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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17~31 간 벗들이 불원만리 이곳까지 와 고생한 뒤 다녀갔습니다. 기행문을 써 놓고도 영 맘에 안들어 안 올렸는데 봉영이 올리라 하기에 올려봅니다. 카페는 인연이 안 닿는지 영 에러만 나 여기 올립니다. 수학여행 일지 D minus 1(7.17) 마나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밤 12시인데 전광판에 YK758 알마티 발 비행기가 “Arrived”로 되어있었다. 원래 0시 30분 도착 예정인데 30 분 일찍 도착한 것이다. 전에 종종 있었던 일이라 일찍 나온 게 다행이었다. 한 30 분 지나니 당당한 모습의 노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총 9시간의 여정이라 피곤할 만도 한데 14명 중 아무도 그런 기색은 안 보였다. 공항 한 켠에서 플래카드를 펼쳐 기념촬영을 한 뒤 호텔로 향했다. 밤이 이윽한 지라 식당은 문을 닫았고 미리 준비한 피자와 맥주로 배를 채우며 담소를 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 3시, 각자 침소로 들어갔다. D-01(7.18) 알라 아르챠 국립공원 9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물건을 사느라 30분 늦게 도착하니 모두들 짐을 꾸려 준비하고 있었다. 국립공원 Ala-Archa로 향했다. Ala-Archa는 수도 비슈켁 남쪽 40Km에 있는데 아한대 수목 600 여종이 자라고 있고 그 중 약용식물 50 여종이 자라고 있는 총 19400 헥타의 넓은 산지로 천산산맥의 중심이다. 고도는 해발 1600m 에서 4860m이다. 그 중 유명한 봉이 4777m의 Freedom Korea 봉인데 암벽 클라이머들의 메카이다. 그 명칭의 유래는 6.25때 참전 구소련 병사 중 클라이머가 있어 그런 명칭을 붙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호텔이라 부르기엔 작고 호스텔이라 부르기엔 아까운 아담한 숙소에 각 방에 2인씩 짐을 풀고 산행을 시작한 건 11시. 한참을 걸으니 깊지 않은 계류가 나타났다. 전에는 여기에 나무 다리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떠내려갔는지 안 보이고 팔뚝 굵기의 자연산 나뭇가지 하나가 걸쳐있는데 위태하여 올라서기가 두려웠다. 모두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 건너기로 하고 계류에 발을 들여놓았다. 빙하가 녹은 물에 종아리 아래 살결이 닿으니 너무 시려 10 초를 견디기 힘들었다. 바닥은 미끄러운 이끼가 덮인 각진 잔돌이 발바닥을 괴롭혔다. 3분의 2쯤 건넌 가운데 앗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김세일 군이 벗어 든 두 짝 등산화를 내게 패스하려다 거리가 못 미쳐 한 짝이 계류에 떠내려갔다. 본능적으로 따라 뛰었지만 물살 속도는 내 걸음보다 빨랐다. 유일한 희망은 아까 본 나뭇가지에 신발이 걸려 머뭇거리는 사이에 건지는 것인 데 정신 없이 달려 와 보니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이 때 눈이 밝은 김용휴 군이 신발이 중도의 덤불에 걸렸다고 소리질렀다. 그래서 다시 상류 쪽으로 이동해 덤불에 접근했는데 신발이 물살을 타고 다시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일촉즉발! 물살과 걸음 중 누가 0.5초가 빠르냐의 다툼이었다. 다시 나뭇가지 근방에 이르니 신발은 나뭇가지 너머에 있는 지류 쪽으로 빠지고 있었다. 망서릴 틈도 없이 나뭇가지를 타고 후딱 건너,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신발을 꿰어 겨우 건져냈다. 신발을 안전지대로 던져 놓고 나뭇가지를 타고 돌아오려니 갑자기 나뭇가지가 흔들흔들 요동을 쳤다. 도저히 중심을 잡을 수 없어 신발과 양말을 벗고 건넜다. 사람이 생사의 위기를 당하면 괴력을 발휘하여 담장을 뛰어넘거나 벽돌담을 부수는 얘기는 책에서 많이 읽었다. 0.5초로 다툴 때는 흔들림 없이 건너던 나뭇가지가 갑자기 흔들거린 것은 바로 내 마음이 흔들린 때문이리라.
