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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명분으로 초연히 목숨을 불사르고 敵傀의 흉부에 寸鐵을 꽂는 그들은 누구인가? 한 자루의 비수를 품에 안고 적중으로 잠입해 적의 심장을 찌른 뒤 車裂형을 당하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촌음의 동요도 없이 오로지 목적만을 위해 나아가는 超人인가? 그들은 감정이 없는가? 아니면 그들도 가족과 연인에 대한 애틋한 목마름으로 고민하는가? 똑 같은 일을 저지르고 어떻게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히고 아니면 義士로 역사에 길이 추앙을 받는가? 아니면 누구 말대로 義士와 테러리스트는 종아 한 장 차이이며, 시각을 어느 편에서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일 뿐인가? 아니다 테러리스트와 의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국무부는, "테러리즘은 준국가 단체 혹은 국가의 비밀 요원이 다수의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비전투원을 공격대상으로 하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정치적 폭력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CIA는, "테러리즘은 개인 혹은 단체가 기존의 정부에 대항하거나 혹은 대항하기 위해서든지 간에 직접적인 희생자들보다 더욱 광범위한 대중들에게 심리적 충격 혹은 위협을 가함으로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폭력의 사용에 대한 협박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1986년에 정의하기를 "테러리즘은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적 목적 달성을 위해 정부 혹은 사회에 대한 위압 혹은 협박의 수단으로 개인 혹은 재산에 대해 비합법적인 힘 혹은 폭력을 사용하거나 비합법적인 힘 혹은 폭력의 사용에 대한 협박을 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국가내의 정의도 중구난방이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미국이야말로 “테러의 元祖”라고 비아냥거린다. 테러리스트나 의사나 목적이 분명한, 확신에 찬 동기를 가진 점은 같다. 전쟁, 합법적 제도 기타 다른 수단으로는 도저히 목적을 이룰 수 없는, 무력의 비대칭 상태에서 비상수단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점도 같다. 그러나 제일 큰 차이 점은 의거는 선량한 다수를 다치지 않도록 애쓰는 반면, 테러는 목적을 위해서는 무차별한 폭력수단을 쓴다는 것이다. 또 행위자의 과거 행적을 보고 소급적으로 판단키도 한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뒤 “나는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정당화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혁대가 너무 헤지고 시계가 너무 고물이어 대통령인 줄 몰랐다”는 검시 의사의 말을 듣고 울컥하는 반면, 김재규의 첩 생일에 금반지가 “한 가마니”가 들어왔다는 말에 분노한다. 그래서 김재규는 절대 義士란 말을 들을 수 없다. 이제 역사상 유명한 사례들을 들어보자! 1.易水여 말해다오---형가(荊軻) BC 227년 중국 북경 부근 風蕭蕭兮易水寒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易水)는 차가운데 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探虎穴兮入蛟宮 호랑이 굴을 찾음이여 이무기 궁으로 들어가네 仰天噓氣成白虹 하늘을 우러러 외치니 흰 무지개가 서도다! 이는 진시황을 암살하러 서부인(徐夫人)이라는 예리한 보검(100금의 황금을 주고 샀다한다)을 품고 강을 건느기 직전 형가가 읊은 시다. 그는 거사에는 실패했지만 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실려 2천년 동안 이름을 전한다. 나는 형가의 스토리를 읽고 번오기((樊於期))란 사람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 번오기는 형가가 " 원컨대, 장군의 목을 얻어 진왕에게 바치면 진왕은 틀림없이 나의 접견을 허락할 것이오.”란 말을 듣고는 스스로 자기의 목을 쳐서 죽었는데, 원래 진나라의 장군으로 진시황을 몰아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망명하여 연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형가는 그의 목과 진시황이 탐내던 땅 독항이라는 땅을 바치는 의식에 필요한 지적도를 들고 진시황 앞에 설 수 있었다. (진시황 병마용 사진)
