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日時):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오후 7시 장소(場所): 서울 강남구 논현동 더베일리하우스 논현점 2층 연락처: 전화 (02) 566- 2956, (010) 2506 - 3646
친구 봉영은 아시려나... 나의 어릴 적 이름 아명(兒名) '영도'의 사연을 막내 혼사의 기쁨을 친구 봉영에게 전하며 어릴 적 이름 '영도' 에 대한 사연을 들려 드리리다. 예전부터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슬픔은 자식을 앞세워 저 세상으로 보낸 부모 심정이라 하지요. 자식이 죽으면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얘기가 있지요. 나의 어머님이신 성주 배씨 규수는 18살에 류씨가문 6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오셔서 자식을 일곱을 낳으셨지만 그중 여섯을 잃고 마지막으로 붙든 자식이 바로 나 류광희, 아명(兒名)으로 영도이외다. 그래서 아버님 어머님 두분께서는 이 자식만은 제발 하늘나라로 데려가지 마시고 영원히 당신에게 달라는 기원으로 영원할 영(永)자에 달라는 경상도 방언 '도' 를 합친 영도로 이름 지었다고 하더이다. 그런데 나보다 3살 많았던 형은 5살때쯤 병사했는데 그 형에게는 '생(生)도' 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지요. '살아만 도' 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이름이었다네. 이 이야기를 내가 커서 전해 들었을 때 진짜 가슴이 멍멍했지.... 내가 오십이 되던 해 2월.. 어머님께서는 2년여 치매로 고생하시다 여든둘에 돌아 가셨다네. 지나간 얘기다만 이제 나도 예순여섯이 되었고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님 얘기를 하다보면 가슴이 뭉클하니 눈물이 핑~ 돈다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설악산 수학여행 때도 하나 뿐인 아들의 안전이 걱정되셔서 만사를 제쳐두시고 따라오셨던 나의 아버님... 내가 외아들로 그토록 귀한 자식으로 컸기에 나의 1남 2녀 3남매중 큰딸은 2006년에 시집갔고 아들은 2007년에 장가 보낸지 8년 만에 둘째딸도 이제 혼사일자 정하여 청첩의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내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친구 봉영 ! 머얼리 바다건너 이역만리 계시다 보니 청첩의 글을 보낸다는 것이 우째 좀 그렇네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축하의 말씀도 듣고 싶고 나의 이 행복을 자네와 나누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에 있었다면 친구와 더불어 열린마음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풀어 보련만 .... 친구여 ! 자네는 이미 아니 벌써.. 1남 1녀 자녀혼사를 나보다 먼저 시작하여 진작에 매듭지었네만 ... 이제 나도 1남 2녀 모두 성장시켜 각기 짝을 맺어주는 성혼의 큰일을 매듭짓는 인생의 숙제를 마치는 구려. 기분이 좋아 친구에게 그냥 내 마음 전해본다오. 카톡으로나마 청첩의 초청말씀 전하는 바이네. 2015년 7월23일 대구에서 류광희 & 이영숙 ▶첨부 : 청첩장 사본
친구여! 자알 계신가? 자네의 새 편지를 두 통이나 더 받고서도 마냥 민기적거리다가 이제 겨우 답장을 하네그려. 그것도 자네에게 직접 발송하지 않고 엉뚱하게도 우리 동기홈피 글마당에 달랑 올려놓는 돌출적인 오바액션을 하면서 말일세. 하기야 내가 웬만큼 이런 사고를 쳐도 자네야 눈이나 꿈쩍하겠는가? 오히려 쪼잔맞게 뭘 그런 걸 갖고 오바니 사고니 하냐고 내게 핀잔이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렇지 않은가? 그냥 한번 웃고 넘어 가세나. 자네는 그야말로 나의 가장 오래된 호두알 친구이자 뽕나무 밭에서 죽마 타고 밑도 끝도 없는 전쟁놀이에 참전했던 전우이며 곰배팔이 목조르기로 죽을 때까지 열받아 코피나야 끝나는 고생받기 시합에서는 우열을 가리지 못했던 호적수 앙숙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50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태 나의 가장 측근에서 언제나 싱그러운 포도송이 같은 풋풋한 친구로 남아 있다니.. 