사태가 수습되고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는 이어지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고 주변은 야생화가 춤추고…….정말 걷기 좋은 분위기였다.
2시간 반 가까이 전진하니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한 돌무더기가 나타났다. 그 대신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저 멀리 빙하를 이고 있는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뚜렷이 보였다. 원래 계획은 이 즈음에서 강을 도강하여 강 반대편 길로 걷는 것이었는 데 물이 너무 불어나 도강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쯤에서 반환점으로 삼고 점심을 먹었다. 사진도 찍고…..
하산을 하는 도중 미리 직원에게 준비시킨 바베큐 물건을 싣고 왔다는 연락이 왔다. 아침에 건넜던 계류를 다시 신발을 벗고 건너고 있는데 김대식 위원장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김대식 위원장은 우리 산행 동안 산장근처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혼자 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우리가 올라갈 때 찍어놓은 바베큐 장소를 혹시 딴 사람이 차지할 까봐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누가 와서 국립공원 구역 내에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일행을 뒤에 두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산장 관리인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정구역에서는 불을 피울 수 있었는데 아마 입구 근처에서 유르트(파오 비슷한 천막)를 지어놓고 고기를 구워 장사를 하는 업자들이 로비를 해서 국립공원 관리규정을 바꾼 듯 했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 발각되어 벌금이 나오면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원래 계획대로 밀어 부쳤다. 미리 재워둔 양고기,소고기, 닭고기가 불에 익어가자 서서히 주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보드카, 포도주와 함께 직접 담은 황금뿌리술이 등장했는데 이 황금뿌리는 이 지역 고산에서 나는 한국의 산삼과 같이 귀한 식물이다.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A모 공사는 장인이 뇌졸증으로 쓰러졌는데 단층촬영 결과 뇌세포 절반이 손상되어 있었다. 그래서 장인을 초청해 이 뿌리로 1년 동안 차를 달여 복용케 했는데 재촬영 해보니 말끔히 나았더라 했다. 하도 신기해 이 뿌리를 한국에 보내 실험실에서 분석해 보았더니 뿌리 당 사포닌 성분이 산삼보다 더 많더라는 것이었다. 이날 이 술을 과음한 사람도 있고 입에 안 된 사람도 있었는데, 적당히 마신 임병호군은 그 다음날 눈을 뜨니 두 다리 사이에 텐트가 쳐져 있더라고 했다.
D-02(7.19) 사리 첼렉 행 오늘은 긴 자동차 여행이 예정된 날이다. 장장 12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한다. 7시 반에 출발했다. 정서쪽으로 2시간 가량 달리던 버스는 카라발타라는 곳에서 정남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차츰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해발 750m에서 해발 3586m의 TeoAshu라는 고개까지 올라가야 한단다. 대관령의 4배를 넘는 높이이다. 소리치는 개울을 끼고 반시간 이상을 달리더니 마침내 개울도 끊어지고… 차는 긴 S자를 그리며 올라갔다. 고도계가 2900m를 가리키는 곳에서 잠깐 내려 사진을 찍었는데 바람이 세차 모자가 날라갈 것 같았고 추워서 다들 몸을 웅크렸다. 드디어 고갯길에 다다라 희미한 등만이 비추는 긴 터널을 통과했다. 터널을 통과하니 수사미르라 불리는 광활한 분지가 눈 아래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고선지 장군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안서도호부에서 2000km 넘게 쉴 새없이 말을 달려온 고선지의 군대는 여기서 목을 축인 다음 바로 탈라스 평원으로 내려가 이슬람 연합군과 대접전을 펼쳤다.
평균 2400m의 이 분지를 통과하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다. 내리막길 직전에 고선지 장군과 부닥친 장군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치치간 계곡이라는 절경을 감상하며 다시 한 시간을 내려갔다. Toktogul 이라는 유명한 저수지를 통과했는데 이 호수에 가둘 수 있는 수량은 190 억톤으로 1960~1976 년에 지을 당시에는 저수량으로 세계 최고였고 지금도 4위 안에 든다고 한다. 그런데 댐의 길이는 불과 300m 미만이다. 그러니 신의 한 수를 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라 전기요금은 Kw당 1 센트로서 우리나라 요금의 9분의 1이다. 이 댐의 중간에서 땡볕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걸어 기념촬영을 했다.