2. 브루투스 너도냐? ;브루투스, BC 44년 3월 15일 로마 그날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마르스 광장에 있는 폼페이우스 극장을 지날 때 때, 원로원 의원인 루키우스 틸리우스 킴베르가 추방당한 자신의 형제를 귀환시켜달라며 청원을 했고 일단의 음모자들이 카이사르를 둘러쌌으며 킴베르는 그의 어깨를 잡았고 카스카란 자가 단검을 빼내들어 단번에 독재관의 목을 내리찔렀다. 카이사르는 재빨리 뒤돌아보며 팔로 카스카를 잡고 " 이 천한 자야, 무슨 짓이냐?"라고 말했다. 겁을 먹은 카스카는 "동지들, 도와주시오”라고 외쳤으며 순식간에 브루투스를 비롯한 모든 음모자들이 시저를 공격하였다. 카이사르는 도망치려 하였으나, 피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으며 주랑 현관 아랫 계단에 무방비로 쓰러지자, 암살자들은 그를 계속 찔러댔다. 카이사르를 살해하는 데 60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가담하였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23번 칼에 찔렸으며 암살자들 가운데 그가 옥타비아누스에 이어 제 2번 상속자로 지명한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그들에게 가담한 것을 보고, "브루투스, 너도냐?"(Et tu, Brute?)라 말하고 저항을 포기, 망토로 얼굴을 가렸다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나오는 대사에서 나온 이 말은 그 뒤 배신자에게 당하는 인물이 내뱉는 대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마 박정희도 김재규를 향해 “김재규 너도냐?”라고 했으리라.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카이사르가 살해당한 뒤에 브루투스와 그의 일당은 카피톨리누스 언덕으로 나아가 도시를 향해 "로마 사람들이여, 우리는 다시 자유로워졌다!"고 외쳤다고 한다. 암살 다음날,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들을 상대로 암살의 정당성을 연설했으며, “나는 시저가 미워서 죽인게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해서 죽였다”고 했다. 이 말도 그 뒤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로마 군중들은 시저의 처참한 죽음에 동정하였고 결국 브루투스는 그리스로 달아나 안토니우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 자살했다.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어머니에게 보내졌다. 민중들이 최고 권력자들에게 불만으로 충만했더라도 그의 죽음이 처참하면 금방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것도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박 통의 죽음, 노무현의 죽음도 마찬가지….. (아래
그림; 시저의 죽음) 3. 그림으로 더 유명한 “마라의 죽음” ;샤를롯트 코르테, 1793년 7월 13일, 프랑스 파리 마라-그의 본 직업은 의사였다. 그는 의사직을 그만둔 그는 1780년 〈형법제정 시안 Plan de législation criminelle〉을 출판,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것으로 낙인찍혀 곧바로 프랑스 당국의 탄압을 받았으며 몽테스키외와 장자크 루소 같은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비판자들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미국혁명 지도자 벤저민 프랭클린과 편지를 나누었다. 1789년 9월 그는 〈아미 뒤 푀플 L'Ami du Peuple〉('국민의 벗'이라는 뜻)이라는 신문의 편집일을 맡으면서 가장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정책의 유력한 대변자로 떠올랐다. 그는 귀족계층이 혁명을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에 대해 미리 손을 써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1790년 7월에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500~600명의 목을 잘라야 여러분의 휴식과 자유와 행복이 보장될 것이다. 거짓된 인간애가 여러분의 팔을 붙잡고 여러분의 주먹을 멈추게 하고 있다. 그때문에 수백 만의 여러분 형제들이 목숨을 잃을 텐데도 말이다." 그는 파리 민중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곧 국민공회에서 유력한 인물이 되었고 산악당, 즉 급진파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온건파인 지롱드당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7월 13일 노르망디 출신의 지롱드당 지지자인 젊은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가 목욕중인 마라를 찾았다. 마라는 피부명이 있어 자주 목욕을 했으며 목욕탕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라는 며칠 전 그녀로 부터 “마라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편지를 받은 터라 경비원에게 그녀를 들여보내게 했고 그녀는 욕조 속에 있던 마라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향년 스물 다섯이었던 코르데는 사건 직후 체포되어 나흘 후인 7월 17일 목이 잘렸다. 자코뱅 당의 거두였던 마라가 죽은 후, 그 유명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막을 올린다. 반대파를 누르고 득세하던 바로 그 순간에 마라는 극적인 죽음을 당함으로써 민중의 대의(大義)를 위한 순교자로 평가 받았다. 사람들은 프랑스의 21개 소도시에 그의 이름을 붙였으며 나중에 소련 사람들도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소련 해군 최초의 전함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4. 만용으로 폭사한 황제; 페로프스카야, 1881년 페테르부르그 농노를 해방시켰던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는 '해방 황제'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의 진심은 비스마르크에게 한"황제의 관은 내게 권력의 달콤함을 주었소. 