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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전 글에서 박정희 얘기가 나왔으니 몇 마디 더…… 2015년 3월 23일 이광요(李光耀, Lee Kuan Yew) 전 싱가포르 수상이 서거함으로써 아시아 개발독재의 두 선두 주자가 모두 유명을 달리 했다. 그런데 FOBES 가 두 선두주자 박정희와 이광요의 공통점을 비교하면서 1) 민족주의에 대한 신념, 2) 반대파를 억압했고 민주주의를 믿지 않았다, 3)눈부신 경제성장, 세 가지를 꼽았는데 이는 지극히 피상적 고찰이다. 알다시피 “박정희 성장모델”은 이미 유명세를 타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까지 벤치마킹이 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 푸틴 대통령도 박정희 모델을 연구해 보라 측근에 지시했다 한다. 그런데 아직 성공사례는 나오고 있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게 말처럼 실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재야 인사들은 경제개발 계획은 장면 정권 때 이미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교육열, 애국심, 훈육된 인력 때문에 성공했지, 박정희 덕이 아니다. 그 누가 대통령이었어도 가능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상의 조건을 갖춘 나라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성공 스토리를 써낸 나라는 드물다. 내가 지난 20년간 주로 이런 나라들에서만 살면서 깨달은 우리의 박정희 모델 성공 요인은 다음과 같다. 1. 청렴성 “개발독재가 민주체제 보다 단기 성장에는 효율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가장 효율적이다.” 이것은 다수가 수긍하는 바이다. 대기업에 근무한 사람은 알 수 있다. 오우너 경영체제와 전문 CEO 체제가 어떻게 다른지… 전문 경영인은 항상 몸을 사려야 한다. 재무 수장에게 꼬투리 잡힐 일은 없는지… 3년 뒤 연임이 가능할지… 후계를 노리는 부하 누구에게 꼬투리 잡혀 오우너에게 오해 받을 일은 없는지…. 그러니 “몸조심” 하느라 과감한 장기 프로젝트에 신경을 쓰기보다 단기성과 또는 “큰 잘못 없이 적당히” 넘어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단점이 이와 같다. 야당에게 꼬투리 잡혀 국민들에게 비난 받을 일은 없나? 여론은 어떻게 돌아가나? 다음선거에선 어떻게 해야 표를 모으나 등등….. 그런데 독재는 이런 염려를 놓고 오로지 국가발전이라는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반드시 발목 잡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부패이다. 자신의 부패도 다스리기 어렵지만, 측근의 부패는 더 다스리기 어렵다. 측근의 부패를 못 본채 하는 순간, 부패는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오늘날 아시아 여러 나라 중, 박정희 모델을 추구하는 나라 대부분이 이것 때문에 뒤뚱거리며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딸, 사위 까지 다 가담하고 있다. 아들에게 잘못 넘겨준 대표적 실패 케이스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 해먹기이다. 박정희와 이광요의 제 1 공통점은 바로 청렴성이다. 한,두 건 소위 떡고물 파동이 있기도 했지만 박정희는 헤진 혁대를 죽을 때 까지 찰 정도로 청렴했고, 주위 인물들도 관리를 잘 했다. 2. 힘의 자제와 관용성 민주주의라 했을 때도, 심지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북한마저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란 간판을 내 걸 정도로 천차만별이듯, 독재라 했을 때도 그 형태가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지나 놓고 보면 박정희 식 독재는 가장 부드럽고, 권력의 남용을 자제하고, 적에게 관용적인 온순한 독재였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삼권분립제도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단 혁명직후 일시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삼권을 장악한 적도 있고, 통일주체국민회의로 국회를 약화시켰으며, 사법부 수장을 압박하여 시국판결을 강요한 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틀로 봐서 삼권분립의 근간을 흔들지 않았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독재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삼권분립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사법부는 독립이 되어있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법부는 박정희가 아주 중요한 시국 사안이 아니면 풀어놓은 덕분에 이후 점점 힘이 세어져 요즘에는 누가 봐도 좀 이상한 판결에 대해서도 아무도 견제할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정적을 탄압할 때도 반드시 판결이라는 절차를 거쳤지 그 누구처럼 몽둥이로 죽이거나 재판은 커녕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어느 날 길 거리에서 암살되는 법은 없었다. FOBES 가 이광요나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믿지 않았다”하는 것은 두 지도자의 속 뜻을 모르고 한 소리다. 단지 민주주의의 단점을 잘 알고 그 효능을 일시 정지시켰을 뿐이다. 3. 테크노라트의 활용 박정희는 인재를 쓸 때 반드시 자기와의 친소를 기준으로 뽑지 않고, 그 방면의 최고 전문가인 과학자, 기술자, 경제학자를 썼다. 