댐의 하류로 내려가니 진한 녹색 빛깔의 나린 강이 그림처럼 눈 아래 펼쳐졌다. 이 강은 타직스탄, 우즈벡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아랄 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나린 강 위에 놓인 다리를 Tashkumir라는 곳에서 건너 북쪽으로 향했다. 총 540km 여정 중 490km에서 피로에 지친 타이어가 드디어 펑크가 났다. 나는 이번 사리첼렉 행이 4번째인데 그 때마다 타이어 펑크 사고가 나, 이번에는 기사에게 새 타이어로 바꿔 놓으라 단단히 일렀는데 그래도 터진 것이다. 다행히 타이어 교체는 30 분 만에 이루어졌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야간에 꼬불꼬불한 산길을 수없이 달렸는데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9시 경 드디어 목적지에 다달았을 때는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또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목적지는 내가 예약을 하고 돈을 미리 지불하고 꼭 답사해서 확인을 했는데 이곳은 수도에서 너무 멀어 다른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했다. 그 대신 지난 번 방문 때 가이드를 맡았고 이곳 보호지역 관리 이사장을 지낸 신분이 확실한 사람을 시켜 숙소예약을 하게 했는데 막상 그가 안내한 숙소는 그냥 시멘트 바닥에 철제 침대만 댕그렁이 놓인 곳이었고 화장실은 멀리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지난 번 3회 방문 때는 늘 텐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곳 숙박시설이 이렇게 열악한 지 몰랐던 것이다. 이 전 관리 이사장은 사람이 좋아 업자에게 속아 넘어간 건지 아니면 한통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우리 일행의 3분의 2만 수용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새 숙소를 구해야 했다. 모두 맨붕상태가 된 마당에 같이 간 어수진 씨의 행동이 단연 돋보였다. 어수진 씨는 파파스 합창단인 인연으로 요번 수학여행단에 끼게 되었는데 그는 말없이 버너 두 개에 불을 붙인 후 비상식량으로 가져간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모두 허기가 진 터라 라면은 금방 소진되었다. 이런 중에 나머지 숙소도 구해져 겨우 일행은 잠자리에 들었다. D-03 (7.20) 트레킹의 진수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의 소동은 흔적이 없고, 전형적 산골 마을의 평온함이 온 동네를 품고 있다. 아침 일찍 소를 몰고 산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련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나도 초등 중등 시절에는 늘 외갓집에서 아침 일찍 소를 데리고 산으로 가서 동네 아이들과 소들이 풀 뜯는 동안 산에서 딩굴다가 해가 지면 소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오곤 했었다. 물론 방학 동안에….. 그 광경을 50 여 년 뒤 여기서 볼 줄이야……. 일행들이 차례로 일어나 더러는 계곡에 가서 세수를 하고 더러는 사진을 찍었다. 아침을 먹고 사리첼렉 호에 이르는 비탈길을 차를 타고 올라갔다. 한 시간 반쯤 올라가니 호수가 나타나고 숙소로 예정된 통나무 집 수채가 군데군데 서있는 곳에 이르렀다. 여기서도 샤워시설은 없어 호수를 이용해야 했고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그러나 통나무 집은 비교적 깔끔해 보여 일단 짐을 내렸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작자가 능글능글해 보여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그의 말이 오후 2시엔 방이 모두 비니 짐을 우선 한군데 모아 놓고 산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우리는 물과 간단한 간식을 챙겨 산행에 나섰다. 사리첼렉은 UNESCO가 지정한 생태보호구역으로 해발 1900m에 위치한 호수이다. 길이 7.5km, 폭 2.3km의 큰 호수인데 Kylaa-Kel, Aram-Kel, Cheychek-Kol, Iri-Kol, Bakaly-Kel,.이라 불리는 중소 호수들을 거느리고 있다. 보호구역은 총 24000 헥타르에 이르며 이 안에 각종 희귀 동식물이 살고 있다. 눈표범, 붉은 여우 등이 살고 있고, 세계 유일의 너도밤나무 자연군락지도 있다. 일행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자 호수의 정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암청색 물빛이 저 아래서 넘실거리는 가운데 나무 아래에만 유독 연록색 빛을 띠고 있었다. 일행 중 누가 연록색은 플랑크톤 때문이라는 과학적 분석을 내려 모두 수긍하였다. 한참을 지나니 넓디 넓은 평원이 이어졌다.
