成運)의 문인. 1576년(선조 9) 생원시(生員試)·진사시(進士試)에
급제, 1577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했다. 예조정랑(禮曹正郞)과 지제교
(知製敎)를 지내다가 동서(東西)의 당파싸움을 개탄, 명산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보냈다. 당대 명문장가로 명성을 떨쳤으며 시풍(詩風)이 호방하고 명쾌했다.
저서에 화사(花史) 수성지(愁城誌) 임백호집(林白湖集) 부벽루상영록
(浮碧樓觴詠錄)등이 있고 조선 최고의 풍류남아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無語別 (무어별)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가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이라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하고
泣向梨花月 (읍향리화월)이라
말없는 이별
열다섯 아름다운 소녀가
수줍움에 말도 못하고 이별을 하네
돌아와 문 빗장 걸어두고서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자유 분망한 낭만주의적 경향이 잘 드러난 오언절구다.
서로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헤어지고 돌아와서는 빗장 잠그고 하얀 배꽃 사이
달을 보고 혼자 눈물 지으며 남몰래 애태우는 열다섯 처녀의 안타까운 연정이
한폭의 그림인 양 잘도 묘사 되었다. 특히 결구에서 하얀 배꽃의 애상적인
분위기와 그 사이로 애련히 걸려있는 달의 안배는 주인공의 심정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아주 뛰어난 구성이라 할 수 있겠다
莫怪隆冬贈扇杖
爾今年少豈能知
相思半夜胸生火
獨勝炎惹六月時
한겨울에 부채 선물을 괴상히 생각마라
너 아직 나이 어려 모르리라마는
한밤중 그리움에 가슴에서 불이 붙으면
유월 무더위에 비할 바 아니니라
임제(林悌)가 어린 기녀에게 부채에 적어 선물한 칠언절구 한시(詩)...
이에 대한 기녀의 화답시(詩)도 가히 절창이라 할 만하다.
한겨울에 부채 보낸 뜻을 잠시 생각하니
가슴에 타는 불덩이를 끄라고 보내었나
눈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인들 어이하리.
임제가 평양기생 한우와 서로 시조를 주고 받은것이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그가 평양에서 한우란 기생을 만나 술을 마시다 주흥이 도도하여 한우란
기생이름에서 시상을 얻어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지어 불렀다.
한우가(寒雨歌)
북창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가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한우-그 이름을 풀이하면 찬비로 해석된다.술자리에서 오늘은 찬비 만났으니
얼어 잘 것 같다며 한우의 심중을 떠보았다. 재치있게 유머가 담긴 시조노래로
상대방의 심중을 저울질한 것이다. 손님이 정주려는 마음을 눈치 빠르게 알아챈
한우는 임제의 풍유시조에 화답하여 즉석에서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가히 막상막하의 시조 한수를 지어 불렀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참으로 임제의 마음에 따뜻하게 와 닿는 화답시였으리라.
-해동가요(海東歌謠) 청구영언(靑丘永言)
당대의 한량이었던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평안도사로 임명되어 가는 길에
평소에 보고 싶었던 황진이를 찾았는데 이미 고인이 된 뒤라 백호(白湖)는
그녀의 무덤을 찾아가 정중히 제를 올리고 막걸리 한잔을 권하며,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홍안(紅顔)은 어듸두고 백골(白骨)만 무첫는고
잔(盞)자바 권(勸)할 이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하며 노래했고, 그렇게 사모하며 보고 싶어 했던 사람도 한 번 죽으면 잡초가 우거진
무덤에 백골만 묻혔는가 하는 덧없는 인생을 한탄하는 애끓는 심정을 표현했다.
그러나 백호( 白湖) 임제(林梯)는 황진이의 무덤에서 시조를 읊고 치제(致祭)했다 하여
임지에 당도하기도 전에 파직을 당했으며 그후 중앙요직에 다시 복직되었으나
사색당쟁(四色黨爭.)의 벼슬길에 염증을 느껴 스스로 사임하고 야인으로 돌아가
짧고 굵게 살았던 황진이처럼 39세의 젊은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황진이는 북한에서도 제법 괜찮은 대접을 받는 듯하다. 아마도 기생이 천한
노비계급이어서 득을 본 것인가? 양반들의 퇴폐향락을 조장한 반동분자는
아니던가베. 다행히 거기도 풍류를 아는 인사들이 더러 있나부지.
蠶嶺閔亭(잠령민정)
東溟有長鯨 동녁 바다에는 큰 고래 날뛰고
西塞有封豕 서쪽 변방에는 흉악한 멧돼지 내닫는다
江障哭殘兵 강가를 지키는 병사들 처량하고
海徼無堅壘 해안에는 제대로 된 방벽하나 없구나
廟算非良籌 나라의 계책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全軀豈男子 제 몸보신만 생각한다면 어찌 대장부랴!
