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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욱아! 아래 내용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1. 성경을 문언대로 해석하면 근본주의자나 극단주의자가 된다는 견해는 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올바른 성경해석을 위한 방법은 성경해석학이라는 상당히 어려운 분야에 도달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언에 충실한 해석을 해야지 문언과 동떨어진 자의적인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문언의 문자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문법적, 역사적, 교훈적, 상징적, 풍자적, 영적 의미 등을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앞 뒤 문맥과 합리적으로 조화되는 해석을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하겠지. 2. 성경을 문언 그대로 100% 믿고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와 신뢰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소위 이상과 현실의 타협을 불가피하게 보고 성경의 말씀을 존중하되 과학계의 주장을 더욱 신봉하는 적당주의 신앙은 불신과도 같다. 3. 성경은 진리에 근거하므로 과학과 배치되지 않는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과학계의 주장, 학설과는 상충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이 지상에 수십만 년, 혹은 수백만 년 동안 존재해 왔다는 과학계의 상식은 아직도 입증되지 않은 무신론적 진화론과 유물론적 가설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4. 성경은 고고학적 자료나 과학적 자료에 의해 그 진실성과 신빙성이 좌지우지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세상이 모두 변해도 성경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라는 것을 믿는다면 인간의 경험이나 이론, 과학적 정보, 역사적 자료로 성경의 진위여부를 가리기 보다는 성경으로 그것들을 확정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5. 사실상 신빙성 있는 인간의 역사는 성서상의 인간창조 시기인 BC 4026년 보다 결코 소급하지 않는다. 저명한 과학자인 로버트 D. 윌슨의 성서 구약에 대한 과학적 조사 (A Scientific Investigation of the Old Testament)에서 "연대 및 지리에 관련된 진술은 현대과학과 조화를 이루는 면에 있어서 다른 어떤 고대문헌들이 알려주는 것보다 성서가 더 정확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했다. 6. 흔히 고고학적 유물발굴에 따른 연대측정방법으로 사용하는 방사성 탄소(C- 14) 측정기술에 근거한 연대산정법에는 분명한 모순적 오류와 한계가 있다. 과학지 1959년 12월 11일자 1630면에는 C -14의 측정법은 더는 믿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그 실례로 이라크 북동부의 선사시대 마을 야르모에 대한 11회의 측정에서 6,000년의 차이가 났는데 다른 고고학적 증거에 의하면 이 마을은 사람이 거주한 기간이 500년 이상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1976년 신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서는 탄소 C - 14 측정법에 근거한 연대는 전통적인 역사가들이 원하는 정확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7. 베링해협이 바다가 아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시아인들이 걸어서 알래스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주장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서해안이 원래 지금보다 7m 가량 낮았다는 연구발표가 있으며 오끼나와 인근에서 발견된 해저 피라밋 유적들을 고려해보면 BC 2370년에 발생한 대홍수로 인한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은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8. BC 4026년 아담창조부터 BC 2370년 대홍수 이전에 살았던 인간의 유적이 발굴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갑작스런 대홍수로 인해 지구는 급격한 기후변화, 지층의 대격변을 겪게 됨으로써 산맥에서도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등 지구 전역의 암석층, 화석층이 심히 교란되었고 대홍수 이전의 유물에 대한 연대측정과 관련한 과학계 및 역사학계의 발표는 어느 것이나 다분히 추측일 수밖에 없으며 확실한 연대를 지지하는 증거는 현재 전무한 실정이다. 9. 고고학자들이 청동기, 철기시대와 함께 도래한 역사시대의 유물들, 설형문자 명문이 새겨진 수만 개의 점토판, 서판, 원통비문, 기념비를 발굴했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신화로 가득찬 신들과 통치자들을 찬양하고 터무니없이 과장된 무용담과 지극히 사사로운 매매계약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상업문서로 구성되어 있어 정확한 연대를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다. 세속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이 되었던 수메르 아카드 왕 명부로 알려진 설형문자 고대 문헌에서는 "아를림이 왕권을 갖고 하늘에서 내려와 애리두에 도읍하여 28,800년을 통치하였고 그 뒤를 이어 알라가르는 36,000년을 통치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이집트 문명의 고왕국부터 신왕국까지 왕들과 그 치세에 관한 명부가 나오는 토리노 파피루스와 아주 단편적인 것으로 돌에 새긴 명문들이 있으며 현대 역사가들은 BC 3세기의 이집트 사제인 마네토의 저술물에 근거하여 이집트 군주들의 치세를 30개 왕조로 분류하여 연대순으로 배열하여 그 시대를 BC 3,000년 경으로 소급하고 있다. 역사학자 W. G. 워덜은 "마네토의 저술이 위조되었거나 와전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애초부터 많은 오류가 있었다. 왕들의 이름과 순서, 통치기간이 다른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이치에 맞지 않다." 또한 T. 니클린의 '이집트 연대기 연구' 에서는 "아마도 여러명의 이집트 왕들이 여러곳에서 통치했을 것이다. 따라서 왕들이 연속해서 왕위를 차지한 것으로 서술하면 그들의 통치기간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10. 중국인들이 BC 3,000 - 5,000년 경이라고 주장하는 황하문명도 실은 BC 2,000 - 1,800년 경에 시작한 삼황오제의 신화를 필두로 하, 상(은), 주나라,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최초의 통일국가 진, 한으로 이어지는데 은나라 은허에서 발굴된 갑골문자가 새겨진 뼈 유물은 BC1,200 - 1050년 경의 것이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자 중에는 조상들의 대홍수의 경험이 글자로 표현된 것이 부지기수다. 11. 고조선의 개국이 BC 2,333년이라고 삼국유사 위지전에서 전하는 바 나의 생각으로는 노아가 가족들을 이끌고 터키 아라랏산을 내려와서 키르키즈스탄 칸탱그리봉을 잠시 들리고 계속 중국대륙을 열나게 동진하여 마침내 한반도 아사달 평양에 이르러 개국을 선포하였다고 가정하더라도 불과 36년의 기간은 너무 짧은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고조선이 과연 BC 2,333년에 개국을 한 것이 맞는지.. 요거를 먼저 검토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끝) 봉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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