산마늘 밭이 나오고 산돼지가 조금 전까지 밭을 휘저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끝없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낮은 언덕을 통과하니 Iri-Kol이라는 꽤 큰 호수가 나왔다.
여기서는 맑은 샘물이 솟는 곳이 있어 일행 모두 목을 축이고 풀밭에서 휴식을 취했다. 수영하기에 알맞은 장소도 있어 가이드, 김용휴의 부인, 구상교 군이 수영하러 사라졌는데 한참이 지나도 안 나타나 일행들은 농담으로 나뭇군이 선녀의 옷을 숨긴 거라 농담을 하고 있는데 뜻 밖에도 김용휴 부인이 먼저 나타났다. 구상교는 왜 안 오느냐 물으니 경 여사(김용휴 부인) 왈 구상교 씨가 자기 옷 벗어 둔 곳을 못 찾아 헤매고 있단다. 누가 “나뭇군이 선녀 옷을 숨긴 게 아니라, 선녀가 나뭇군 옷을 숨겼군” 하여 일동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산행은 계속되었다. 작은 호수들이 잇달아 나타나고 그 사이사이를 오르내렸다. 일행이 하나 둘 지쳐가더니 마지막 작은 호수를 넘을 때는 체력이 한계에 이른 듯 했다. 그러나 5시간 반의 힘든 산행에도 모두 한 사람의 탈락자 없이 산행을 마쳐 가슴 뿌듯했다. 이곳은 기상이 늘 불안정 하여 도중에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왔으나 용케 우리 일행이 지나는 곳은 피해 갔다.
숙소에 이르니 이미 컴컴하였다. 여기서 또다시 말썽이 일어났다. 주인이 방을 2사람마다 한 방씩 주겠다는 당초 약속과 달리 큰 방에 17 개 요를 깔고 같이 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돈은 당초 방 9개 값을 다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유일한 숙소인데 너희들이 별 수 있겠냐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른바 독점의 횡포였다. 나는 일단 식사를 주문하고 기사를 1시간 반 떨어진 아랫 동네로 보내 딴 숙소를 알아보게 했다. 식사를 다 마쳤는데도 심부름 보낸 기사는 나타나지 않고 주인은 이죽거리며 빨리 결정하라 재촉했다. 잠시 후 기사가 나타났는데 대답이 애매모호했다. 숙소가 있긴 있는데 다 수용은 불가하다는 것.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과감히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모두 각자의 짐을 챙겨 버스에 실었다. 그런데 공용 짐을 챙기러 갔던 일행이 와서 짐을 가지러 가보니 철문이 잠겨있고 불은 꺼졌으며 인기척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계획적으로 도둑질하러 작정한 것이었다. 버너 두 개, 다수의 부식들, 소주 막걸리 등등을 탈취당한 것이었다. 이가 갈렸지만 참는 수 밖에 없었다. 깜깜한 밤 중에 산길을 차에서 흔들거리며 내려와 숙소에 이르니 이곳도 열악하긴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주인이 선량해 보여 하루 밤을 묵기로 결정했다. 방이 모자라 김용휴 부부, 이상봉 부부가 자는 방에도 남자 한 명이 끼어 자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평 한 마디 않는 경명애, 홍욱 여사가 너무나 고마왔다. 이들 부부는 이 날 거의 잠을 못 자고 남자들이 옆에서 벌이는 술판을 지켜봐야 했다. 아무튼 단기 팀, 장기 팀의 하이라이트였던 오늘의 산행이 성공적으로 마쳐졌다는 쾌감이 모든 불편을 이기게 만들었다. 역시 아직 늙었다 해도 청운정(靑雲亭)의 기백은 살아 있음을 증명한 하루였다. D-04 (7.21)수사미르 아침 일찍 일어난 대원들은 귀환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저께 지나온 길을 그대로 Return하는 길이었다. 다만 지친 몸에 12시간 이상 이동은 무리라 생각되어 수사미르에서 하루 밤을 묵기로 했다. 수사미르 고원 3분의 2를 지난 지점에 TURAN Camp라 쓰여져 있었다. 이곳에서도 숙소 논란이 일었다. 이곳 관리인은 20대의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처녀였다. 우리의 인원을 확인한 그녀는 곧 우리가 미리 요청한 마필을 구하기 위해 사라졌다. 그 사이 우리는 한 중년여인이 가리키는 유르트 두 채에 짐을 풀고 다만 유르트보다 룸을 선호하는 이대용군과 강창구군만이 컨테이너하우스에 들었다. 