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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 조갑제 닷컴에 올린글; === 문재인이 “삼전도의 굴욕” 같은 역사의 대 수치 만큼은 당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인조는 조선의 16대 통치자이다. 선조 시절 북인에게 패배한 이래 30년 가까이 권력 맛을 보지 못한 서인들이 작당을 일으켜 회심의 뒤집기에 성공한 소위 인조반정(1623년)에 의해 졸지에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그 직전의 15대 통치자 광해군은 과(過)도 많지만 공(功)도 많은 인물이다. 우리는 그저 광해군이 국제정세에 밝아 흥해가는 후금(뒷 날의 淸)과 명(明) 사이의 중립외교로 안보위기를 초래하지 않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그는 대동법(大同法)을 시범 실시하고, 동의보감을 간행하여 의술을 보급하고 또 고려사,국조보감을 복간하는 한편, 내훈, 삼강행실도 등을 인쇄 보급하는 등, 경제, 문화분야에서도 상당한 치적을 쌓았다. 이는 그가 16년 동안 세자 시절에 겪은 풍부한 국정 경험과 뛰어난 현실감각 덕분이었다. 광해군의 과(過)는 여러 차례의 옥사를 통해 민심이 이반된 것이었다. 게다가 불통(不通)인 점이 박근혜와 비슷하다. 이원익, 이항복, 이덕형 같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이이첨, 정인홍, 유희분 등 3류 인사의 말에는 솔깃했다. 임진왜란의 영웅이자 만고선비 곽재우가 주요 사안마다 상소를 올렸지만 이를 듣지 않았다. 음양술에 빠졌고 김개시(일명 김개똥)란 여자가 등장하여 국정을 농단한 것도 어쩌면 최순실에 농락당한 박근혜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를 뒤집고 서인의 추대로 등장한 인조는 적폐청산을 구호로 내걸고 모든 정책을 '반(反) 광해군'에 두고 국정의 지표로 삼았다. 원래 서인들은 대부분 한미한 자리에 있거나 유생의 신분이 고작이었다. 즉 국정경험이 별로 없었다. 이들을 정부 요직에 대거 기용시키고 벼락 출세를 시켰다. 왕은 자신에게 영합하는 자는 총애하고 거스르는 자는 멀리 했다. 이는 재야세력에 빚을 지고 집권하여 재야에게 요직을 독점시키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비슷하다. '눈물정치'도 비슷하다. 인조는 백성이 전쟁 후에 겪는 굶주림이 있을 때마다, 그리고 포로가 되었던 백성들이 탈출해 오면 붙잡고 눈물을 흘렸지만 사실 집권 27년 동안 서민생활이 나아진 건 하나도 없었다. 도량이 좁아 심양에 인질로 잡혀 있던 세자(봉림대군)를 수시로 의심하고 급기야는 '강빈옥사사건'이란 참혹한 사건을 저질렀다. 강빈은 심양에서 조선인 포로들을 모아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어 포로들에게 나눠주고 더 여유가 생기면 인질 석방을 위한 자금으로 쓰는 등 여걸이자 충신이었는데 이를 시기한 것이었다. 안보에 전혀 눈이 어두워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불러와 백성들이 말할 수 없는 전화(戰禍)의 고통에 시달리게 했다. '패륜'에 있어서도 광해군을 무색케 할 만큼 세자를 죽게 하고, 며느리를 죽이고, 친손자를 둘씩이나 죽였다. 대동법을 폐지하고 균역법을 거부하는 등 내치에도 현실감각이 없어 결국 농민, 노비들이 도망자가 속출하는 등 악순환을 거듭하였다. 적폐청산을 내걸었지만 결국 후세 사가들은 광해군보다도 더 못한 무능한 정권으로 혹평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희대의 수치를 당하였다. 그나마 인조 당시에는 '최명길'이란 명신(名臣)이 있어 간신히 국가 자체는 없어지지 않고 버티었다. 그런데 문재인의 주변에는 그나마도 최명길 같은 인재는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이 '삼전도의 굴욕' 같은 역사의 대 수치만큼은 당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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