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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황량한 벌판을 주름잡는 쭈글쭈글한 반백의 노가다 노인에게 과테말라의 화끈한 화산 밑에서 한가롭게 노는 피둥피둥한 걸레장사 홍안의 소년이 문안드리오. 노인네께서 얼마 전 고국본영 홈피에 진상한 맥빠지는 애절한 사연과 탄식을 들어보니 과연 그 동네는 춥기는 억수다발로 추운 모양입니다그려. 노인네 연세가 아직도 노인 돌격사단 60연대에 편입되시려면 본영 새내기 병졸 정규군대를 한번 더 다녀오시고도 노인 50첩보부대 외국파견 근무를 한 1년간 더 하셔도 될 만큼 세월이 남았는데 그곳 추위에 그토록 몸이 험하게 상하셨다니 참으로 안됐소이다. 날이 추우면 일단 거시기 뿐만 아니라 밥통도 심히 오그라든다는데 주야로 덮어줄 수도 없는 얼굴이야 어찌 쭈글쭈글하게 변하지 않겠소이까? 10년 세월을 그 추운 러시아 땅에서 객지 생활을 하며 주로 한데에서 노상 왔다갔다하는 노가다십장 노릇을 하고 계시다니 그동안 겪은 풍상과 고초가 어떠했겠는지 시방 이곳 수퍼에서도 내다 팔고 있는 오리지날 뻔데기 껍질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미루어 짐작이 가오이다. 다 먹고 살자고 그러는데 그 험한 고생을 하시며 하루 세끼 찬밥이나마 된장국에 말아서 제대로 챙겨드시는지 걱정이 앞서는 군요. 노소불문 동서양을 막론하고 강건한 남정네나 여린 아낙이나 날이 추우면 아궁이마다 더 세게 굼불을 때줘야 몸이 견딘다고 들었소이다 영양가를 찬찬히 살필 겨를도 없이 무조건 열량보충 차원에서 독한 보드카로 허기를 때우지나 않는지 그것도 걱정이외다. 술도 제법 쓸만한 땔감이라 지필때는 몸이 금방 더워지지만 다 때고 나면 오히려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린다고 하오이다. 술 먹고 한데서 자다가 얼어 죽은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노인네가 워낙 술을 좋아하시는 줄 예전에 미처 아는 고로 이 소년이 가장 염려스러운 바가 그것이요. 추위에는 부디 좋은 음식과 기름진 음식을 많이 드시되 천연식품이 아닌 가공식품은 죄다 음식이 아닌 독이 든 쓰레기다 여기시고 주변에서 멀리 치워버리시오. 하기야 짜장면 그릇도 귀한 나라에서 노가다 일을 하면서 육개장 사발면을 가끔 드시는 것이야 어찌 피할 수 있겠소이까? 그것이 밥그릇도 되고 물그릇도 되고 심지어 급할때는 세숫대야 역활도 한다고 들었소이다. 음료수도 사이다, 콜라 같은 탄산음료는 농약이 든 빗물이다 여기시고 매일 조금씩 서서히 마시고 돌아가실 생각은 아예 마시기 바라오. 부득불 생수가 아니면 녹차종류를 상용하시면 좋을 것이외다. 물론 담박고는 진즉에 담박 끊으셨겠지요? 객지에서 객고에 시달리다 보면 객초가 어찌 그립지 않겠소만 노인네 건강엔 이젠 무심초도 마음 모질게 먹고 단념해야 할 것이요. 왕년에 골초 한번 안 해본 사람 어디 있겠소만 이 소년도 그 상사초가 골수에 사무쳐 단칼에 은하수 허리를 자른 후 한동안 중병에 걸려 앓아 누운 적이 있소이다. 노인네가 시방도 아편쟁이처럼 금단현상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금방 내다버린 재떨이나 남의 쓰레기통을 뒤지지는 않겠지요. 하기야 이제 노인네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슨 금욕생활을 하겠냐며 오히려 객기를 부려서도 물론 안 되겠지만 또한 하루아침에 자고 나니 팍삭 늙었다고 너무 한탄도 하지 마시오. 노인네의 그 얼음짱 같은 탄식이 이곳 화산의 열기마저 식혀버려 노상 벌거벗고 사는 이 소년이 감기가 들 것 같소. 그리고 오늘 이 소년이 점잖으신 노인네에게 너무 시건방을 떨어서 노인네 심기를 건드렸다면 정말 죄송스럽지만 부디 노여워하지는 마시오. 노인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 노하는 것이라고 이 소년이 평소 공경하여 마지않는 본영의 어진 노인 박노인이 예전에 이미 누차 강조한 바가 있소이다. 그 노인도 이 소년이 십수 년 전 본영에 근무 당시 여러 차례 효성의 오도방정 라오스 수출건으로 무지 귀찮게 약을 올린 적이 있소만 한번도 역정을 내기는커녕 온갖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이 소년을 위해 쌈짓돈까지 털어 창원 촌구석에서 봐야 할 것은 다 보여 주었오. 어찌 그리 마음통이 크고 따사부리했는지 지금도 그 노인의 넉넉하고 해맑은 미소가 그리워지는 군요. 그 노인도 이제 노년에 이르러 자리보전이나 잘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구려. 하여튼 이쪽 저쪽 노인네 모두 어질 인자, 참을 인자 어느쪽이든 참으로 그 공력이 대단한 것 같소이다. 