그런데 한참 후 말을 구해 나타난 그녀는 우리가 예약한 건 룸이지 유르트가 아니라며 유르트에서 짐을 빼어 컨테이너 하우스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그녀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고 논리적이었으나 나는 만리 길을 날아온 친구들의 여망을 들어주고 싶어 안 된다고 버텼다. 이 경우 협상은 선점한 쪽이 유리하게 마련이다. 그녀는 내가 보낸 메일을 보여주며 정 그러면 한 채는 양보할 테니 다른 한 채는 양보해 달라, 지금 두 달 전에 유르트를 예약한 터키 고객이 도착해 있다고 했다. 보니 저 만치에 한 청년이 여자 친구인 듯한 두 여자를 데리고 서 있다가 다가왔다. 그는 우리 사이의 논쟁을 듣고 있다가 우리가 지불하는 돈에 웃돈을 더 주겠다며 관리인 처녀를 부추겼다. 나는 장유유서가 철저한 이 나라에서 70 노인을 경시하는 그 터키 청년이 괘씸한데다가 웃돈 운운하자 더 가소로운 생각이 들어 땀을 뻘뻘 흘리며 설득하는 그 처녀의 성의에 감동하는 마음이 싹 가셔져 무조건 안 된다고 버텼다. 내가 말한 Room은 이런 컨테이너 숙소가 아니라 아담한 호텔 룸이라며…… 결국 그들은 포기하고 유르트는 두 채 모두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 다음 희망자에 한해 말을 탔는데 내게 말을 건넨 사람이 이르기를 이 말은 무척 빠르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말을 오래 타 승마에 은근히 자신이 있어, 흘려 들었는데 웬걸! 탄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말이 헛말이 아님을 알았다. 그 말은 내가 신호를 주지 않았는데도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 내리막 거칠 것이 없었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 키르키즈스탄 남부 페르가나는 그 유명한 한혈마, 일명 서극천마(西極天馬)의 원산지이며 한 무제는 이 말 몇 마리를 빼앗고자 전쟁까지 일으킨 사실을…… 관우가 탄 적토마도 이 한혈마 계통이라 한다. 은근히 겁이 났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두 차례나 낙마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말을 세우고 내려 말을 끌고 걸어 내려왔다. 저녁을 마친 후 우리는 한 유르트에 모여 술판을 벌였다. 이제까지 술판을 벌이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특히 이 날은 해방감, 성취감, 자유, 로망 이런 게 합성이 되어 거나한 술판이 되었다. 술에 특히 강한 이진권군 조차 이날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필름이 끊어졌다 할 정도로…… 술이 취하자 노래가 나왔다. 다들 가사가 가물가물했지만 옆에서 도와 마무리 했다. 별이 총총한 해발 2400m 분지에서 느닷없이 한국산 흘러간 옛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시끄럽다 말릴 사람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천막도 30 여 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으니….. 내물왕 이후의 신라왕족은 모두 흉노계열이라 하지 않는가? 지금 화랑의 후예들이 그 옛날 조상들이 살던 터에까지 와 “아 신라의 바~~~ㅁ, 이~~~~~여~”를 목청 끝까지 부르짖고 있으니……
D-05 (7.22)다시 비슈켁으로 이튿날은 느긋하게 출발하여 비슈켁으로 향했다. 점심식사 후 오랜만에 자유시간을 가졌다. 밀린 빨래도 하고, 쇼핑도 하고…… D-06 (7.23)이씨쿨 오늘은 Issyk-Kul 호수로 가는 날이다. 이씨쿨호는 구소련 시절 크림반도, 소치와 더불어 3대 여름휴양지였으며 역사적으로 중국 쪽에서 유럽이나 인도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혜초 스님도 갈 때는 해로로 갔지만 인도서 돌아올 때는 여기를 통과했다. 2007년에는 고고학자들이 스키타이계 청동기 문물을 호수 밑에서 발견했다. 총 면적은 6236 Km2로 충청남북도 면적을 합한 것 만하고, 세계에서 10번째 크기이며 염분 호수로는 카스피해 다음이다. 염도는 0.6%이며(바다물은 3.2%), 물고기도 살지만 남획으로 많이 줄었다. 이씨쿨은 Hot Lake 라는 뜻이고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Karven 4 Season 이라는 숙소에 도착했는데 5성급 호텔답게 Luxury한 시설에다가 써비스도 훌륭했다. 단지 숙소 열쇠 시스템이 특이했는데 이대용 군이 금방 습득하고 시범을 보였다.호텔 내 식당에는 유럽 어느 일류호텔에 못지 않을 만큼 메뉴도 훌륭했다. 일행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에도 들어가보고 모래 사장에서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거리기도 했다. 엉큼하게 반나의 여체를 훔쳐보는 친구도……