이 관을 잃는 것은 나의 국민과 민족의 재난을 의미하는 거요."란 말처럼 전제군주의 탈을 바꾼 게 아니었다. 상황이 어느정도 좋아졌다고 생각한 그는 더 이상의 개혁을 거부했고 막 싹트고 있는 악의 유혹즉 개혁에서 러시아인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이에 한발 앞선 개혁을 원하는 이들을 최고치안위원회를 통해 공격함으로써 유혈 진압했다. 이에 비밀결사인 인민의 의지당은 1879년 8월, 알렉산드르2세에게 사형을 언도한 뒤 전문 암살단을 조직해 알렉산드르 2세를 살해하려 했지만 계획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1881년 3월1일 인민의 의지파는 다시 한번 암살을 계획했다. 주모자인 그리네비치, 젤라보프와 공모한 페로프스카야는 전 황제 니콜라이1세의 대신이었던 L.A. 페로프스키 백작의 딸이자, 알렉산드르1세의 대신이었던 W.A. 페로프스키 백작의 조카였다. 황제의 마차가 겨울궁전에서 나오자 매복하고 있던 암살자들은 첫 번째 폭탄을 던졌다. 폭탄으로 황제의 마차는 산산이 부서졌지만 알렉산드르2세는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군주로서의 위엄을 잃고 싶지 않았던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근위대의 부상을 살피며 그들을 위로하며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때 두번째 폭탄이 날아왔고 알렉산더2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암살자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황제의 나이 63세였다. (아래사진;알렉산더 2세가 폭사한 자리에 세워진 사원-일명 피의 사원
5. 동생에 의해 완성된 의거; 알렉산드르 율리아노프, ; 1887년, 페떼르부르그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한 인민주의자들은 암살에 성공하자 곧바로 민중들의 지지가 확산되고 혁명이 시작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예상은 크게 빗나갔으며 민중들은 혁명을 일으켜 주지 않았다. 인민주의자들은 2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첫째는 정치적 자유 였고, 둘째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것이었다. 당시 제정러시아는 농업국가 였고 인구의 80%가량이 농민이었기에 그들의 이상은 농촌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체제 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농민들을 일깨우기 위해 농민 속으로 라는 '브나로드 운동'을 주도했는데 무지했던 당시 러시아 농민들은 인민주의자들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 보았고 오히려 그들을 경찰에게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인민주의자들은 다시 황제를 직접 공격하기로 마음 먹었으며 혁명적 테러리즘이 시작된다. 얼마 후인 1887년, 알렉산드르 3세를 암살할 계획이 인민주의자들에게 짜여졌으나 이것이 비밀경찰들에게 발각, 체포, 재판을 받게 되었다. 아버지가 살해 당했기에 아들이었던 알렉산드르 3세는 반체제 인사를 진압할 광범위한 비밀 경찰을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들 가담한 인물은 재판과정에서 모두 풀이 죽어 있었으나 유독 한 명만은 자기의 범행을 시인하고 전제군주의 모순점을 통박하였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드르 일리치 율리야노프다. 그리고 이 모습을 방청석에서 바라보며 “형의 유지”를 받들겠노라고 맹세한 동생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저 유명한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본명;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이다. 정확히 30 년 뒤 1917년 마침내 레닌은 과도정부를 전복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수립한다.
(레닌의 아버지-교장-와 가족사진) 6. 하얼빈 역의 쾌거; 안중근,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 전세계가 화들짝 놀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678 번 글에서 봉영거사가 동영상을 잘 정리해 놓았다. 당시 중국의 국가 주석 이었던 원세개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듣고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찬양 하였다. 안중근 의사 만 (安重根義士輓)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圓生非丈夫 身在三韓名萬國 生無百世死千秋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끝났구려 죽을 땅에서 살려는 것은 장부가 아니고말고 몸은 한국에 있어도 세계에 이름 떨쳤소 살아선 백 살이 없는데 죽어서 천 년을 가오리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 사살에 사용한 권총은 벨기에 제(製) 브로우닝이다. 이 권총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사업가이자 독립운동집단의 거두 최재형이 지원해 줬으며 거사 전 숙식도 제공했다. 그는 후에 일본군에게 피살됐다. 최재형은 권총 3정과 필요한 경비를 제공했는데, 브라우닝 M1900 2정과 다른 한 정의 리볼버였다. 