심지어 지방색에 치우치는 일이 없는가도 항상 신경 썼다. 언젠가 강원도 출신 어느 차관이 경북에 아주 오래 살아 인사카드에 본적을 “경북”이라 썼는데, 아주 유능했으나 당시 박 대통령이 현 장관 중 경상도 출신이 몇 % 인지 묻고 너무 많다고 이 사람의 장관 승진을 보류한 적도 있었다. 즉 이 사람은 본적을 “강원도”로 썼으면 당연히 될 장관을 놓친 것이었다. 또 이공계를 장려하여 그 당시에는 공과대학의 인기가 아주 높았다. 그런데 요즈음은 공과대학의 인기가 시들해졌는데 그 이유는 국가에서 우대 책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4. 시한의 횡재 개발독재는 아무리 승승장구하더라도 이를 장기적으로 내버려두면 폐단이 장점을 능가하게 된다. 박정희도 만년에 차지철, 김재규와 같은 인물을 쓴 걸 보면 판단력이 무디어졌다는 평을 듣는다. 박정희가 죽지 않고 계속 집권했더라면 큰 일을 더 많이 했을 거라는 열혈추종자들도 있지만 그 예단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을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푸틴을 보라. 그 동안 러시아에서 국민 대다수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개혁을 밀어 부치던 사람도 실 집권이 20년 가까워 오자 곳곳에 파열음이 터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절묘하게 하느님이 박정희의 목숨을 거두어 갔고, 그 뒤를 이은 전두환이 또한 절묘하게 경제를 과감하게 통째로 전문관료에게 위임하는 바람에 성장동력을 되살릴 수 있었다. 5. 민중의 계도 그 어떤 개혁도 정신적 바탕, 구성원들의 마음 속으로의 호응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박정희는 정신적 성취욕이 물질적 생산을 주도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고, 기업체 간부들에게도 새마을 연수를 시켰고, 새마을 운동 전에도 재건운동, 재건의 노래를 국민들에게 퍼뜨렸다.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우리도 하면 된다는 정신을 보급하기 위해, 대한중석공사 사장이던 박태준을 따로 불러 당시 동양태평양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김기수를 지원하도록 지시, 1966년에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양담배, 양주 수입을 금지한 것은 이 정신무장의 일환이다.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을 보라. 모든 지도자들이 거대 조직인 국제 담배회사, 양조회사들의 로비에 넘어가 자국민들에게 수입담배, 양주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게 국민들에게 인기도 좋다. 그러나 수출보국을 기치로 내세웠던 박정희는 “양담배를 피우고, 양주를 마시면서 수출보국이 되겠는가?” 생각하고 단속을 철저히 했던 것이다. 이광요와 박정희의 다른 점도 있다. 박정희가 군 출신이어서 근엄함이 몸에 배었지만, 이 광요는 변호사 출신, 그래서 이광요는 유머에도 능했다. 한번은 미소 냉전이 한창일 때 반둥 회의에서 한 아프리카 지도자가 일어나 발언하기를 “미국과 소련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통에 약소국들이 죽을 맛이다. 흡사 코끼리 두 마리가 싸우는 통에 밑에 깔린 풀들이 시달림을 받는 것과 같다.”고 하여 큰 박수를 받았는데 이광요가 일어나 “여보, 그런 말 마시오. 코끼리 두 마리가 싸울 때 보다, 코끼리 두 마리가 연애를 한다고 씩씩거리면 풀들은 더 큰 고통을 받소.” 라 하여 더 큰 박수를 받았다. 박정희는 유머에 약했지만 그 대신 말을 아끼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큰 장점이 있었다. 회의 석상에서도 늘 나서지 않고 최후까지 경청한 뒤 자기 말을 했기에 판단에 실수가 적었다. 지도자들 중에 떠벌이가 많은데 그 대부분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김일성도 굉장히 떠벌이였다 한다. 히틀러도 기록영화를 보면 대중연설 뿐 아니라 참모회의 때도 떠벌이였다. 전쟁 때도 참모의 의견을 무시하여 여러 번 큰 과오를 저질렀다.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도 회의 때면, 듣는 체 하다가 “거기에 대해선 내가 좀 해봐서 아는데……”라고 시작하여 자기 말만 했다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여러 실책을 저질렀다. 조선조 세종대왕도 그 누구보다 박식하고 총명했지만 어전회의 때는 늘 신하들을 토론케 하고 자기는 그걸 참고 끝까지 들은 후에 판단을 내렸다 한다. 박정희는 리더쉽, 치적 등에서 근,현대사의 세종대왕이라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는다. PS 토막이야기; 박정희와 거지(김성은 전 국방장관 회고)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1월 김 전 장관과 박종규 경호실장, 이원엽 소장(육사5기)을 대동하고 유성에서 꿩을 사냥했다. 사냥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점심 메뉴로 경호실에서 준비한 쇠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무작정 사냥터 인근 다리 밑으로 들어갔다. 소금을 뿌린 쇠고기 구이를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거지 몇 명이 경호실 요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다가온 것. 박 전 대통령은 "오라고 해라. 함께 먹자"라고 그들을 부른 뒤 음식을 나눠 먹었다. "우리를 보고 거지 친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주변의 말에 박 전 대통령은 "어때. 거지가 지프 타고 다니는 것 보았나?"라며 파안대소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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