D-07(7.24) 이별 아침에 근방에 있는 Ruk Ordo라는 박물관을 방문했다. 공원 여러 군데 조각상이 놓여있고, 전 세계 종교 기독교, 이슬람, 불교, 러시아정교, 유태교 사원이 축소되어 세워져 있었다. 대한 불교 조계종에서 기증한 범종도 매달려 있었는데 일행 중 몇 명이 타종을 해 보니 데~엥 하는 귀에 익은 종소리가 은은히 퍼져나갔다. 점심을 먹은 후 장기 팀과 단기 팀이 이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 열을 서서 일일이 악수를 하고 서로 장도의 안녕을 빌었다. 단기 팀은 택시 두 대에 분승, 마나스 공항으로 향하고 장기 팀은 버스로 호수 동쪽 끝에 있는 Karakol 로 향했다. Karakol은 여름에는 등산객들로 붐비지만 겨울엔 1000m를 활강하는 멋진 스키장이 있어 겨울에도 방문객들이 많다. 도착해서 Zheken 이라는 아담한 모텔에 짐을 풀고 강가에 수박, 술과 훈제생선 등을 들고 가 놀았다. 저녁에 내일부터 시작되는 2박 3일의 야영과 등산에 대해 토의를 하며 어떻게 하면 짐 무게를 최소화하느냐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D-08(7.25) 야영장까지 이르는 길 아침 8시가 되니 우리를 태우고 갈 구 소련제 군용트럭이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는 모든 계획이 시계바늘처럼 착착 진행되는 느낌이다. 군용트럭을 이용하는 이유는 길이 울퉁불퉁 좋지 않아 웬만한 SUV차량도 통과가 힘 드는 때문이다. 군용차는 차체가 높아 오르내리기도 힘들 정도였다. 차가 움직이자 몸도 좌우로 정신 없이 흔들렸다. 폭이 좁아 아슬아슬한 나무 다리를 건너더니 강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울창한 나무들이 차창을 때렸다. 이렇게 한 시간 반 동안 고도 1700m에서 고도 2500m 까지 올라가더니 나무다리가 놓여진 한 개울가에 멈췄다. 여기서는 우리의 짐을 나를 말 세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우리 짐을 야영장에서 한 30 분 떨어진 거리까지 옮긴다 한다. 마지막 30 분 구간은 돌길이라 말이 다칠 우려가 있다 했다. 우리는 계곡 너머 저 멀리의 장엄한 4000m급 산봉우리를 감상하며 오르막길을 계속 올랐다. 오르는 발길은 무거웠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 걷기에는 상쾌했다. 이진권 군이 맨 뒤에 오면서 좀 쉬었다 가자고 연신 보채었지만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도중에 우리 짐을 올려놓고 하산하는 말들을 만났다. 키르기즈 말들은 산악지형에 강하다. 가파른 경사를 사람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오르내린다. 우리 짐은 큰 전나무 아래 쌓아두었다 한다. 예의 장소에 이르러 각자의 짐을 찾아 지니 한 20kg은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은 12 시 20분. 점심을 간단히 먹고 출발했다. 여기서부터는 큰 돌 더미가 불규칙하게 늘어져 있어 조심조심 발을 옮겨놓아야 했다. 드디어 세료타라 부르는 캠프 장소에 도착했다. 유르트가 여러 개 쳐져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얼른 텐트 4개를 칠 장소를 확보했다. 우리가 텐트를 치고 쉬고 있으려니 한국 부녀들이 등산복을 입고 하산하고 있었다. 혜초 여행사 소속이라 했다. 작년에 혜초 여행사에서 현지답사를 해 갔는데 금년부터 여행객들을 모으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식사 조와 나무 모으는 조를 나누어 일방 저녁준비를 하고 일방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하였다. 불을 피우자 공기가 차서 모두 모닥불 주위에 몰려들었다. 11시쯤 슬리핑 백 속에 몸을 넣으니 밖에서 빗방울이 천막 천을 두드린다. 내일 날씨가 어떨지 걱정된다.