브라우닝은 미국인 존 모세 브라우닝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만든 것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사격술은 안 의사를 조사하고 기소한 미조부찌(溝淵孝雄) 검찰관의 논고문에 “피고는 권총을 다루는 데 노련한 자로, 빗나간 총알이 한 발도 없었다.”고 한 데서 알 수 있을 정도로 출중했다. 뒤에 이등박문의 시신에서 수거된 실탄은 탄두가 십자형으로 금이 파여져 있던 ‘덤덤탄(dumdum bullet)’이었다. 덤덤탄은 인체나 동물의 몸에 명중하면 상처가 크게 나도록 특수 제작된 작은 총탄이다. 19세기 영국이 식민지 인도의 내란 진압용으로 인도의 공업도시 덤덤에 있는 무기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덤덤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탄두 끝에 구멍을 뚫고, 탄알의 외피에 홈을 길게 파서 쉽게 찢어지도록 만들었다. 탄알이 명중하면 보통탄처럼 관통하지 않고 탄체(彈體) 내의 부드러운 납이 흘러나와 인체 내에 퍼지므로, 상처 부위를 복잡하게 만들어 골절시키거나 근육 또는 내장에 손상을 주어 사망률을 높이며 회복을 지연시킨다. 안중근 의사는 그 날 대단한 속사(速射)를 했다. 군중 사이에서 저격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재빠르게 제압해 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주변에는 일반인도 아닌 잘 훈련된 군인들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압당하기 전 이렇게 빠르게 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대단하다. 더구나 안 의사는 두 손 파지(把持)가 아닌 한 손 파지를 하고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한손 파지의 지향사격으로 이 같은 명중률을 얻은 안중근의 사격 솜씨가 얼마만큼 좋았는지 짐작할 만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사용했던 총과 동일형 브라우닝 7.65mm 구경)
7. 사라예보의 총성; 가브리엘로 프린체프, 1914년 6.28, 사라예보 1908년 터키의 정치적 혼란을 틈탄 오스트리아는 베를린조약으로 관리하고 있던 Bosnia와 Herzegovina를 합병하였다. 이 땅은 전부터 Serbia가 범슬라브주의의 일환인 大세르비아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탐내고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 대한 세르비아의 증오를 격화시키게 되었다. 그후 2차 발칸전쟁이 발생하였는데 세르비아와 루마니아도 그 영토를 확장하였고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의 영토확장을 저지하려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세르비아가 Albania를 병합하려는 것은 막았다. 이리하여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적대감정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육군 대훈련을 열병했다. 그 행사를 끝내고 황태자는 예정을 변경하여, 그 날 오전에 있었던 폭탄 테러로 부상당한 수행원들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정이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통보 받지 못한 운전사는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운전사가 오픈카를 정지시킨 순간 그곳에 죽음의 사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길 오른편 3m도 채 안 되는 곳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가브리엘로 프린체프라는 거리 모퉁이에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권총으로 황태자 부부를 향해 두 발 발사했다. 부상당한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총독은 다른 다리로 가라고 운전자에게 명령하였다. 그 순간 소피아(오스트리아 황태자비)가 황태자의 가슴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황태자는 반 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누구도 황태자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갑자기 황태자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황태자는 목에 관통상을 입었다. 덜컥 허리를 구부리고 무너지듯 쓰러져 버렸다. 1914년 6월 28일 맑게 갠 날이었다. 그 날은 황태자 부부의 열 네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이 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정부가 암살의 배후라고 믿고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전쟁이 시작되자 프랑스, 러시아, 영국은 세르비아를 지원해 연합국을 형성했고,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독일로 구성된 동맹국이 대항했다. 다른 국가들도 잇달아 연합국이나 동맹국에 가담했다. 전쟁동안 군인들 가운데 1000만명이 죽고, 2100만명 정도가 부상당했다 세르비아 청년이 사용한 권총이 안중근 의사가 사용한 브라우닝 M-1900형 권총이었다. 강자인 열강제국은 이 사건을 테러라고 기록하지만, 약소국의 입장에서는 그는 義士였고 영웅이었다. 5년 차이로 일어난 이 사건! 혹시 가브리엘로는 안중근 의사를 벤치마킹한 건 아닐까…………
