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 누워 초점없는 눈빛으로 허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늙고 병든 몸들. 긴 세월을 숨가쁘게 헤쳐나온 고달픔과 피곤함은 주름살의 깊이와 거친 숨소리가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다. 한 치 앞의 미래도 없는 삶이기에, 그리하여 쪼그라들대로 쪼그라진 몸을 헙수룩하게 감싸고 있는 환자복이 힘없이 너풀거린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이 가진 기억의 힘일 게다. 하지만 늙고 병들면서 깨끗이 기억까지 지워버린 사람들의 몸은 가족들도 진저리를 칠만큼 만신창이 그 자체다. 이승의 삶이 힘들었던 만큼이나 저승 가는 길도 그만큼 험난한 것인가. 힘겹게 버텨내 왔던 생애 끝자락에 와서 이제는 편안히 쉴 자리를 쉬이 찾을 법도 하건만 거친 숨소리는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모질게 모질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의 손길에 혈육의 몸을 의탁해놓은 가족들이 간간이 물어보는 안부의 내용은 늘 한결같다. " 아직 거카고 있십니꺼? 언제쯤 돌아가시겠십니꺼?" 그러나 감히 누가 답할 수 있으랴. 하늘만이 아는 일을.
이 시대 노년의 빛깔은 경험과 경륜, 그리고 여유로움이 은근하게 드러나는 은빛이 아니라 불씨 가물거리는 시커먼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 사회에 속한 인간의 가치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인간은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기업하기 좋은 도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못 만들어 안달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노년은 개발과 성장의 장애물이요, 서둘러 한켠으로 치워버려야 할 실용성없는 폐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의 쾌적한 질주를 위해 노인들을 땅 밑으로 떼밀어 넣고 있다. 노년이란 것이 인간이면 누구든 겪게 되는 삶의 한 과정이 아니라 절대 걸려서는 안되는, 천형과도 같은 질병으로 만들고 있다. 허황한 망상에 빠져있는 듯한 일부 의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으로노화방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장담하고, 노화는 치료가능한 '질병'이라고 서슴없이 떠들어대는 의사들도 있다. 자신들은 결코 늙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이 시대의 보험회사들이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영업전략은 노년의 슬픔과 비참함을 한없이 증폭시켜 젊은이들에게 공포심을 주입하는 것이다. 한 건의 계약을 위해 보험설계사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보다는 무료급식소에 길게 늘어서 있는 노인들의 슬프고도 초라한 뒷모습을 담은 사진 하나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안과 공포는 자연스럽게 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저승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힘으로써 홀연히 이승과 작별을 한 어느 노인이 남겨둔 소지품에는 꾀죄죄한 수첩 하나가 있었다. 그 수첩 첫머리에는 혼자 힘으로 황혼기의 행복과 건강한 몸을 가꾸어 보려는 의지가 담뿍 배어있는 생활 수칙 세가지가 꽈배기 늘어놓은 듯한 글씨의 영어로 적혀 있었다. "Have something to do, Have someplace to go, Have someone to love…."
그러나 스스로 행복하고자 발버둥쳤던 그 노인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었고, 건강할 수도 없었다. 할 일이 없었고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었을테고, 게다가 평생 반려자를 먼저 떠나보낸 혼자 노인이었기에 사랑할 사람마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꽃사태 일어난 도심의 공원벤치에는 생기없는 노인들이 햇살을 받으며 길고도 긴 하루의 삶을 소진하고 있다. 오늘 해 지면 그분들에게 또 어김없이 힘겹게 살아내야 할 하루가 세금고지서처럼 날아들 것이다. 내일 또 그 자리에서 친구같은 햇살과 나란히 않아 황사바람에 맥없이 떨어지고 있는, 그 잘난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힘에 버거운 또 하루를 소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 옆에서는 누군가 우중충하게 탈색되어 땅바닥에 나뒹구는 꽃잎들을 쓰레기 봉투에 쓸어담고 있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