D-09(7.26) Ala-Kol 호수 오늘은 장기팀의 클라이막스 Ala-Kol호수를 탐방하는 날이다. 캠프사이트는 해발 2900m, 호수는 3532m에 위치해 있다. 일찍 아침을 라면으로 떼우고 7시 반에 출발했다. 유럽 등지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앞서 가기도 하고 뒤에서 따라오기도 한다.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나는 작년 9월에 이곳을 거쳐 3950m의 Teremtor 재를 넘어 Arashan 계곡으로 빠져 봤기 때문에 이 길이 힘 드는 코스임을 잘 안다. 때로는 흐른 바위길, 때로는 가파른 오솔길이 숨을 가쁘게 만든다. 대기가 맑아서 눈 앞에 빤히 보이는 곳도 걸어보면 멀기만 하다. 그래도 대원들은 묵묵히 잘 따르고 있다. 어제 보채던 이진권 군도 오늘은 결심을 단단히 한 듯 묵묵히 따라온다. 호수가 얼마 멀지 않은 폭포에 이르러 아래를 보니 대원들의 오르는 모습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서로 독려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11시 드디어 호수에 도착했다.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초록의 물빛이 눈부시다. 누가 나이 70에 여기까지 온 것은 우리가 처음 아닐까 라고 했다. 깃발을 펼쳐 기념촬영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하산을 하는 도중에 비를 만났다. 다행히 큰 비는 아니어 미끄러지는 불상사를 면했다. 텐트에 돌아오니 온 몸이 젖어 움직이기가 싫었다. 다행히 저녁 무렵 비가 걷혔다. 유르트 주인에게 음식을 시키니 마카로니라고 가져오는데 라면과 마카로니의 중간쯤 되는 맛이 났다. 젖은 몸도 말릴 겸 화목을 사서 장작불을 피웠는데 벨기에, 프랑스, 러시아에서 온 젊은이들이 합세했다. 현지 키르기즈 젊은이들도 있었다. 목구멍이 근질근질한 파파스 대원들이 노래자랑을 시작하자 젊은이들도 그들 노래를 했다. 그래도 가무는 역시 알타이 민족의 장기인 듯, 우리가 당연 우세하고 다음은 키르기즈 현지인 목소리가 컸다. 큰 일을 해 냈다는 안도감에 대원 모두가 권하는 술을 마다 않고 마셨다. 한국에는 3500m 이상 봉우리가 없는데도 팔공산의 정기로 산행을 마친 대원들이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교가가 “팔공은 북녁에 가로놓이고……”로 시작되지 않는가? 경북중학교를 나와 경기고를 간 선배 하나가 내게 실토하기를 자기는 경북고 가지 않고 경기고 간 걸 후회한다 했다. 정,재계에서 꽤나 출세한 선배가 그 얘길 하기에 왜냐 물으니 그 선배 왈 우선 경북고 교가가 웅장하다는 것이다. “팔공은 북녁에 가로 놓이고…..”를 들으면 우럴어 보이다가 “위국에 타는 형안, 높이들고서…”란 대목에서는 아예 기가 팍 질린다는 것이었다.