내 마음의 은쟁반에 항상 깨끗이 씻어놓은 자네의 잘 익은 파란 포도송이가 촘촘히 은은한 향기를 내뿜으며 언제든 생각날 때 내 손을 끌어당겨 한 알씩 따먹으라 한다네. 그 상큼하고 새콤한 맛은 나를 나른한 오후의 권태에서 각성(覺醒)케 하고 새로운 의욕과 용기에 흠뻑 취(醉)하게 할 뿐 아니라 어느덧 늙어가는 내 고달픈 발에도 아직도 땀나게(犬足汗發) 해준다네. 지금껏 그 숱한 세월이 흘렀어도 생각해보니 자네는 늘 내게 다정하고 친절한 선한 목동이었고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어주면 나는 그저 마음놓고 늘어진 하품만 하고 때로는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얼룩송아지가 되곤 했었지. 하지만 난 그 버들피리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또 얼마나 나를 안심시켰는지 딱히 그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네. (중략) 친구여! 이렇듯 자네는 내게 많은 것을 베풀었는데 나는 무엇하나 보내줄 것도 없고 고작 씰데없는 설라발이나 까고 있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소.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데 나는 그야말로 자네 얼굴 사진도 볼 낯이 없구려. 이번에 보내준 한국야생화 사진은 비록 향기는 없더라도 내가 오래도록 감상하고 싶은 명품들이요. 여기서는 정말 귀한 보물로 여기고 잘 간직 하겠소이다. 이렇게 처절하게 예쁜 야생화에 그전엔 내가 왜 관심조차 없었는지? 도대체 무얼 따라다니며 뭐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소. 그리고 자네는 지금도 여기저기 다니며 얼마든지 이런 귀한 것들을 실물로 보며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엄청 부럽구먼. 그러지 않아도 자네 편지를 읽어보니 자네는 참 부지런도 하네그려. 동기들모임, 서클모임, 가족모임, 경조사, 그리고 어부인과 둘이서 오붓이... 웬 볼일이 그렇게도 많은가? 산으로 들로, 서울로 지방으로...지난번엔 강원도 백두대간 평창 선자령에 가서 눈구경하고 왔다더니 이번엔 팔공산 갓바위에서 커피마시고 청도 각북 군불로를 거쳐 가창 오리궁뎅이란 델까지 가서 롱춘정(弄春情)하며 풍류를 즐겼다니...그것도 처남 매부지간에 의좋게 오손도손...검은콩 두유빛 동동주로 잔을 채워...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산꽃을 바라보며 술을 한 잔씩 권하는 밋밋한 모습들이 아니고 술 한잔 받아 목구멍에 넘길 때마다 산꽃이 하나, 둘씩 활짝 피어난다는 이백의 멋진 시 한 구절을 떠올렸구먼. 그런 자리에 나도 좀 끼워주면 안 되겠소? 그저 상상만 해도 저절로 흥겹고 가슴이 뭉클해 오는구나. 늙은이 한잔 술에 마음의 봄꽃이 절로 피네. 탁주 석 잔에 호쾌한 기운을 일으켜(濁酒三杯豪氣發) 시를 읊으며 축융봉을 날듯이 내려간다는 주희(朱子)가 쓴 醉下祝融峰 이란 시가 생각이 나는군. 중국 형산(衡山)의 최고봉인 축융봉에 올랐다가 골짜기에서 구름 솟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감동한 나머지 함께 간 친구와 더불어... 역시 좋은 친구가 있어야 술맛도 나고 기운도 나는 법. 자네는 처남이자 나와 마찬가지로 호두알 친구인 이(李)박사가 항상 곁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가끔 한양서 오(吳)대감도 내려오면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겠네. 난 나중에야 이(李)박사가 여동생이 셋인줄 알았는데 나도 진작에 자네의 막내동서라도 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드는군. 언제 자네들과 어울려 감히 시를 읊어대지는 못할망정 흘러간 옛노래나 몇 곡 함께 부르다 보면 춘심(春心)이 역동(力動)하지 않을까? 그나마 호쾌한 가운데 발기운을 일으켜(中足氣發) 아침저녁으로 기운없어 축 늘어지는 그 안타까운 비감(悲感)을 떨쳐버릴 게 아니겠는가? (하략) 친구야! 막내 원경이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먼 데서 설라발이나 까는 못난 친구를 용서하게나. 언제쯤 갈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한국가면 꼭 만나서 우리 옛친구들과 함께 탁배기나 거나하게 나누도록 함세. 그럼 어화둥둥 어부인과 함께 늘 건강하기를 기원하겠네. 과테말라에서 봉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