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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소리(濤鳴)
이 글은 2007년 8월 '파도소리' 題下로 동기회 홈피에 올렸던 글입니다.
오늘 아침 한국 뉴스를 보니 '살인적 폭염'이란 제하로 대구지방을 중심으로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전국적으로 찜질방과 같은 열대야 늦더위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짜증스런 모습들을 무슨 대단한 구경거리나 되는지 신명나게 보도하였는데 아마도 방송국 스튜디오는 엄청 시원했던 모양이다. 금년 여름은 월복이 끼어있어서 유난히 더위가 오래 갈 것이라더니 역시 옛사람들의 혜안에 그저 탄복할 따름이고 친구 도명(濤鳴)이 어저께 보내준 편지에서도 푹푹 찌는 대구분지의 찜통더위가 사람이 얼마나 견딜 수 있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는 표현이 참으로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대구의 그런 극성스런 기후 탓으로 사람들도 그렇게 화끈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어딜 가나 기(氣)가 살아서 시끌벅쩍 요란맞은지도 모를 일이다. 대구사람들이 보통 점잖게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아도 다른 곳 사람들은 꼭 대판 싸우는 줄 알고 옆에서 말리려 드는 경우를 나도 종종 경험하곤 한다. 대구사람들의 목청이 유별나게 커서 한 집에서 무슨 집들이를 하면 온 동네 개들이 다 숨어버린다는 일화도 있었지만 (짖어봐야 감당이 불감당이라...) 하도 날씨가 흉악해서 어렸을 때부터 일단 살려달라고 크게 울고 봐야 할 대구아기들의 성대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문가의 농담도 있었으니... 어쨋든 도명이 또한 그저께 세계지도를 살펴보니 과테말라가 베트남과 같은 북위 15도 선상에 위치한 열대지방이라 당연히 더워도 너무 심하게 덥지 않겠느냐며 나한테 감히 한국 더위를 얘기하는 것이 무척 신경이 쓰인다며 대단히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먼저 정중한 양해부터 구하였다. 과연 류대인다운 풍모로서 아무리 친한 친구간에도 지녀야 할 예의범절의 진수를 보여준 것까지는 좋은데 그동안 내가 열나게 경고홈피에 올려놓은 글들을 도통 읽어보지 않았구나 싶어 혼자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기야 그토록 공사다망한 가운데서도 멀리 외국에 나가 외롭게 살고 있는 친구의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염려가 되어 세 차례나 위로의 편지와 함께 필요한 주의사항 및 권고의 말씀을 자상하게도 적어 보낼 만큼 대자대비하시고 사통팔달하신 부처님을 닮은 도명이 한낱 손바닥만도 못한 글마당에서 무슨 선지자가 날 것으로 기대하며 기웃거릴 겨를이 있겠는가? 이곳 과테말라시티는 몇 차례 밝힌 바와 같이 해발 1,500m에 위치한 고산지방 특유의 상춘(常春)의 기후로서 일 년 내내 춥지도 덥지도 않기 때문에 나처럼 가난하고 게으른 사람이 살기에는 그냥 딱!~ 소리가 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가까운 나라인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가 해발 1,000m 쯤 된다고 하는데 그곳 기후가 세계제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아직 안 가봐서 모르겠고 여기도 결코 그곳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사람 특히 대구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이곳 기후가 오히려
서예가 송백 김기열 선생의 글씨 壽山福海 長生和樂
사람들에게 그다지 좋은 것이 못 된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말이 아닌가 싶다. 허구한 날 기후가 온화하고 맨날 한결같으니 계절마다 독특한 색깔과 감각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마치 고정되어버린 듯한 똑같은 풍경의 그림 속에서 세월가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삶은 아니라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들었다. 나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처럼 그냥 미지근한 물에 들어앉아 단순히 때만 미는 목욕이 아니라 앗 뜨거라 싶은 고온의 찜질방에서 한 바가지 땀을 빼고난 뒤에도 하이고 추부라 싶을 정도로 수차례 냉탕을 들락거려야 겨우 목욕 한번 제대로 했구나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도 이곳의 사시사철 똑같은 기후가 엄청 지겨운 것이고 세월아 네월아 늘어지다 보면 정신마저 흐리멍텅할 때가 많다. 이곳 사람들이 도처에 화산이 많아 지천에 널려있는 양질의 유황온천을 두고도 그다지 애용하지 않는 것도 다 이런 기후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뼈골까지 스며드는 추위에 오금을 저리며 달달 떨어본 역사가 없는 사람들이 어찌 따끈따끈한 온천의 끝내주는 즐거음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있겠는가? 여기 사는 일만여 한국교민들은 휴일이나 주말에 틈만 나면 피서가 아니라 영서(迎暑)를 가기 위하여 사사오입(?) 가족단위로 해안으로 몰려들 다닌다. 오리지날 열대야를 만끽하며 한바탕 비지땀을 흘리고 돌아오는 길에 또 온천에 들러 한번 더 땀을 빼면서 시원한 냉수로 사워를 하고 나야 직성들이 풀린다. 한국인 특유의 억척같은 생활력과 정신력 그리고 강하고 매운 근성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현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모두들 씩씩하게 잘도 적응해나가는 모습들을 보면 역시 우리 민족이 대단한 민족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막바지 한국 무더위에 지칠 대로 지쳐 있을 우리 친구들에게 피서가 아니라 영서(迎暑)를 즐겨보라면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분개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옛말을 굳이 인용할 필요도 없이 이제는 그래 봤자 불과 보름 정도도 남지 않았을 금년 여름 더위가 한편으로 얼마나 소중하고 귀(貴)한 것인지 오히려 한번 더 안아주고 보듬어줄 필요는 없을까? 사계절의 그 뚜렷한 기후 덕분에 오늘날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유구한 역사 속의 단일민족으로서 오로지 은근과 끈기의 정신력 하나로 지구 한 모퉁이에 떡 버티고 서서 세차게 거름을 주고 있는 게 아니겠는지? 한국사람들이 다른 것은 다 속여도 계절과 나이만은 못 속인다고 했듯이 이제 금새 자고 나면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서 낙엽이 온통 천산홍엽... 우리 친구들은 또 묻지마 단풍놀이 가느라고 바쁠 테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그단새 시베리아까지 댕겨온 겨울바람을 만나 하이고 마이 컸네 하며 옷깃을 세워 늘리고 애꿎은 번데기 주름을 잡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그때는 지금 더위가 얼마나 삼삼하게 그리울꼬? 잠시라도 한번 생각들 해보시라고...
아티스트 한영수 화백의 부채그림 모자도(母子圖)
앞으로 한국겨울의 그 볼따구가 얼얼하고 매서운 추위와 푸른 소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내려앉은 하얀 함박눈이 또 얼마나 사람들을 웅크리게 할지... 그것도 여기 과테말라에서는 도통 긔경도 할 수 없는 참으로 귀하고도 귀한 우리 한국 사람들의 소중한 자연자산임을 결코 잊지 마시라. 열대에 살면서도 열대야를 찾아 헤매는가 하면 열대에 살지 않으면서도 열대야에 시달린다고 하니 세상 참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난해한 곳이요. 오늘 멀리서 한국의 더워 죽겠다는 도명의 파도소리를 듣고 우리 친구들을 쬐끔이나마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원한(?) 열대 바다풍경과 함께 노래 한곡 띄어 보내오. 다들 열나게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면 곧 좋은 날이 올 것이요. 과테말라에서 봉영
더위를 잊는 최고의 방법은 이열치열(以熱治熱)입니다.
사랑이여- 유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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