寒風不再生 찬바람 다시 또 불질 않으니
絶影空垂耳 절영마는 속절없이 귀가 처졌군
誰識衣草人 뉘라서 알랴 베옷 입은 이 사람
雄心日千里 웅심이 하루에도 천 리를 달리는 줄
칼 튕기며 행수대에 오르니 기운이 솟는다
초라한 벼슬자리 내 모습 쓸쓸하여라
찬 가을바다 교룡이 꿈틀대고
구름 깊은 장백산엔 호랑이 득실대네
세상에 태어나 만주 땅을 못 삼키고
어느때 다시 서울로 돌아갈건가
잔 비우고 말 타고 돌아서니
아슬한 저 하늘엔 안개 걷히네
임제가 32살에 평안도 정주땅 원수대에 올라가서 지은 시
호방함과 남아의 기개가 서린 무인다운 시이다.
그밖의 임제의 대표적 한시 몇 수 더....
高唐道中
大風大雪高唐路
一劍一琴千里人
?寒馬病却無賴
嘯志歌懷如有神
鴉啼喬樹暮煙冷
犬哭孤村民戶貧
悠悠忽起故園思
錦水梅花南國春
고당(高唐)길에서
고당으로 가는 길에 큰 바람에
많은 눈 몰아치는데
칼 한 자루 거문고 하나로
천리길을 나섰네.
종은 추워 떨고 말마저 병들어
의지할 데 없건만
휘파람으로 회포 노래하니
신명이 절로 나네.
높은 나무 위 까마귀 울고
저녁연기 싸늘하게 오르는데
개 짓는 외딴 마을에는
가난한 민가뿐이로구나.
유유히 가던 길을 가노라니
고향생각이 불쑥 떠오르네.
금강(錦江)가에 매화가 피어
남쪽에는 봄이 한창이겠지.
元師臺
在摩天嶺 立馬摩天嶺
雲霞 ?曉淸 臺存元師號
客償壯遊情 萬里碧波外
一輪紅日生 鯨 ?敢驕橫
長嘯氣難平
원수대(元帥臺)
마천령 고갯마루 말을 세우니
새벽노을 바야흐로 선명하구나.
원수대 이름 지금까지 남아 있어
나그네 장한 뜻을 펼치고 가노라.
푸른 물결 저멀리 수만리 밖에는
붉은 해가 바퀴같이 솟아오른다.
고래들아 감히 설치지 마라.
휘파람 길게 부니 마음 벅차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백호는 임종하기 전에
구슬피 우는 자식들과 주위사람들에게 이렇게 꾸짖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황제를 칭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예부터 그렇게 부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처럼 누추한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죽는다고 무엇이 그리 슬프단 말이냐?"
林白湖는 氣豪不拘檢이라. 病將死에 諸子悲號하니, 林曰 "四海諸國에
未有不稱帝者이나 獨我邦은 終古不能이라. 生於若此陋邦하니
其死何足惜이리요?"하고 命勿哭하다.
일세의 풍류가객 백호 임제의 묘는 영산강 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중턱에 있다.
임제는 살아서는 당대 제일의 풍류남아로 시대를 앞서간 호방한 삶을 살았으며
죽어서는 누구의 안목이었는지는 몰라도 천하제일의 명당자리에 묻혔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풍수지리학자들과 지관들의 현장학습장소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가장 좋은 곳에서 주위를 살펴보겠노라고 무덤 위로 사람들이 드나 든
흔적이 사진에서 역력한 것을 보니 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누군가 인터넷에 이렇게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을 표시하고 싶다.
"이건 마치 철새들이 한가롭게 무리지어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멋진 사진을
찍겠노라고 돌을 던져 놀란 새들이 날아가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그런
몰지각한 인간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부류다.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을 자랑한다면 더욱 상종 못 할 인간이 아니겠는가?
그렇듯 기본을 지킬 줄도 모르는 인간들이 골라잡은 명당이라는 것이...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호랑이를 사냥했던 고구려의 남자들
그 늠늠했던 기백(氣魄)들은 우리의 몸속에 흐르건만...
구한말 일제가 침략해오던 당시 호랑이사냥군들의 모습인데
종종 그들의 표적은 호랑이가 아니라 남의 땅을 빼앗은 일본놈들의 대갈통이었다.
These guys had an unusual talent. They took perfect aim at a Tiger, pulled the trigger
and amazingly 1000 yards away and off to the side a Japanese soldier would fall off
his horse.The arrogant bureaucrats of the Japanese Military and Political occupiers
probably would have called these native born sons of Korea....., "Insurgents".
별하나...나하나...풍류(風流)는 예나 지금이나...
이러다가 칠랑팔랑 세월 다 가면 남는 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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