D-10 (7.27) Kajisai 행 8시에 텐트를 걷고 하산을 했다. 올라올 때 말을 이용하던 길을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천천히 내려 갔다. 날씨가 좋아 기분은 쾌적했다. 10시에 나무다리가 걸친 개울에 도착하니 군용트럭이 와 대기하고 있었다. 간밤에 비가 와 진창인 길을 군용 트럭으로 밀고 가니 올라오던 등산객들이 신기한 듯 사진도 찍고 V자 싸인도 보낸다. 전에 묵었던 모텔 근방에서 간단히 점심을 떼우고 Kaji-Sai 라는 남이시쿨의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호수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구소련 때 지은 휴양소가 시설은 낡았지만 입지는 훌륭하고 숲이 우거졌으며 인심이 후했다. 옷을 갈아입고 수영도 하고 호수를 감상하기도 했다. D-11(7.28) Krasnie Most 아침에 숙소를 나서니 주방에서 뭔가 한 보따리를 사 준다. 보니 닭튀김을 해서 코펠 하나 가득 채워주고 빵도 여러 개를 넣었다. 어제 저녁 식사 때 3불 가량의 팁을 주었는데 거기에 대한 보답인 모양이다. 정말 인심이 좋은 곳이다. 두어 시간을 달려 붉은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계곡을 들어갔다. 중간에 까다로운 바위를 서너 군데 올랐는데 대원 중 누가 가로 늦게 노인을 유격훈련 시킨다고 투덜거렸다. 계곡이 끝나니 온통 붉은 색갈의 사암이 흡사 그랜드캐년의 축소판인 것처럼 펼쳐져 있었다. 3시간 반의 계곡 탐사를 끝내고 다시 차를 타고 Issyk Ata라는 유황 온천지에 도착했다. 천연의 유황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겨울에는 온 마을이 이 물로 난방을 한다고 한다. 저녁은 경명애 여사가 쇠고기 국 및 구이로 준비해 오랜만에 한식에 굶주린 대원들이 큰 호강을 하였다.
D-12 (7.29) Issyk Ata 폭포 아침에 짐을 꾸려 Check out 한 뒤 짐을 맡겨놓고 하이킹에 나섰다. 먼저 간 곳은 셀륨과 유황물이 니오는 곳. 셀륨이 눈에 좋다 하여 물이 퐁퐁 솟아 오르는 데다가 눈을 뜨고 한참을 대고 있었다. 유황물은 위에 좋다 하여 마시기도 하고 한 병씩 담기도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반을 걸어 폭포에 이르렀다. 우리가 깃발을 펼쳐 놓고 단체 사진을 찍자 마침 일요일이라 관광 온 아주머니들이 자기들도 끼어 찍자 하여 같이 사진을 박았다. 하산하여 좀 기다리니 버스가 와 다시 비슈켁으로 향했다.
D-13(7.30) Alamedin 계곡 Alamedin 계곡은 국립공원 AlaArcha에 이웃한 계곡으로 AlaArcha 못지 않게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비슈켁에서 가까워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우리가 간 날은 월요일이라 인적이 없었다. 좀 걸으니 계류를 건너는 다리가 나타났는데 10m 가량 철 파이프 두 개씩을 양쪽에서 드리워 나무 판대기를 매개로 철사줄로 동여매어 놓아 보기에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인공구조물이 거의 전무한 키르기즈 산악의 산물이다. 대원들은 조심조심 건넜으나 이진권 대원은 하마터면 미끌어질 뻔했다. 다리 이후로는 평탄한 길을 수월하게 걸었다. 날씨가 맑아 먼 곳에 있는 빙하를 이고 있는 산이 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두어 시간 넘게 걸은 뒤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니 폭포가 나타났다. 촬영을 한 뒤 개울가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산삼주 일명 황금뿌리술도 다시 등장했다. 그제는 강창구 대원, 어제 이진권 대원의 저녁 한 방 쏘기에 이어 오늘은 구상교 대원의 한 방 쏘기가 있어 민속식당에 가서 풍성한 만찬을 했다. 이 한 방 쏘기는 알라콜 호수에서 김용휴 대원이 발동을 걸었다. 김세일은 일동을 자기 농장에 초청키로 하였다.
D-14 (7.31)귀국길 오늘은 장기 팀이 귀국하는 날이다. 오전에 자유시간을 가지고 점심은 짜장면 집에 갔는데 정전으로 면은 안 된다 하여 대체음식을 시켰다. 어수진 씨가 한방쏘기에 자기만 빠졌다며 술안주를 시켜 점심식탁이 풍성하게 되었다. 오후 시간은 시내 산책을 하기로 했는데 대원들이 이제 걷는 데는 신물이 났는지 평지 공원을 걷는데도 흐느적거린다. 좀 걷다가 벤치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되어 공항으로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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