러시아 노인도 이제껏 그 추운 곳에서 어찌 10년 세월을 그냥 엎어져 있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오. 그러고 보니 이 소년도 여기서 10년째 자빠져 있소만 그쪽 동네와는 노는 물과 가락이 판이하게 다른 것 같소이다. 말씀드리기 우째 디기 송구스럽기도 하오만 이곳은 사시사철 일년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고 한결같이 봄바람만 살랑살랑 불어대는 기가 막힌 쾌적한 기후에다가 높은 산에서는 한랭채소가 자라고 해안 쪽에는 온갖 열대과일이 지천에 널렸소이다. 그밖에 육해공군 풍성한 먹거리들이 시장에 넘쳐나니 이곳에서는 사실 너무 잘 먹어서 탈이외다. 또한 입는 것, 누워 자는 것, 모두 이만하면 임금님도 부럽지 않다고 이 소년은 늘 그리 여기고 살고 있소이다. 요즘 들어 그저 마음을 비우고 작은 일에 충실하며 되도록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살자는 모토로 안방에 노래방까지 설치하고 집안 분위기를 명랑하게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일에 주력하였더니 당장 얼굴피부가 팽팽해지고 볼때기에 살이 피둥피둥 찌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하외다. 확실히 정신건강과 피부미용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 싶으오.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이따가 사진방에 가서 최근 살이 두둑히 오른 이 소년의 볼때기를 직접 만져 보시구려. 이곳 사정이 이러하니 이제 그곳 노인네도 어지간하면 생각을 한번 뒤바꿔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소이다. 노인네가 그 얼어 죽을 놈의 러시아 땅에서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며 맨날 서글픈 망향가로 향수를 달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오? 지난번 편지에서 노인네가 그곳에서 어서 돈푼이나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 양지바른 비탈길에 작은 산채 하나 지어서 텃밭도 가꾸고 조석으로 앞산으로 올라가 뒷산으로 내려오며 유유자적 구름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소? 도대체 10년 세월에 그깢 소박하기 짝이 없는 작은 소원 하나 채워넣을 그 꼴랑 몇 푼을 아직도 모으지 못했단 말이요? 아니면 이제는 작은 산채가 아니라 궁전같은 산성이라도 짓겠다고 목표를 수정한 것이요? 이판저판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 소년이 판단하기에는 노인네가 그곳에는 더 이상 엎어질 이유가 없는 것 같소이다. 그렇게 몇 푼 벌기가 어려우면 뭣 때문에 그 추위에 몸까지 축내면서 그곳에 머문단 말이오? 아니면 혹 돈이 너무 벌려서 그 재미에 푹 빠져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노인네의 탄식처럼 겨우 석 자 지팡이에 의지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진 것은 아니오? 나중에 그 돈 갖고 무슨 큰 별 볼 일이 있다고 그러시오? 그래서야 고향에 돌아가 조석으로 등산은커녕 혼자서 변기에나 제대로 걸터 앉겠소? 자식들에게 재물을 듬뿍 물려 주기보다 나중에 병수발이나 들게 하지 않도록 당장 그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듯 싶소. 그동안 알뜰히 모아둔 돈이 있으면 고향으로 가셔서 원껏 살아보시고 노잣돈 밖에 없으면 지체말고 이곳 소년에게로 오시오. 사람 사는 것이 어디라고 뾰죽한 도리가 있겠냐고 늘 생각했소만 그곳과 이곳은 확실히 다른 것 같소. 여기는 최소한 춥고 배고픈 일은 없으며 따뜻한 날씨 하나만으로도 노인네 건강을 추스리는데는 여기가 명당자린 듯 싶소. 해발 1500M 과테말라시티는 고산지대라 일년내내 봄 밖에 없어 노인네 회춘에도 즉방 도움이 될 것이라 그리 믿으오. 오늘 이 홍안의 소년이 쭈글쭈글한 러시아 노인에게 드릴 말씀은 이제 대충 다 한 것 같소이다. 아무래도 노인네가 이것저것 잘 요량하여 살펴서 결정하시되 조만간 무슨 연통이든지 불이나면 속히 기별하시구려. 나중에 뵙게 되었을 때 부디 노인네 손이 떨려 탁배기 한잔도 거후르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오며 이만 총총. 과테말라에서 소년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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