…
8. 홍구공원을 울린 拓彈; 윤 봉길,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윤봉길 의사 의거도 봉영거사가 678번 글에서 잘 정리해 놓았으므로 여기선 모두 약하고 다만 윤의사가 던진 도시락 폭탄, 물병폭탄을 누가 제조하였는가에 대해 중국인이란 설이 있는데, 님 웨일즈 著, 아리랑에 보면 폭탄 제조자는 독일인이라고 한다. 의사가 중국 상해로 건너가 애국단에 가입 하기 전에도, 19세 때 길에서 글을 몰라 아버지의 무덤을 못 찾는 무식한 청년을 보고, 자기 집 사랑방에서 야학을 열어 농민들을 가르쳤으며 22세 때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심어 주고 근면과 협동을 가르친 것을 보면 본래부터 대단한 의협심을 가진 장부 였슴을 증명한다. 9. 테러의 전형 9.11.; 알카에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백주에 가미가제식 물귀신작전으로 뉴욕의 상징 쌍둥이 빌딩을 불기둥으로 주저 앉힌 이슬람 전사들! 그들은 과연 지하드를 행한 전사로서 죽어서 술이 물처럼 흐르는 강에서 일곱 처녀의 시중을 받고 있을까? 그러나 그들을 의사로 추앙할 후세 사가는 없다. 그들이 무고한 서민 3000 명을 죽인 때문이다. 국경은, 그리고 정부는 정치권력이 임의로 그어놓은 울타리이다. 울타리 너머에 산다고, 강 건너에 산다고 적군 취급하면 이 지구는 결국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강북에 사는 사람이니 강남에 사는 사람을 죽여도 죄가 안 된다고 우길 수는 없다. 스스로의 자식이 귀하면 남의 아들 딸도 귀하다. 한 때 이슬람은 기독교 아이들을 잡아다 팔고, 기독교는 피부가 다른 아이들을 판 적도 있었다. 그걸 지금 되풀이 하면 인류에게는 진보도 희망도 없을 것이다. 이들은 명명백백한 테러리스트였다.
10 그외의 의거와 테러 1926 년 한국인 박열과 그의 애인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 천황과 왕세자 등을 폭탄으로 암살하기로 모의했다는 혐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아나키스트 모임인 불령사(不逞社)의 회원이었다. 김원봉의 의열단도 맹활약을 했다. 의열단은 七可殺이라 하여 처단대상을 명확히 하였는데, ① 조선총독 이하 고관 ② 군부 수뇌 ③ 대만 총독 ④ 매국노 ⑤ 친일파 거두 ⑥ 적의 밀정 ⑦ 반민족적 귀족 및 대지주로 한정했다. 다음은 그들의 행동규약인 공약십조이다. 1).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키로 함.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身命)을 희생하기로 함.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야 단원이 됨. 4)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團圓)의 의(義)에 급(急)히 함. 5) 의백(義伯)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6) 언제 어디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함. 7) 언제 어디서나 초회(招會)에 반드시 응함. 8)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團義)에 진(盡)함. 9) 하나가 아홉을 위해 하나를 위해 헌신함. 10) 단의(團義)에 배반한 자는 처살함. 11. 巨惡을 제거할 제 2의 안중근은? 파출소습격사건을 과대포장 해 권력을 장악하고, 무익한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아비는 이미 죽었으니 그만이라 쳐도, 자신의 야욕을 위해 백만 동포를 굶겨 죽이고도 아랑곳 않는 그의 아들, 다시 손자에까지 권력 대물림을 위해 광분하는 김씨 일가는 재론의 여지없는, 짜르시대의 러시아보다 더 참혹한 전제군주국의 폭군이다. 이들에게 정의의 한방을 날려 巨惡을 무너뜨릴 의사가 나온다면 그는 길이 靑史에 남을 민족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과연 나타날 것인가? 로빈후드 요즘 북한에선 내 영화 인기가 폭발이라는데,,, 심지어 ‘백성을 못살게 구는 머저리 바보 왕을 죽여라’라고 하는 내 만화 영화 주제가를 애들은 물론 대학생들도 즐겨 부른단다 2011-07-13 오전 2:23:00 x -------------------------------------------------------------------------------- 노타이 지욱거사의 열혈팬이라서 그런지 지욱거사의 글은 모두가 다 좋으네. 아무렇게나 쓴 글 같은데도 기승전결이 분명하고, 재미에 치우치는듯 하면서도 많은 교양과 지식이 함축되어 있고.., 나중 지욱거사 선집 발간을 꿈꿔보며.. 2011-07-11 오후 3:43:00 x -------------------------------------------------------------------------------- 타키투스 정일이의 자연적 수명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뒤 쪼개질 북한 땅이 문제... 2011-07-06 오전 8:14:00 x -------------------------------------------------------------------------------- 봉영 지욱아! 니가 함 해보마 어떻겠노? 식량지원 해준다 카고 시베리아 순록 오만 마리쯤 몰고가면 김정일이가 반겨줄 텐데.. 러시아 말에도 능통하니 푸틴 보좌관으로 따라가든가..뜻이 있음 연락해라~ 브라우닝 권총은 내가 보내마. 2011-07-06 오전 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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